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무르익어 가는가 보다
남편의 성품을 닮은 것일까? 아이도 온순하고 비교적 익숙한 패턴으로 단련되다 보니 혼자서 하는 육아와 살림도 큰 어려움 없이 잘 해내게 되었다.
남편은 아이를 다루는 것은 많이 서툴렀지만 퇴근하고 오면 항상 아이와 눈 맞추고 놀아주고 잠자리에 들 때면 항상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는 아빠였다. 설거지하는 동안 남편이 아이와 함께하는 것만 봐도 이상하게 울컥울컥하여 혼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과 어린 시절부터 따뜻한 사랑과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 마음을 전하는 일에 서툰 남편은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조차 어색해했다. 그러나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은 얼마나 따뜻한지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곤 했다.
분명 아이와 남편을 보면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항상 뭔지 모를 불안감이 드리워지곤 했다. 그렇게 뭔가 불안전한 행복을 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10개월쯤 지난 어느 날 남편이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어! 이상한데? 이게 뭐지? 하며 자기야! 잠깐 와봐! 한다. 부엌일을 하다가 손을 씻고 가보니 아이의 사타구니에 구슬만 한 덩어리가 잡히는 것이다. 깜짝 놀라 아이를 일으켜 세워서 보면 괜찮다.
몇 번 반복하며 아이를 눕혔다 일으키기를 반복하며 살펴보아도 여전히 똑같다. 전혀 아파하지는 않는다. 분명 이상한데 다행인지 아이의 컨디션은 참 좋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다음 날 소아과를 찾았다. 진단은 서혜부탈장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눈물부터 쏟아지며 손이 덜덜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사는 지금 응급상황은 아니라며 수술만 하면 괜찮다고 위로를 해 주지만 불안이 지배해 버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대학병원에 진료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응급이 아닌 관계로 수술은 바로 할 수 없다며 2주 후에 오라는 것이다. 놀란 마음은 수습이 되지를 않는다. 탈장은 자칫 위험해질 수 있으니 꼭 수술해야만 한다고 했는데 기다리는 2주 동안 안전이 보장될 것 같지 않은 불안감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남편이 곁에서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고 든든한 힘이 되어주어 간신히 버티고 버티며 수술을 기다려야만 했다.
누군가 아이는 어때요? 지나가는 안부만 물어도 벌써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목이 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그때 나는 이미 우울증을 겪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알아차린다.
다행히 안전하게 수술을 잘 마쳤고 아이도 문제없이 무럭무럭 잘 성장해 주었다. 그런데 나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었다. 걱정할 이유가 하나도 없음에도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끌어오고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감이 커지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니었고 상황에 맞게 차분하게 대처하면 다 잘 될 일임에도 늘 불안감에 마음 가누는 것이 잘 안되곤 했다.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니 마음 깊숙한 곳에 시아버지에 대한 응어리가 켜켜이 쌓여있는 것이다. 혼자 계신 시아버지를 보살펴 드리고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늘 숙제처럼 느껴졌다. 일주일 치 밑반찬을 정성스레 손수 만들어 냉장고를 채워드려도 항상 곱지 않은 시선이다.
그런 거 해 오지 마라! 내 입맛에 하나도 안 맞는다! 하며 핀잔주기 일쑤였고 남편이 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으면 넌 그게 맛있냐! 난 먹긴 먹었다만 내 입맛엔 아니다 라며 사사건건 나의 감정선을 건드리곤 했다.
심지어는 친정 식구들까지 들먹이며 선을 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남편이 결혼 전에 아버지와 오랜 시간 같이 살 때도 아버지 말씀에 토를 달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뭐든 하라면 하고,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할 정도로 오롯이 다 따르고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아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는 서운함을 며느리에게 퍼붓고 있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항상 목에 가시 걸린 것처럼 불편하고 속앓이해야 하는 나날이었다. 남편에게 말해봐야 돌아오는 답도 없고 아버지에게 관련한 것은 못 들은 척 귀를 닫곤 하는 것이다.
왜 내가 시아버지의 불편한 마음을 총알받이가 되어 다 받아내야 하는지 억울하고 답답한 날들이었다. 그렇게 마음의 상처들이 쌓여가고 있지만 어떤 호소에도 반응 없는 남편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은 시아버지를 험담하는 것처럼 되어버리곤 하니 나조차도 외면하게 되고 마음은 자꾸만 어두워져 갔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남편하고의 사이는 시아버지 문제로 자꾸만 갈등이 깊어지곤 했다. 남편은 심성이 착하다. 가정에 최선을 다했고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깊이 느껴질 만큼 고마운 사람이다. 오롯이 남편과 나를 두고 보면 참 좋은 관계이다. 문제가 될 것도 없고 불만도 없다. 그런데 항상 시아버지 문제로 덜그덕 거리게 되는것이다.
어느 날 아이를 재워놓고 무심히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가 낯설게 보인다. 생기 하나 없이 푸석한 모습에 눈빛은 왜 그리 힘이 없는지 측은하게 느껴진다.
늘 밝고 상냥한 성격이었다. 항상 생글생글 웃고 밝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했던 나는 주변에서도 분위기 메이커로 불릴만큼 좋은 사람이라는 평들이 많았었다.
결혼도 했고 세상 소중한 아이도 품에 안고 나는 더없이 감사한 인생이다. 그런데 거울 속에 나는 왜 그리 피폐하고 불쌍해 보였는지 마음이 아려오는 것이다.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시아버지 얼굴이 오버랩된다.
분명 시아버지도 이토록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보고 희망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겠지. 아픈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못하며 가슴 쓸어내렸던 일도 부지기수로 많았을 부모였을 지언데 자식들과 소통의 부재로 쓸쓸한 인생이다.
문득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간 까칠하고 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싸늘한 시아버지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혼자 계시는 그 외로운 마음들은 얼마나 힘들고 어두운 동굴처럼 느껴질까? 처음으로 그 입장이 내 마음에 아로새겨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 좀 봐달라는 신호였을까? 그걸 아무도 몰라주고 원망 섞인 마음들에 오히려 상처받고 계시는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