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인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작성한 시인론

by 찬란

Ⅰ. 서론

이상(본명 김해경)은 1930년대 전후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로, 주로 모더니즘에 입각한 아방가르드 문학 계열의 작품을 썼다. 1930년 조선지에 소설 <12월 12일>을 연재하게 되면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31년 7월 『이상한 가역반응』이라는 첫 시집을 냈다. 그의 시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수학 기호나 외국어가 사용되거나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은 등 다른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과 차별화된 특성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이상의 시 <오감도>는 신문 연재 당시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비난을 받아 연재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 그는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작품으로 모더니즘 문학사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에는 그가 살아온 생애와 그의 현실 인식 등 작가의 정신세계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품은 작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의 시는 난해하고 어렵다는 평을 받지만, 이상과 그의 시를 결부시켜보면 결국 그 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생애와 그의 내면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론적 관점으로 그의 시 다섯 편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거울’


이상은 어려운 집안 사정 탓에 서너 살 경 큰아버지의 집으로 입양되어 그곳에서 자라게 된다. 그의 양아버지는 이상을 친아들로 대한다기 보다는 가문을 일으킬 인재로 생각하여 항상 엄격한 모습으로 이상을 대했다고 한다. 이상은 점점 자라 큰아버지가 자신의 생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할 때 이 시의 거울은 사물이 아니라, 이상의 어린 시절, 즉 백부를 생부라 믿고 있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생각, 또는 매개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거울은 사물을 그대로 비추지만, 거울속의 사물은 형상일 뿐이지 실제는 아니다. 즉 이 시에서 거울 속에 비친 화자의 모습은 이상의 어린 시절을 상징하고, 이는 이상에게 자신의 모습이자 동시에 자신의 모습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거울속에서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 속에 소리가 없는 이유는 어린 시절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서로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자신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지만 과거의 자신은 현재의 자신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자신과 과거의 자신 사이의 소통은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거울을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이 구절도 위 구절과 마찬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거울속의 나, 즉 과거 유년기의 자신은 그 당시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한,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 하지만 이 귀는 현재의 나의 말을 듣지는 못한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악수는 서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행위이다. 하지만 이 시의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악수를 하지 못한다. 이상은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에, 반갑지 않고 친근하지 않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단절되어 있다고 여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나’의 입장에서 ‘과거의 나’는 친밀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거의 나’를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과거의 나’를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로 해석해 볼 수 있는 거울은 그저 매개체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매개체가 없었으면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를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현재의 나’가 언제나 ‘과거의 나’를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지 않을 때에도 ‘과거의 나’는 분명 존재했던, 존재하는 대상이다. 또한 ’과거의 나‘가 골몰하는 외로 된 사업은 과거의 이상이 자신의 운명을 깨닫기 전 꿈꾸었던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이상은 나름대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깨닫게 된 ‘현재의 나’가 지향하는 바는 ‘과거의 나’가 지향했던 바와는 다를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나’의 사업은 외로 된 사업일 수밖에 없게 된다.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는 반대다. 이상은 과거의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도 결국 ‘현재의 나’의 과거이기 때문에, 유사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그 삶은 잘못된 것이라 진찰할 수 없다. 진찰하려면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서로 만나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를 되돌릴 수도 없다.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시가 마무리 되고 있다.


2. ‘지비(紙碑)’


1933년, 이상은 각혈을 할 정도로 폐병이 깊어져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요양을 하였다. 이곳에서 기생 금홍이와 교제하게 되고, 같이 서울로 올라가 종로 1가에 다방 제비를 개업하여 동거하게 된다.

이 시의 제목인 지비의 표면적 의미는 종이로 만든 비석이다. 종이로 만든 비석은 진짜 비석이 아니며, 오래가지도 못한다. 또한 지비는 금홍이와 이상의 다방인 <제비>, 더 나아가서 금홍이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내키는커서다리는길고왼다리아프고안해키는작아서다리는짧고바른다리가아프고


이상이 자신의 키가 크다고 표현한 이유는 고등 교육을 받고 조선총독부에서 건축 일을 하던 지식인 이상을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금홍이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안해, 즉 금홍이의 다리는 짧은 것이다. 또한 왼다리와 바른다리는 각각 생활력과 지식적·윤리적 면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지식인이나 현실적인 삶에서의 생활력은 부족했고, 금홍이는 기생이었기 때문에 지식적·윤리적인 면이 부족했다.


내바른다리와안해왼다리와성한다리끼리한사람처럼걸어가면아아이부부는부축할수없는절름발이가되어버린다


이상의 멀쩡한 오른다리와 금홍이의 멀쩡한 왼다리가 한 사람처럼 걸어가면 겉보기에는 멀쩡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두 다리의 조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부는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는 외견상으로는 정상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을 수도 없다. 이상과 금홍이는 내면에 무엇인가 드러나지 않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무사한세상이병원이고꼭치료를기다리는무병이끝끝내있다


이 구절에서 ‘무사‘는 舞事, 즉 춤에 전념한다는 뜻이다. 병을 고쳐주는 병원은 걷지 못하던 사람이 마치 춤추듯 잘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병원은 춤에 전념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이상과 금홍이에게는 치료 받아야 할 곳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상이 치료받아야 할 것은 생활력이고 금홍이가 치료받아야 할 것은 윤리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병이 ’끝끝내‘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상은 금홍이와 자신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작품의 제목인 지비, 종이비석처럼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선에 관한 각서 3’


이상은 건축학 전공으로, 이과 계열의 학문을 배웠으나 어릴 적 큰아버지로부터 유학과 한문 교육을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서양의 가치관에 대한 내적인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은 서구화, 현대화 된 생활을 염원하였고 서구의 사상을 이해하고 싶어서 도쿄로 떠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상은 어릴 적부터 유교적,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서양 사상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선에 관한 각서 시리즈는 선(線)에 대한 시이다. 그 중 선에 관한 각서 3은 기하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원 모양을 이용하여 서양 문명이 인간의 가치, 문화 등을 획일화 시킨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3 2 1

· · · 1

· · · 2

· · · 3


1 2 3

· · · 3

· · · 2

· · · 1


이 숫자와 점들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는데, 두 개의 부채꼴에 적혀 있는 숫자의 순서는 서로 다르다. 부채꼴은 원의 일부분으로, 이 그림은 원을 4등분 했을 때 오른쪽 윗부분에 해당하는 부채꼴이다. 이러한 부채꼴들은 단순한 도형이 아니라, 인간이 그동안 이룩했던 문화, 다양한 생각들, 사고, 가치관, 역사, 삶 등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두 개의 부채꼴은 숫자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부채꼴이다.


∴ nPn=n(n-1)(n-2)....(n-n+1)


∴은 그러므로라는 뜻이고, nPn은 n!, 즉 1부터 n개의 양의 정수를 모두 곱한 것을 뜻하는 수학적 기호다. 위의 부채꼴에서 숫자를 바꾸면, 수많은 다른 부채꼴이 탄생한다. n!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종류의 서로 다른 부채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사고, 역사, 문화 등이 n!이라는 무한에 가까운 숫자만큼 굉장히 다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뇌수는 부채와 같이 원에까지 전개되었다. 그리고 완전히 회전하였다.)


뇌수, 즉 인간의 사고는 부채처럼 펼쳐져서 원 모양이 되고, 완전히 회전하게 된다. 위의 서로 다른 숫자가 적혀있는 부채꼴을 회전해보면, 동일한 모양의 원이 되고 만다. 부채꼴에 아무리 다양한 숫자가 적혀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회전시키면 다양성은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서양의 학문은 다양한 것들을 하나의 원리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특성이 강하다. 결국 이상은 서양의 이러한 과학적 사고가 개별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말살하려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비판하려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4. ‘최후’


이 시도 <선에 관한 각서>의 연장선상에 있는, 서양의 과학적 사고와 문명을 비판하는 시이다. 이 시를 통해 이상이 서양의 과학적 사고가 미친 영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능금한알이추락하였다

지구는부서질정도만큼상했다


능금 한 알의 추락은 사람에게 각자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연의 이치로, 누군가는 신의 섭리로, 누군가는 삶의 의지의 상실로 생각할 것이다. 다양한 인문학적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과학적인 서양의 사고는 이를 뉴턴의 만유인력이라는 법칙으로만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상은 이러한, 사람들의 사고를 획일화하려는 시도 때문에 지구의,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와 사고가 부서질 만큼 상해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후

이미여하한정신도발아하지아니한다


발아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뜻한다. 하지만 부서질 정도로 상한 지구에는 더 이상 새 생명이 싹을 틔우지 못한다. 서양적 사고가 인류의 삶을 파괴하고, 새로운 인문 정신을 발아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과학 법칙이 사람들의 생각을 획일화한 결과로 다양한 인문학적 사고의 가능성이라는 씨앗은 땅에 묻혀 빛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시를 통해 이상은 서양 과학적 사고를 매우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음을 알 수 있다. 편리하고 명료한 것처럼 보이는 서양의 학문은 다양성을 훼손하고 더 나아가 동양의 학문을 말살시키는 것이며, 사람들의 사고를 제한하는 것이므로 동양의 인문학적 사고를 서양의 과학적 사고보다 우위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5. ‘파편의 경치’


이상은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는데, 큰아버지에게 양자로 가서 자신의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았던 것, 폐병을 앓았던 것 등이 그것이다. 이상에게 이러한 아픔을 견디게 해 주는 힘은 바로 문학이었을 것이다.

이 시는 이상이 자신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인지 독자에게 알려주는 시이다. 파편의 경치는 부서진 경치이므로, 완전하지 않은 경치이다. 이 시에는 X 표시로 구분되는 네 개의 경치가 있다. 이를 잘 조합해야 비로소 완전한 경치를, 이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시의 부제목은 ‘△은나의 AMOUREUSE’이다. 이는 △은 나의 연인 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은 긍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시에는 △은 등장하지 않고, ▽만이 등장한다. △을 180도 회전하면 ▽이다. 따라서 ▽은 △와 대비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하는수없이울었다


전등이담배를피웠다

▽은I/W이다

×


우는 행위는 고통을 잊기 위해 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아픔을 표출함으로써 그것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은 다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아픔을 울음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아픔을 잊고자 하는 것이다.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이상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어나서 전등을 켠다. 뿌연 전등의 불빛을 전등이 담배를 피운 것이라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상은 ▽은 I/W라 규정하고 있다. I는 전류를 나타내는 기호이고, W는 전력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물리학의 공식 중에는 V=I/W라는 공식이 있다. 전압은 전류를 전력으로 나눈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I/W=전압인 것이다. 좀 더 확장해 보면, ▽은 전압을 가하는 행위, 즉 전등을 켜는 행위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 ▽은 부정적인 의미이므로, 이상은 전등을 켜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조각이 완성된다.


▽이여 ! 나는괴롭다

나는유희한다

▽의슬립퍼어는과자와같지아니하다

어떻게나는울어야할것인가

×


▽, 곧 전등을 켜는 것은 이상에게 괴로운 일이다. 자신의 아픔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전등을 켜야 하는 것도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유희, 즉 즐거운 놀이를 한다. 슬리퍼를 신고, 전등이 켜진 방에서 혼자 왔다 갔다 해본다. 하지만 이는 과자처럼 달콤한,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없다. 이상은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고뇌에 빠진다. 고통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조각이 완성된다.


쓸쓸한들판을생각하고

쓸쓸한눈나리는날을생각하고

나의피부를생각하지아니한다


기억에대하여나는강체이다


이상은 아픔을 잊기 위해 쓸쓸한 들판과 쓸쓸한 눈 내리는 날을 생각해본다. 단순히 생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등도 켠 김에 고통을 잊기 위해 그것을 글로 썼을 것이다. 여기서 글 쓰는 행위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우는 행위와 유사한 성격의 것이다. 쓸쓸한 눈 내리는 날은 이상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과거 시절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폐결핵으로 인해 창백해진 자신의 피부를 생각하지 않으며 글을 쓴다. 지금의 고통보다 과거의 고통이 훨씬 컸기에 현재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상은 과거의 일을 생생하게 떠올리고 그것을 글로 써내는 데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자신은 강체라 표현하고 있다.


정말로

「같이노래부르세요」

나의무릎을때렸을터인일에대하여

▽은나의꿈이다


스틱크 ! 자네는쓸쓸하며유명하다


어찌할것인가

×


같이 노래 부르자고 무릎을 때렸을 터인 일은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고통을 배가시키는 일이다. ▽, 전등을 켜는 것은 화자의 꿈이다. 즉 전등을 켜고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떠올리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내는 것은 이상이 지향하는 바이다. 이 행위를 통해 이상은 고통을 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스틱크는 필기도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려면 필기도구가 필요하다. 밤에 혼자 전등을 켜고 글을 쓰는 일은 쓸쓸한 일이다. 그래서 필기도구도 쓸쓸하다. 또한 필기도구는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어 명의처럼 화자의 고통을 해소해 준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어찌할것인가, 이상은 과거의 기억들을 시로 쓸지, 소설로 쓸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조각이 완성된다.


마침내▽을매장한설경이었다


▽, 즉 전등을 켜는 것을 매장했다는 것은 전등을 껐다는 것을 뜻한다. 전등을 끈 이유는 밖이 설경, 눈이 내리는 것처럼 눈부시고 새하얀 아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고통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에 전등을 켜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날이 샌 것이다. 또한 이는 더 이상 ▽, 화자가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행위를 지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이 완성된다.

이상에게 시나 소설, 수필은 밤 잠 못 이룰 만큼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과 슬픔을 잊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학은 이상에게 삶을 영위하게 해 주는, 필연적으로 함께 해야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Ⅲ. 결론

지금까지 표현론적 관점으로 <거울>, <지비(紙碑)>, <선에 관한 각서>, <최후>, <파편의 경치>를 분석해보았다. 이상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접하면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해 보이고, 미지의 것들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상의 삶과 그의 생각을 시와 연결해 보면, 복잡해 보이는 시 속에 숨어있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다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아픔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생소하고 전위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예술로 승화시켜냈다. 시의 표면상 특징만 보고 이상의 시를 비난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치부하기 보다는 생산론적 관점에서 작가의 삶을 이해하고 시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문학사에 있어 이상은 몇 세대를 앞서간, ‘박제된 천재’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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