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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ny Oct 02. 2021

어른이 된다는 것 [1]

서른 살의 뒤늦은 성인식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 년 전 9살 터울의 친동생이 20살이 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형 어른이 되는 건 무슨 의미야? 뭐가 크게 달라져? 뭐 그냥 마음대로 막 할 수 있는 건가?" 

"글쎄..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네 말처럼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는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 결정에 대한 결과를 온전히 네가 다 책임져야 하는 게 어른이지 않을까 싶어."

 


어른의 사전적인 정의는 어떻게 될까? 

이렇게 3가지로 분류되는 듯하다.  

내 머릿속에서 '어른'의 정의는 항상 1번이었다.

[본인이 선택한 일에 뒤따르는 책임을 지는 사람]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tr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기며, 인간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서 실존하고 그 존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선택에 대한 불안감에 압도되면서도 그 선택의 자유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인생은 모든 순간이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은 가깝거나 먼 미래에 다양한 사건을 몰고 온다.

   

대학시절을 예로 들어보자. 알람이 울린다. 우리는 알람을 듣고 바로 일어날지 5분만 있다가 일어날지 고민한다. 일어났다면 식사는 할 것인지, 학교는 갈 것인지, 어떻게 갈 것인지 등을 고민하고 실행에 옮긴다.  

지금 이 의사결정으로 인하여 미래의 나는 지각이나 결석을 해서 좋지 않은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난을 겪을 수도 있고, 불규칙한 식사습관으로 인해 지병을 얻게 될 수도 있고, 어떤 교통수단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비유가 다소 극단적이지만 결론은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수많은 의사결정을 이미 내려왔고 그 의사결정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결과로써의 현재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든 간에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삶의 모습이 과거의 나 자신이 내린 의사결정의 집합에 의해 이루어졌고, 실제로 그렇게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꽤나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좋든 싫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을 내가 모두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부 환경에서 오는 영향은 잠시 내려놓도록 하자.)



그렇다면 내 손으로 만든 이 흙빛의 인생을, 지난날의 과오가 만들어낸 인과 결과의 파도를 맨몸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일까?



어른이 된다는 것, 내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

언제쯤 이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내가 알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몇 점짜리 인생을 만들어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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