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이고 싶었다.
마흔 에 첫 아이를 임신하고 두근두근 설레는 시간들이 시작되었다. 늦은 나이에 시작된 결혼생활은 가진 것 하나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남편하나 믿고 결혼을 감행했기에 우리의 신혼시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남편이나 나나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열심히 살아왔으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도 가혹했다. 나는 청년시절 긍정의 기운이 넘쳤고 늘 열심히 살아왔으나 입사하는 곳곳마다 임금체불로 여러 해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남편역시도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실력을 쌓으며 도전해 왔으나 거래처들 마다 결재가 원활하지 않아 못 받고 떼인 돈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차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결혼을 결심했고 생활은 어려웠지만 잘 살아보자 다짐하며 호기롭게 출발했다.
방 2개에 작은 주방이 딸린 주택 1층 좁은 집에서 반전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고 쉬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했다.
산부인과에서는 노산이라는 이유로 값비싼 각종 검사들을 권유했지만 형편상 그 검사들을 다 받을 수 가없었다. 고가의 검사마다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니 급기야 의사 선생님은 겁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이상이 발견되면 뒤늦게 어떻게 할 거냐"는 말은 말문을 막히게 했다.
눈물이 핑돌고 너무 화가 나서 의사에게 원망 섞인 하소연을 하고 나왔지만 두려움으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반드시 나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최고로 건강하고 따뜻한 심성을 지닌 아이로 내 안에서 잘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자식의 인연을 잘 만들어갈 것이다. 라며 소리 내서 말하고 마음을 다지니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좋은 생각 긍정의 마음으로 태교에 진심이었고 마침내 태아도 산모도 건강하게 40주를 잘 채우고 너무도 사랑스럽고 소중한 아들을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날의 가슴 벅찬 감동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생에 잊지 못할 감사하디 감사한 나날이 되었다. 처음부터 노산이라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 출산을 권유하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자연분만 하겠노라 우겼고 38시간 끔찍한 산통을 견뎌냈으나 더 이상은 안된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결국은 제왕절개를 해야만 했다.
날이 바뀌도록 계속되는 산통에 이미 탈진상태에 이르렀고 이러다간 아이가 위험해진다는 말에 급히 수술결정이 내려졌다. 아쉬운 마음에 엉엉 울며 수술실로 들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눈을 뜨니 이미 출산은 끝났다.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눈물 흘리고 있는 남편이 내 곁에서 내손을 꼭 잡고 깨어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아이를 품에 안은 나는 살아오면서 나 자신이 가장 뿌듯했고 자랑스럽고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마치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을 나 혼자만이 이루어낸 것처럼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을 쏟
아내야만 했다. 그렇게 마흔이 넘어서 처음으로 엄마가 되었고 서투른 육아가 시작되었다.
아이가 태어날 무렵 산후조리원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연일 이슈가 되어 방송마다 자주 언급이 되었고 그 또한 내 발목을 잡았다. 출산 후 가기로 한 산후조리원도 취소를 하고 따로 몸조리를 하지도 못한 채 신생아 육아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뭐든 다해주고 싶었고 뭐든 다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으며 "아가야~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가 되어줄게"라며 아이의 눈빛을 마주 보며 조용히 속삭이곤 했다. 그렇게 나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육아에 정성을 다하며 전념해 갔다.
아이는 마치 엄마의 마음과 다짐을 알겠다는 듯 하루가 다르게 건강하게 성장했으며 눈만 마주쳐도 방긋방긋 웃음이 많은 아기였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꽉 차 오르는 시간이었다.
불면 날아갈 세라 놓으면 깨질세라 모든 신경은 여리디 여린 아이에게 맞춰졌고 "삐뽀삐뽀 육아지침서"를 끼고 앉아 읽고 밑줄치고 메모하며 유사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긍정적인 성격이긴 했으나 동시에 불안증도 매우 높았었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상상하며 걱정을 사서 하게 되었고 아이의 작은 변화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으며 울음소리 하나에도 온 촉각을 곤두세우며 나의 24시간은 오로지 아이를 위해 맞춰져 갔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집착의 수준이 되었다.
작은 기침소리 하나에도 겁이 덜컥 나기도 했으며 유난히 트림을 하지 않았던 아이였기에 20분이고 30분이고 제발 트림을 좀 해줘 하는 마음으로 등을 쓸어주어야 했고 어쩌다 트림을 할 때면 어깨 가득 게워내어 늘 어깨가 젖곤 했었다.
황금 변 에 대한 집착도 나를 힘들게 했다. 기저귀를 갈아줄 때마다 황금 변 이 확인되면 그리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감에 젖어들었다. 반면 초록 변 을 보게 된 날은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뭐가 잘못된 걸까? 아기들은 놀라도 초록 변 을 본다고 괜찮을 거라 안심을 시켜주었지만 정녕 나는 매 시간 기저귀를 확인해야만 했다.
누구에게도 잠시라도 아이를 맡길 수 도 없었고. 매일 쏟아져 나오는 가제손수건, 배냇저고리, 면 기저귀 한 장까지도 푹푹 삶아 내 손으로 직접 빨고 세탁해야만 마음이 놓이곤 했었다.
아이에게 먹이는 음식하나도 유기농에 직접 만들어낸 이유식만 줘야 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서 좁은 방을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다가 가구 모서리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덜컥 겁을 먹기도 하며 동동거리기 일쑤였다.
모든 시선은 아이에게 맞춰져 있었고 그것이 아이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고 아이를 위해서는 뭐든 내 손을 거쳐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