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간극

생활은 나아졌으나 마음은 피폐해져 가는 날들

by 샤인오름


가진 것 하나 없이 힘겹게 시작했던 신혼생활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의 일들이 순조롭게 풀려가기 시작했다. 인테리어일을 하던 남편은 거래처마다 결재일을 지켜주지 않고 심지어는 돈을 떼이는 사례들이 많아 늘 속앓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차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래처들은 정리해가며 신규로 인연 맺은 거래처들과 좋은 관계들이 이어지며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어 가게 되었다.


아이가 세 살 되던 무렵 둘째가 생겼고 둘째를 낳기 전에 넓은 집에 이사해야 하는 목표가 생겼다. 언제나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남편은 더욱 열심히 일했고 일 잘하는 사장님으로 인정받으며 탄탄한 거래처들과 협력하게 되었고 사업은 점점 번창해가기 시작했다.




뱃속의 아기가 6개월쯤 되었을 무렵 드디어 월세에서 탈출하고 전세로 갈아탈 수 있었다. 새로 이사한 곳은 무려 커다란 방이 3개에 큰 거실까지 있는 빌라로 꿈에 그리던 넓은 집이었다. 다만 구축 빌라여서 여기저기 낡고 허름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이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남편의 일도 잘 풀려가며 희망을 꿈꾸게 되던 시절이었다. 이삿날을 앞두고 인테리어 하는 남편이 아이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집안 곳곳이 최소한의 경비를 들여 리모델링을 하기 시작했다.


깨끗하고 고급스러워진 집에 이사하는 날 그 어린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와~~~! 좋다. 함성을 지르고 이내 그 넓은 거실을 마구 뛰어다니며 좋아하던 모습은 두고두고 기쁨의 순간으로 가슴 깊이 남아있다.


이사한 집에 오신 시아버지는 우리가 직접 리모델링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바로 또 쓴소리 하신다. “돈지랄 났냐! 제정신이냐! 남의 집에 돈 들이고 헛지랄하고 있다며 진심으로 화를 내고 막말을 일삼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고 싶었고 그 정도는 충분히 공들일 만하다는 판단에 꾸민 것인데 지나치게 화를 내고 쏘아붙이는 것은 자꾸만 마음에 쓰디쓴 감정들을 쌓게 만들곤 했다.


이사한 이후로 시아버지의 모진 말들은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시작해서 짧은 시간 안에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가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만한 일이 아닌가? 그저 따뜻한 격려 한마디 해 주면 좋을 것을 그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이 그리 힘든 일일까? 서운한 마음이 깊어져 간다.




이사하고 얼마 안 되어 둘째 아이 출산을 했다. 둘째를 낳고도 여전히 나는 불안한 마음과 지불해야 하는 조리원비용이 아깝다는 생각과 함께 첫째 아이를 맡길 만한 곳도 없어 산후조리원을 포기하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첫째 때와는 달리 산후조리 없이 계속되는 두 아이의 육아를 다 해내기엔 몸의 예전과 같지 않고 혼자서 감당하기엔 버겁고 고달픈 나날이었다.


큰아이도 아직 어리고 뭐든 내 손 가야 하는 시기였기에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 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두 아이를 오롯이 혼자서 돌보는 나날은 눈물의 시간이었다.


시누이가 어린아이들 둘을 데리고 시아버지와 함께 방문했다. 둘째 나은지 보름도 지나지 않은 때라 반갑지 않은 방문이었다.


너무 지치고 힘들어하니 퇴근하고 온 남편이 밥상 차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것을 본 시아버지는 또 가슴에 못 박는 말을 풀어내기 시작한다. 힘들게 일하고 와서 부엌일까지 해야 하냐며 하루 종일 집에서 놀고 있는 사람 두고 뭐 하는 짓이냐며 눈을 흘긴다.


시누이도 비슷한 시기에 아이 둘을 출산했고 아이를 낳을 때마다 산후조리원에서 잘 회복하고 나왔다. 시누이 둘째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5개월이 빨랐다.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시누이가 한마디 한다.


"언니도 조리원에서 잘 회복했어야지 왜 몸을 아끼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몸 관리 잘해야 나이 먹어 고생을 안 하지" 하며 걱정을 담아 말하니 시아버지는 바로 반박한다.


예전엔 밭일하다가도 산통이 오면 그 자리에서 애를 낳고 다시 또 밭일하기도 했다며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유난들을 떤다 라는 충격적인 말도 서슴없이 퍼부어 댔다.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말에 남편도 시누이도 말 한마디 거들지 않는 것에 더 쓰라린 상처가 되었다.


시누이가 아이를 낳았을 때는 딸의 손을 잡고 안타까워하며 돈 봉투를 쥐어 주며 몸조리 잘하라고 다독거려 주던 아버지였다. 이해하려 하다가도 비수를 꽂아대는 말들을 쏟아내는 통에 도무지 시아버지와의 마음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힘든 나날이었다.


어디까지 인내하고 참아내야 하는지 나날이 마음의 고통이 심해져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가는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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