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아빠에게 보내는 서신

by 찬란

나는 만물이 잠을 청하는 새벽이 되어서야 숨을 쉬며 생동한다. 조용하고 고요한 나의 시간, 그 오롯한 시간을 나를 위해 보내는 일을 사랑했다. 낮에 오래도록 참았던 숨을 밤이 되어서야 틔었다. 내 호흡과 새벽 공기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안온한 공간에 폭 담겨 조용히 시간을 흘려보낸다. 혼자 남겨진 그 외로움이 퍽 좋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서,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스탠드 빛에 의지해 할 일들을 차근히 해치우거나 가만히 생각에 잠겨 이것저것 끄적이곤 했다. 그냥 이렇게 계속,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만의 세계에 갇혀 웅크리는 것이 편안했다.



나는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충분히 어둠 속에서 빛을 낼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당신의 방 천장에 붙여 놓은 야광 클레이의 야광 빛처럼 말이다. 야광 클레이는 검은색으로 뒤덮인 천장에서 홀로 반짝이며 신비하게 빛나곤 했다. 어떻게 전기도 없이 빛을 내는지 신기해하며 별도 만들어보고, 달도 만들어서 붙였다. 가끔 당신의 방에 가서 잠을 청할 때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자곤 한다. 나는 내가 그 야광 클레이 같다고 생각했다. 모두를 내리쬐는 태양 같지는 않지만, 밝고 은은하게, 그리고 조용히 강하게 빛나는, 어둑한 곳에서 혼자 힘으로 딱 혼자를 빛낼 만큼 반짝이는.



당신은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지만, 당신은 유별났다. 매번 방 문을 슬쩍 열고 빼꼼 지켜보는 거, 내가 모를 줄 아나 본데 다 알고 있다. 그걸로 성에 안 차면 당신은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식혜나 사탕 따위를 가져오며 내가 뭘 하는지 힐끔 보고 갔다. 필히 오롯이 그것을 전달해 주려는 목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싫어 일부러 문을 걸어 잠그거나, 당신이 올 때마다 다른 창을 틀곤 했다. 나의 세계에 갇혀 살았던 나는 나를 들키기 싫었다. 나만의 공간을, 편안함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이었다. 그 고요함을 깨는 문 열리는 소리와 인기척에 짜증도 나곤 했다. 가끔 그 뾰족한 마음을 그대로 꺼내 놓으면, 당신은 자식 일을 궁금해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니냐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고등학교 등굣길, 당신의 출근 시간과 나의 등교 시간이 겹치지 않는 날이면 당신은 항상 고등학교까지 나를 태우고 차를 몰았다. 집 문을 열고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 당신은 혹여나 가방을 메는 나의 어깨가 아플까 늘 나의 분홍색 가방을 메곤 했다. 가방이 무거운 시험 기간에는 어우, 이렇게 무거워라는 한마디를 덧붙이며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당신은 나의 가방을 꿋꿋하게 메고 걸었다. 머리 곳곳이 하얗게 센 중년 남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홍색 가방을.



학교가 끝나고 초췌하고 피곤한 얼굴로 차를 타면 당신은 항상 차 안의 작은 거울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당신은 가끔 나에게 잘 챙겨 먹으라며 용돈을 줬다. 그 용돈을 받으면서 왜 자꾸 쳐다보나 하고 속으로 짜증을 냈던 게 미안해지곤 했다. 얄팍한 종이 몇 장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독서실 앞에 내려 터벅터벅 걸어가면 당신은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차를 멈추고 내 뒷모습을 바라봤다. 수능 날 아침까지, 나보다 더 긴장해서 잠도 못 잤다 말하는 당신은, 그 여전히 차 안의 작은 거울로 나를 지켜봤다.



당신은 항상 맛있는 걸 먹으러 가면 본인의 몫에서 꽤 많은 양을 나에게 나눠줬다. 보다 못한 내가 아빠도 좀 먹어, 라 하면 한 두어 개 집어 먹고 밑반찬을 열심히 먹었다. 당신은 직장에서 맛있는 거 많이 먹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조금은 슬펐던 것 같다. 그게 돈의 문제는 아니었을 테지만, 꼭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고 말겠노라고, 꼭 나중에 잘 대접해 드려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런 날엔 속은 채워졌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텅텅 비어있곤 했다.



야광이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낮에 받은 빛을 저장했다가 밤에 빛을 낸다는 것을 엄마에게 들어 알게 될 즈음, 나는 나 혼자만으로 세상을 살아갔던 것이 아님을 문득 깨달았다. 관심, 보살핌, 그리고 과분한 사랑까지 넘치도록 받으면서 그것들이 다 나만의 빛이라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가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받기만 했던 과거들을 후회했다. 사람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언젠가 당신은 살갑고 애교 많은 딸을 원했다는 말을 내게 했다. 원망의 어조는 아니었지만, 그 말에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그 이후에도 문득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무뚝뚝하고 애교 없는 딸, 항상 자기 공부와 할 일에 바쁜 딸을 보며 얼마나 당신은 서운하고 속상했을지 가늠할 수 없다. 나는 당신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당신은, 나에게 시선을 보내줬다.



나는 모든 것을 던지고 싶을 때마다 당신의 시선을 생각한다. 그 시선의 끝에 닿은 사랑으로 나는 빛났다. 천장에 붙어있던 야광 클레이는 혼자의 힘으로 빛을 내는 게 아니었다. 나의 은은하게 빛나는 반짝임 속에는 당신의 사랑이 한 올 한 올 깃들어 있었다.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가 만나 넓어지고 그 더 넓어진 세계가 나의 안락한 세계를 온전히 지켜주는 것이었다.



각자에게 사랑의 정의는 다르다. 애인에게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고, 봄비가 내리고 꽃이 피고, 새싹이 자라나는, 그런 풍경이 자연히 그려지는 싱그럽고 풋풋한 사랑일 수도 있겠지. 나는 사랑이라 하면 당신이 떠오른다.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람.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 나를 사랑해 준 사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도 이제는 사랑을 받은 만큼 나눠주는 사람이 되겠다. 당신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내어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어둠 끝에 이어진 밝음도 기다리는 사람이 되겠다. 나는 여전히 새벽을 사랑하지만, 그래도 밤이 지나고 새벽이 지나면 찾아오는 아침 햇살에 힘차게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당신의 사랑을 찬란한 빛으로 바꿔, 온 세상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나에게 시선을 보내준 당신에게, 나의 서신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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