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이를 안으며 하루를 건넌다.

육아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by 샤인오름

큰아이와 다르게 딸아이는 예민하고 까칠해 난감하고 버거운 시간이 계속된다. 신생아 시기엔 먹고 자는 것이 대부분의 일과인데 밤만 되면 똘망똘망해져서 도통 깊은 잠을 못 잔다.


신생아인 딸아이는 밤만 되면 우는 것이다. 이유를 모르겠다. 안아주고 얼러주고 기저귀를 봐주고 수유를 해도 도무지 아이의 울음을 잠재울 수 없다.


남편은 새벽 출근을 해야 하기에 늦은 밤까지 육아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다행히 집이 넓고 방도 여러 개이니 남편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안방 문을 닫아주고 작은방에서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재우려 애를 쓴다.


밤에는 유난히 품 안에만 있으려 한다. 품에 안고 토닥토닥 다독이며 자장가를 100번쯤 불러주면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 깊이 잠든 것 같아 자리에 눕히면 영락없이 잠이 깨서 울어대는 통에 간신히 잠이든 큰아이까지도 울음소리에 잠이 깰까 봐 노심초사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은 채로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퀭한 눈으로 새벽에 남편의 식사를 챙겨주고 출근시키고 나면 이미 몸은 천근만근 녹초가 되어 다운되기 직전인 상태다.




이미 큰아이 육아를 경험했기에 잘할 수 있을지 알았다. 뭐든 척척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이 의기양양했었다. 하지만 육아는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육아를 해내야만 한다. 큰아이는 참으로 온순하고 방긋방긋 잘 웃는 아이고 수면 패턴도 일정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장트러블이 자주 일어났고 밤에 식은땀을 많이 흘려 수시로 마른 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잠자리를 봐줘야만 했다.


빨랫감이 많아 부지런하게 움직여야만 했고 작은아이는 까칠하고 자주 울어대는 통에 정신적으로 지치는 일들이 많았다.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매일 계속되는 육아의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버티다 보니 어느새 백일이 되었고 신기하게도 백일이 지날 즈음 아이의 수면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백일만 잘 견뎌봐 백일 지나면 수월해! 절대 올 것 같지 않은 백일이 되었고 평안한 날들이 오긴 오더라. 잠시 숨을 고르고 밤에는 몇 시간이라도 기절하듯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눈이 자동으로 떠지는 것은 여전했다.


둘째가 5개월쯤 되었을 무렵 평소 장트러블이 잦았던 큰아이가 장염에 걸렸다. 그 밝고 에너지 넘치던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보채고 울고 힘들어한다. 잘 먹지도 못하고 계속되는 설사에 힘없이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온전히 아이를 안아주고 보살펴 줘야 하는데 눈치 빠른 딸아이는 그럴수록 더 내 품을 파고든다. 장염이 옮을까 봐 함께 안아주지도 못하고 몸이 딱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작은 아이를 업고 흰쌀 죽을 끓여 큰아이 먹이고 몸이 힘드니 큰아이도 자꾸만 안아달라 보챈다. 하는 수없이 등엔 작은애를 업고 가슴엔 큰아이를 안고 온 집안을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며 토닥토닥 달래준다.


그렇게 힘없이 잠이 들었나 싶으면 또 배가 아파 깨서 울어대어 급히 내려서 화장실 변기에 앉히면 바로 설사를 하고 작은애는 안 내려오려고 울어대고 정말 나도 딱 울고 싶은 날이다.




설상가상으로 다음날 나 역시도 장염에 걸려 죽을 듯이 아팠다. 장염은 정말 고통스럽다. 내장을 비틀어 짜내는 듯이 아파 허리도 펼 수 없고 식은땀이 쭉 나면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똑같은 패턴으로 고통스럽고 급기야 탈진상태에 까지 이른다.


그 지경으로 두 아이를 돌보기엔 무리가 있었지만, 남편 또한 중요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을 지시하고 관리를 해야만 하는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난감해하는 남편에게 어떻게든 해볼게. 일단 출근해! 도저히 안 되겠으면 전화할 테니 곧바로 와줘 하며 출근을 시켰다.


악몽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배고파 우는 아이 수유하는 중에 아픈 아이는 배를 잡고 엄마! 응가! 하며 울어대니 한쪽 팔로 딸아이 안고 수유하며 한쪽 팔로 아들을 안고 변기에 앉혀놓고 급하게 수유 끝내고 내려놓으니 배가 덜 찬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하는 수없이 오야! 오야! 그래 잠깐만 잠깐만 수없이 아이를 달래며 큰아이 씻기고 이번엔 큰아이를 안고 아팠어? 많이 아팠어? 미안해 미안해~ 연신 달래주는데 내 장에서도 우르르 쾅쾅 요란하게 울어대며 비틀어 짜는 통증이 시작되었으나 이 악물고 버텨야만 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 아이를 내려놓고 화장실로 미친 듯이 뛰어가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두 아이가 목청 높여 울어댄다. 나는 아픈 배를 쥐어 잡고 눈물을 쏟아내야만 했다. 난리도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을게다. 정말이지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을 보는 순간 설움이 북받쳐 눈물부터 왈칵 쏟아졌다. 육아에 있어 함께 돌봐주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마음 한편이 뻥 뚫린 듯한 서늘함이다.


며칠 고생했지만 회복한 아이는 다시 에너지 넘치는 건강함으로 하루가 활기차게 시작된다. 힘든 날은 다 놔버리고 싶을 만큼 무너져 내렸지만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것은 기쁘고 가슴 벅차게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날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두 아이로 인해 웃는 날이 많아졌고 나의 일상은 아이가 전부인 삶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보는 책은 그림책이 전부였고 아이들에게 불러주는 동요만이 나의 노래가 되어갔다. 아이들이 아프지만 않다면 아이와의 시간은 나를 풍요롭게 채워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장염으로 고생했던 기억은 나를 더욱 집요한 깔끔쟁이로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먹이는 거 하나 장난감 하나 입는 옷, 덮는 이불, 뭐 하나 소홀히 하는 일이 없었다. 온 힘을 기울여 세척하고 소독하고 집안을 더욱 깨끗하게 쓸고 닦는 것에 진심이었다.


그런 습관들이 언제나 손에 물 마를 일이 없었다. 그로 인해 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빨갛게 발진이 생기는 듯하더니 며칠 새 손가락 마디마디 피부가 갈라지고 피가 터지기 일쑤였다. 주부습진이었다. 아무리 피부과를 다니고 약을 먹고 발라도 도통 낫지를 않았다.


물을 대지 말아야 낫는다는 것이다. 손이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한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피가 터진 손으로 아이를 케어할 수 없으니 면장갑을 끼고 비닐장갑을 덫끼며 육아는 계속되었다.


늘 청결하게 씻기고 손수 해먹이고 집 안 정리하는 일이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 하나에 모든 피로가 사라지고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은 내가 정말 큰일을 해내고 있는 듯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해지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육아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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