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의 절규, - 회사, 그 애증의 시공간
어느덧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되었다.
불안한 20대와 정신없던 30대를 지나, 불혹을 넘고 40대의 고원에 이르면
예전 아버지 세대가 그랬듯 나도 그렇게 자리를 잡고 소위 '안정'이란 것을 누리게 될 거라 착각했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나와 사회, 국가를 둘러싼 세상은 보다 큰 세상의 소용돌이와 톱니바퀴 속에 전혀 다른 rule과 규칙으로 들어가 버렸다.
소위 언론이란 곳에서 떠들어 대던 성공신화와 '할수있다' 마인드 강요는 이제 아무도 믿지 않고,
sns에 가끔씩 올라오는 좋아요 클릭 수준으로 대체되어 버려, timeline을 따라 그렇게 flow 할 뿐이다.
지난 목요일, 근 1주일간 폐렴을 앓고 간만에 회사를 간 날이었다.
속 얘기를 나누는 한 사람에게 선언적으로 말했다.
지난 몇달동안 몇년동안 주기적으로 간헐적으로 되뇌이며 스스로 다짐하고 묻고 생각하고 집어들었던 질문, '넌 여기서 무얼하고 있지?' 미련하기도 하고 잘 참기도 하는 성격인 탓일까, 맞지 않는 옷을 몇년이나 입고 불편한 옷매무새를 꾹꾹 눌러쑤셔가며 그렇게 지내왔었다.
마지막 직장이 될 거라고 다짐하며 뛰어들었던 이곳에서, 거대한 조직의 논리와 톱니바퀴 속에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상과 섬처럼 이 안에서는 그렇게 발버둥치며 살아가며 나이를 시간을 먹어간다.
무언가 배우며 동의하며 발전하는 거야 이건- 이라며 즐거워했던 시간들도 가끔 있었지만,
주로 이 곳에서의 삶은 - 씁쓸함 그 자체였다.
사람을 몰아세우며 일하는 방식이나, 지독하게 관리적인 프로세스로 사람들이 사람들을, 사람들이 가치를, 서로를, 사물을, 분위기를 서로서로 얽어매며 수동적이고 침묵하게 만든다. 벼랑끝으로 끌고간다.
새벽도 아니고 밤도아닌 am 3시. 그렇게 잠못들게 외치던 수많은 구호와 희망과 기대감들 속에 응축된 나의 선언은 피곤하고 저릿저릿한 육신의 아픔과 함께 오후공기 속 한 줄기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감흥없이 내뱉어졌다.
'사실 아무것도 아닌걸까'
미생속 한마디 대사처럼. 회사를 나와 자영업(?) 같은 1인 유통회사를 하고 있는 지인은 권한다.
밖은 지옥 그자체이니 어떻게든 붙어있으라고.
암에 걸린 환자와 가족들의 어려운 decision making처럼, 선택가능한 선택지는 몇 가지 되지 않으며, 그마저도 이득보단 그 선택으로 인한 해악이 더욱 커보인다. 그래서 선택이란 행위 자체는 무의미하다.
명쾌하고 경쾌한 우리들의 好 시절은 사라진지 오래.
취준생이니, 청년백수니, 자영업에 내몰리는 50대들까지.
소위 헬조선 속에서 우리 모두는 흔들리고 좌절하고 휘청댄다.
안그런척 살아가기도 하지만, 불안함과 외로움은 끈덕지게 우리네 영혼을 잠식하고 질식해 들어간다.
자, 지금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가기전 위기 상황이다.
나이가 꽤 많이 먹어버린 중년의 유명 외국 액션 영화배우는 질문한다.
결정을 해야할 시점이, 폭풍이 오고 있다.
여기의 직장생활은 노답인듯하니, 새로운 필드를 찾아 흘러가야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만일 그 모든 시도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이고, 지옥의 현실을 몸소 체험/확인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또 다시 고급알바 자리를 찾아 어느 회사의 시간제 노예로 다시 돌아간다 할지라도.
지금보다는 아주 많이 다른 가치와 각성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i hope so.
애증의 공간에서 잃어버리고 거세된 활발함과 경쾌함, 그리고 무엇보다 웃음을 되찾아 보자꾸나.
매일 매일 즐거운 창작의 괴로움이 있기를.
억눌리고 쥐어 짜내는 것이 아닌, 자유롭고 숨통트이는 그런 너른 들로 가보자.
컴퓨터 그만하고 자기에게 책 읽어달라며 동화책을 들고와 눈앞에 서 있는
2살배기 아들을 조용히 안아보았다.
1고, 15.11.22
2고, 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