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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신의 이유 Nov 04. 2022

워킹맘 일기

지하철도 별일




아침부터 회사 출입증을 찾아 가방을 뒤적인다.


자주 가지고 다니던 가방 안에 얌전히 들어있는 사원증. 케이스의 색이 바랬다. 워킹맘 D-27 이제 복직까지   달이  남았고 오늘은 회사 방문이 있는 . 엄마에게 아기 어린이집 등원을 부탁드리고 아침부터 출력물을 뽑아 회사로  준비를 한다. 회사  준비는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가장  난관은 아기도 사원증 찾기도 아닌 ‘회사에 입고 갈만한 찾기!


옷장을 아무리 뒤적여도 여름 블라우스에 치마 몇 벌 찬바람이 부는 이 겨울, 회사에 입고 갈만한 옷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직장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는데 나는 대체 그동안 뭘 입고 다닌 거지. 빠른 준비를 위해 화장도 대충, 머리도 대충 묶었는데 옷 고르기에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결국 그럴듯한 긴 원피스에 겨우 찾아낸 스타킹, 그리고 코트를 입는다. (스타킹이라니!! 코트라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대체 그동안 뭘 입고 다닌 거야.

“네, 정답은 아기 보기 편한 옷.”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며 바쁘게 준비하는  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핸드폰  체크리스트에 ‘입을만한 이라고 빠르게 끄적인다.


아기가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방구석으로 옮겨진 쏘서 아래 내 핸드백이 깔려있었고, 나는 적당히 찌그러진 핸드백을 툭툭 털어서 다시 모양을 잡는 데 성공했다.


드디어 밖으로 나서는 길,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이렇게 신경에 거슬리는 것이었나.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내 발소리. 분명 구두를 신은 기간이 훨씬 많은데 왜 나는 이 소리가 이렇게 생경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착한 회사, 분명 같은 회사 건물인데 올려다보는 고개가 아프다. 이전보다 더 높게 느껴지고 낯설게 느껴지는 그러면서도 아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건물. 그 커다란 입안으로 빙글빙글 밀려 들어간다.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거는 게 이상해 손에 꼭 쥐고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복직에 필요한 절차를 밟는다. 익숙한 얼굴도 몇몇 지나가고, 사소한 것들도 달라진 모습. 그래도 내 인생의 꽤 긴 부분을 몸 담았던 회사.


일이 전부인지 알았던 그때의 나.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 생각해보니 언제 마지막으로 지하철을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활동반경은 어린이집, 마트, 공원, 놀이터가 전부였고 아기를 데리고 밀폐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어 지하철은 이용할 일이 없었다.


카드지갑을 뒤적여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후불카드를 확인하고 또각또각 개찰구로 다가가 삑! 이 소리가 왜 이리 신기한 건지 삑! 삑! 삑! 잠시 멈추어 서서 다른 사람들이 찍는 카드 소리를 반복해서 듣는다.


지하철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않아 생각한다.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던 이 일상이 나에겐 이제 참 별일이구나. 오르내리는 계단도 늘 마주하던 1번 출구도 모든 게 별일인 오늘.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퇴근하면 항상 들리던 어묵집을 찾는다. 달라진 메뉴라고는 하나 없는, 그래서 맘에 쏙 드는 어묵집. 익숙하게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퍼담고는 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머스터드소스, 양념소스를 한 줄씩 예쁘게 뿌려놓고는 한입.


“이 맛이었지.”

“그래, 이 맛이었어.” 하며


다가오는 복직의 맛을 천천히 음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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