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의 길고도 긴긴-겨울방학에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오빠의 모습을 몹시나 부러워하는 둘째의 소금기 없는
눈물 한 방울에 넘어갔다. 유치원 땡땡이.
하루가 이보다 더 길순 없겠지 싶지만 이때 아니면 언제 또 땡땡이를 쳐보나 싶어 눈을 질끈 감는다.
가짜눈물에 동의한 나에게 다시 한번 확인한다.
너. 정말 괜찮겠어?라고.
아침상을 물리고 시끌벅적 세상은 요지경 같은 그들만의 공간을 뒤로하고 커피와 책을 들고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 앉는다. 그들 눈에 금방 띄어서도 안된다. 돌아올 점심밥을 차릴 힘의 원천이자 하루 중 소소한 행복함을 주기에 기다리던 시간이니까 발각되더라도 최대한 늦-게.
고소한 커피 향을 코로 마셨으니 이제 입으로도 마셔볼까 하는 찰나 컵이 공중에서 돌고 있는 것은 꿈인가.
촤-악.
바닥에 흩뿌려진 커피옆에는 엄마에게 달려오다 일이 잘못됨을 감지하고 눈만 껌뻑이는 둘째가 서있다.
강줄기처럼 흐르는 커피를 보며 깊-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하-아.
소리를 질러말어. 질러? 아니야. 실수였어. 엄마한테 급하게 할 말이 있었겠지. 암. 그렇고말고.
숨을 꿀꺽 삼키며 바닥만 연신 닦아대며 마음을 추슬러보다 내지르고 말았다.
외마디 야!!!로 시작된 내지름은 커피를 돌려내라는 유치한 으름장으로 일단락 지었다.
붙었다 하면 요지경 같은 그들의 세상은 오늘따라 더욱이 파이팅이 넘친다.
그럴수록 엄마의 금지어는 늘어만 간다. 온통 마라 마라 하지 마라.
점심상과 간식상을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하다 마지막 끼니인 저녁상을 물릴 때쯤 맑은 고음이 들려온다.
"쨍그랑"
"거 봐 거 봐. 밥 먹을 때 장난치는 거 아니라고 했어 안 했어. 이게 뭐야."
식사시간 내내 치던 장난에 이미 경고카드를 들었것만. 퇴장이다. 하루동안 간신히 붙들고 있던 내 이성도 퇴장이다. 엄마의 모진 말과 고성으로 맞바꾼 두 녀석의 닭똥 같은 눈물. 태풍 같던 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깨진 유리컵을 수습하고 씩씩거리며 설거지하는 내 뒤로 녀석들이 분주하다. 하지만 관심과 신경을 쓸 힘을 더 이상 내고 싶지 않았다. 모르쇠로 일관하며 주방마무리를 지을 때쯤 머쓱한 웃음으로 수줍게 두 손에서 캔커피와 노란색종이를 내민다.
"엄마, 밥 먹을 때 장난쳐서 미안해. 아까 커피도 못 마시고. 이거 마셔. 서하랑 편의점에서 사 왔어. 1+1이라 두 개야. 히히. ”
"엄마 예쁘게 그려서 보여줄라고 그랬는데 모르고 부딪혔어 미안해, 엄마."
"엄마가 더 미안해. 못 알아봐 줘서 엄마가 더 미안해. 마음도 몰라주고 화부터 내서 미안해. 얘들아."
장난밖에 모르는 요지경 속에서만 사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하루종일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놀이 속에서도 엄마가 떠올라 그림을 그려주고 엄마의 소소한 행복도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들의 마음씨를 이제야 알아보다니.
다정함보다는 혼내는 일이, 사랑해 보다 혼냄에 미안하다 말하는 날이 더 많음에도 아이들은 언제나 엄마를 좋아해 주고 몇 번이고 괜찮다 용서해 준다.
당장이 힘에 부친다 고되다고만 생각했지 엄마를 열렬히 사랑만 해주는 시간이 길 지 않다는 것을 자꾸자꾸 까먹는다. 먼 훗날 바람같이 흘러갈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립고 그립겠지.
열렬한 이 사랑 오랫동안 받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필요로 할 때 몇 곱절로 돌려주고 싶다.
지금은 다시 오지 않을 이 시간 마음껏 사랑받고 사랑하며 즐겨야겠다.
잠들기 전 읽을 책을 가져온 오늘의 책은 '엄마가 정말 좋아요'.
얘들아, 엄마도 너희를 정말 많이 좋아해.
*사진출처: 내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