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도 별일
아침부터 회사 출입증을 찾아 가방을 뒤적인다.
자주 가지고 다니던 가방 안에 얌전히 들어있는 사원증. 케이스의 색이 바랬다. 워킹맘 D-27 이제 복직까지 채 한 달이 안 남았고 오늘은 회사 방문이 있는 날. 엄마에게 아기 어린이집 등원을 부탁드리고 아침부터 출력물을 뽑아 회사로 갈 준비를 한다. 회사 갈 준비는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가장 큰 난관은 아기도 사원증 찾기도 아닌 ‘회사에 입고 갈만한 옷’ 찾기!
옷장을 아무리 뒤적여도 여름 블라우스에 치마 몇 벌 찬바람이 부는 이 겨울, 회사에 입고 갈만한 옷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직장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나는 대체 그동안 뭘 입고 다닌 거지. 빠른 준비를 위해 화장도 대충, 머리도 대충 묶었는데 옷 고르기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그럴듯한 긴 원피스에 겨우 찾아낸 스타킹, 그리고 코트를 입는다. (스타킹이라니!! 코트라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대체 그동안 뭘 입고 다닌 거야.
“네, 정답은 아기 보기 편한 옷.”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바쁘게 준비하는 이 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핸드폰 안 체크리스트에 ‘입을만한 옷’이라고 빠르게 끄적인다.
아기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방구석으로 옮겨진 쏘서 아래 내 핸드백이 깔려있었고, 나는 적당히 찌그러진 핸드백을 툭툭 털어서 다시 모양을 잡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밖으로 나서는 길,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이렇게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었나.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내 발소리. 분명 구두를 신은 기간이 훨씬 많은데 왜 나는 이 소리가 이렇게 생경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착한 회사, 분명 같은 회사 건물인데 올려다보는 고개가 아프다. 이전보다 더 높게 느껴지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아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건물. 그 커다란 입안으로 빙글빙글 밀려 들어간다.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거는 게 이상해 손에 꼭 쥐고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복직에 필요한 절차를 밟는다. 익숙한 얼굴도 몇몇 지나가고, 사소한 것들도 달라진 모습. 그래도 내 인생의 꽤 긴 부분을 몸 담았던 회사.
일이 전부인지 알았던 그때의 나.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활동반경은 어린이집, 마트, 공원, 놀이터가 전부였고 아기를 데리고 밀폐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어 지하철은 이용할 일이 없었다.
카드지갑을 뒤적여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후불카드를 확인하고 또각또각 개찰구로 다가가 삑! 이 소리가 왜 이리 신기한 건지 삑! 삑! 삑! 잠시 멈추어 서서 다른 사람들이 찍는 카드 소리를 반복해서 듣는다.
지하철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않아 생각한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던 이 일상이 나에겐 이제 참 별일이구나. 오르내리는 계단도 늘 마주하던 1번 출구도 모든 게 별일인 오늘.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퇴근하면 항상 들리던 어묵집을 찾는다. 달라진 메뉴라고는 하나 없는,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어묵집. 익숙하게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퍼담고는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머스터드소스, 양념소스를 한 줄씩 예쁘게 뿌려놓고는 한입.
“이 맛이었지.”
“그래, 이 맛이었어.” 하며
다가오는 복직의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