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여름.
발바닥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착 떨어진다.
물기가 느껴지는 공기만 삼키다
물 한잔을 급하게 들이켠다.
쉼 없이 오고 가는 계절은
나에게 퍽 대단한 것이었다.
마치 농구 게임 중 작전 회의를 하듯
계절과 머리를 맞대고
이번 계절엔 뭘 하면 좋을지를 즐겁게 궁리했다.
봄에는 송이송이 탐스러운 벚꽃을 보겠다며
매번 약속이 있는 사람 마냥 집을 나서고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겠다며
나무 밑에서 폴짝폴짝 제법 긴 시간을 씨름했다.
글쓰기는 늘 여름이 정점이었다.
빈 공간 없이 들이붓는 빗소리를 머금고
부러 마음을 찢는 시를 써댔다.
그 깊숙한 감정에 취해
우산도 없이 거리로 뛰어나가
맨발로 한참을 걷기도 하고
운동장에 대자로 드러누워있기도 했다.
가을은 또 얼마나 탐스러운가.
석류알 같은 짙은 단풍
발끝에서 바삭하게 부서지는 낙엽의 감촉
그렇게 풍경에 녹아
자전거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면
겨울이 왔다.
퇴근길, 자주 가는 핫바 가게에 들러
양념소스 한 줄, 머스터드소스 한 줄
솜씨 있게 그려 넣고
김이 폴폴 나는 어묵 국물을 연신 후후 불어댔다.
계절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그러던 내가 하는 늘 같은 질문.
“오늘 며칠이야.?”
아무리 생각해내려 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네모난 틀 안에 손바닥을 대고
창으로 계절을 느낀다.
창은 커다랗지만 초라하다.
창은 뜨겁지만 달아오르지 않는다.
창은 닿을 수 없고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창은 대답이 없고 살가운 소리가 없다.
창은 시선을 빼앗지만 마음을 뺏지 못한다.
매일 아침
그 창을 드르르륵 열며
새어 들어오는 진짜 여름의 맛을
혀끝으로 끌어당긴다.
매일 저녁
그 창을 드르르륵 닫으며
창에 비추는 나의 흐릿한 얼굴을
바라본다.
계절은 또다시 돌아오고
땀에 젖은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면서
소매가 짧아진 윗옷을 입히면서
실컷 놀다 빨갛게 상기된 두 뺨을 만지며
너라는 계절을 실감한다.
널 처음 만난 겨울의 차가운 공기.
네가 처음 몸을 뒤집고
씩 - 웃던 미소에 반해 찾아든 봄.
그리고, 너를 끌어안고
오르는 이 뜨거운 온도로 여름과 이어진다.
싱그럽게 피어나는 너를 보며
이렇게 다시 계절을 느낀다.
너라는 계절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