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내가 나의 엄마에게 쓰는 편지
아침 청소하려 켜둔 블루투스 스피커 너머로 흐르는 라디오 속 신청곡이 엄마에게 편지를 쓰고 싶게 했다.
엄마에게.
나도 엄마가 되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그랬던 내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네. 벌써 10년 차다.
아이를 낳은 날부터 그렇게 바로 엄마가 되는 줄은 몰랐어. 엄마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 엄청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한 줄 알았는데. 탯줄을 자르는 순간 엄마가 되더라고. 인생 어느 순간이나 처음 겪는 일들 투성이지만 엄마가 돼 가는 일은 아직도 물음표 투성에 때로는 어둠만 가득한 흙밭을 걷는 기분이야.
이정표 없는 그 길을 요즘시대 엄마인 나는 이리저리에서 듣고 얻은 정보와 매체 덕분에 잠시나마 속도 풀고 위로도 받으며 한숨 돌리고 마음도 다잡는데 그 시절 엄마는 무엇으로 버티고 견뎌가며 우리를 키워냈을까?
근데 말이야, 엄마는 무엇으로 버티고 견딜지를 헤아려보기까지 꽤 오래 걸렸어.
궁금하지 않았어. 긴 세월을 알고 싶지 않았어. 엄마가 된 나만 보였어.
그동안은 엄마처럼만 하지 말자만 되뇌고 다지고 또 다지며 굳게 다졌어.
엄마가 돼 보니 엄마가 이해되면서도 그럴 때마다 너무 미웠어.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을까 하면서.
엄마가 했던 반대로만 하면 내가 꿈꾸었던 좋은 엄마가 될 줄 알았어.
그리고 엄마한테 보란 듯이 보여주고 싶었어. 엄마는 그것밖에 못했지만 나는 엄마랑 달라서 좋은 엄마가 되었다고.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정말 좋은 엄마야 라고 말 할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어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 시절 엄마의 선택지도 지금의 내 선택지도 정답은 없다는 걸 알게 됐어.
틀리고 맞은 사람은 없어. 아무도.
우리는 엄마로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한 선택을 한 것뿐이라는 걸.
눈 깜빡할 사이에 시간이 총알처럼 흐른다고 말하는 엄마가 고리타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 내가 그 말을 하고 살 줄이야. 하루하루가 모여 한 달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엄마의 말이 생각나며 눈물이 핑 돌더라고. 더 열심히 살 것을, 더 잘해줄 것을, 더 많이 안아줄 것을, 더 많이 사랑할 것을, 하며 말이야.
손자 손녀들에게서 엄마의 아들 딸이 보이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미안해하며 더 열심히, 더 아껴주며,
더 사랑한다 말 못 한 미안함을 우리 아이들에게 맘껏 해주는 엄마 마음과 흐르는 시간을 붙잡지 못한 아쉬움이 이제야 보여서일까. 그래서 엄마 몫까지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 엄마의 후회까지 내가 다 덮어주고 싶어졌어.
엄마는 내게 상처만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준 많은 것 중에 상처만 고이 받아 새겼더라 내가.
엄마는 사랑이었지만 나는 그걸 상처라 이름 붙여 새겨두었어.
아픈 건 나라고만 생각해서였을까. 아이를 낳고 나면 친정엄마와 더 애틋해진다는데
나는 엄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늘 불편했었어. 아니 가고 싶지 않았어.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눈치는 세월이 갈수록 나를 짓눌렀어.
딸과 엄마는 애증의 관계라고 농담 삼아 말했던 엄마의 말에 애써 웃었지만 나는 애는 없고 증만 가득했었어. 불편해하는 나를 알아차린 엄마가 더 많이 상처받은 건 생각도 못하고 말이야.
줄 수 있는 모든 걸 주고 또 주어도 모자라다 생각해 마음 한구석이 늘 저린 게 엄마마음인데
상처만 줬다고 못난 생각만 했던 딸이 엄마가 되어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네.
이젠 엄마가 준 많은 마음을 되새겨 나눠보려 해. 그중에 좋은 걸 골라 우리 아이들에게 주려고.
그 시절 좋은 것에 요즘의 좋은 것을 더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늘 젊고 기세 등등 할 것 같은 엄마도 세월에는 어쩔 수 없음에 더 늦기 전에 이 편지를 쓸 수 있어서 다행이야.
엄마, 엄마자리에 늘 있어줘서 고마워.
딸이었을 땐 안 보였던 엄마가 엄마가 되고 나서 보이네.
나도 엄마처럼 늘 엄마자리에서 우리 아이들 곁에 있을 거야.
엄마, 정답 없는 육아의 길 묵묵히 걸어오느라 애 많이 썼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능력을 다 썼으니 이제는 엄마로 살고 있는 나 지켜보며 엄마 당신의 삶 재밌게 살아. 나도 내 삶 재밌게 살아볼게.
웃으며 건강히 살자. 엄마, 고마워.
언젠가 꼭 비우고 덜어내고 싶었던 엄마에 대한 묵은 감정을 보통날의 오늘 떠나보내고 싶어졌다.
온전히 다 보낼 순 없겠지만 증만 가득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비워지길.
라디오 신청곡이었던 양희은&김창기-엄마가 딸에게(feat. 김규리)를 듣게 된 오늘이 감사하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내 사진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