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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리 Feb 16. 2023

토토를 위한 택배박스

애착인형 토토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딸의 이야기.

엄마, 토토집 어디 있어? 버렸어? 엄마 미워! 미워




아뿔싸. 들켰다. 분리수거할 박스에 꾸겨버렸는데.

아마도 한 열 번쯤은 될 것이다. 토토집을 내다 버린 건. 내다 버리는 엄마도, 택배박스로 집을 만들어대는

딸도 열심히다. 제 할 일을.


딸에게는 '토토'라는 친구가 있다. 분홍색 토끼 인형이다.

아이가 8개월이 되던 즈음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날이 크리스마스였다.

쪼그마한 아이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태어나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보내는 것 또한 짠하여 병원 근처 마트에서 급하게 사서 아이 품에 안겨주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토토는 딸에게 둘도 없는,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친구다.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면 잠깐 빌려 주었다가 다시 찾아와 할머니가 돼서도 함께 하겠다고 한 그런 친구다 토토는.

격렬하게 사랑한 탓에 양쪽 팔과 다리는 몇 번이나 떨어져 나가 바느질로 봉합을 해야만 했다. 보송보송하고 뽀얀 분홍빛의 보드라운 털은 손때가 묻을 때로 묻어나 꾀죄죄 해져 잿빛이 돼버렸다.

그런 토토를 보고 친한지인이 똑같은 새인형을 선물해 준 적이 있는데 우리 토토 아니라고,  토토한테 나는 냄새가 없다며 한사코 싫어해서 그냥 돌려준 적도 있었다. 딸만 맡을 수 있는 토토의 체취.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를 좋아하는 딸아이가 미술학원을 다니고부터 제일처음 제일 많이 그리기 시작한 것

 또한 토토이다.

한글에 관심을 가지고 처음 배워 쓴 글자 또한 토토였다. 토토라는 글씨를 알고 싶어 해서 한글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단한 사랑이다. 나도 이렇게 무언가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해 본 적이 없는 듯한데. 토토를 향한 딸아이의 사랑은 가히 대단하다.

<미술학원에서 토토를 그리는 딸아이의 진지한 뒷모습>


그러던 어느 날부터  택배박스를 정리하려고 한쪽으로 치워두면 딸아이는 토토를 하나씩 넣어본다.

그리곤 알아들을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정리를 빨리해야 한다는 것에 몰두한 나는 딸아이가 그냥 비켜줬으면 했다. 집안일은 늘 산더미 같으니 서둘러 마무리를 지으려면 방해꾼이 없어야 하니까.

그냥 적당히 멀쩡해 보이는 거 하나 던져주고 얼른 치우기 급급했다.

박스를 손에 넣은 아이는 정성껏 꾸민다. 색연필, 사인펜, 크레파스, 색종이들로 혼신의 힘을 다해 꾸미고 붙인다. 딸아이만이 할 수 있는 토토를 위한 집 짓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택배가 한꺼번에 많이 오는 날은 나보다도 더 신나 했다. 택배 속 내용물에 신난 엄마와 박스가 생겨 신난 딸. 집 한 채도 갖기 어려운 시대에 토토는 하루새에 무려 4채의 집을 갖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집안에 집이 점점 쌓여가는 날이 늘어갈수록  그 꼴을 지켜보는  한숨도 쌓여만 간다. 기회는 아이가 유치원을 가고 없는 시간이다. 재빨리 쓸어 담아 정리를 해치운다.


어-후, 속이 다 후련하다.

째려볼 딸아이의 눈빛은 무섭지만 깔끔해진 공간이 시원하고 후련함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을 해본다.




하원 후,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에 긴장은 했지만 내다 버리는 일이 다반사라 이번에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날은 여느 날과 달랐다.

쉽사리 그치지 않는 눈물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달래 보지만 아이는 눈물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나에겐 늘 똑같은 조금 가지고 놀다가 내다 버릴 박스에 불과했지만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단짝친구였던 유치원친구가 멀리 이사를 가게 되어 만나기 힘들어져서 아이가

한동안 힘들어했을 때 토토가 단짝친구를 대신해 그 곁을 지켜주었고

그 집은 친구와 함께 살자 약속하며 만들었던 집이었다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어쩌면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 눈엔 그저 버릴 물건으로만 보였을 테니.


 딸에게 토토는 단순한 애착인형이 아니었다. 스쳐 지나갈 그런 인형이 아니었다. 딸아이의 온 세상이자 전부였다. 그리움, 진심, 기쁨, 행복, 불안, 두려움, 슬픔, 그리고 영원한 사랑.

토토는 딸아이 자신이자 모든 것이었다. 정리에 급급해 내다 버리기만 했던 많은 날 들 중 오늘은 정말 미안했다.

딸아이만큼의 솜씨는 없지만(미술엔 젬병인 엄마) 제일 튼튼하고 깔끔한 박스를 준비해 집을 만들어본다.

가위질도 해보고 리본도 묶어보고 문패도 달아본다. 허접하기 짝이 없지만 아이는 너무나 좋아해 준다.

 미워했던 엄마가 최고의 엄마가 되었다. 박스 하나로.

토토와 함께 기뻐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는 진심을 다했던 적이 언제였는지. 그런 적이 있었는지.

아이는 언제든 어느 순간이든 아무것도 아닌 것도 다시 보게 하고 알고 있다 생각했던 것도 다시 알게 한다. 그런 딸아이와 토토가 오늘은 참으로 고맙다.

토토의 왼쪽 팔이 또 떨어지려 덜렁거린다, 오늘만큼은 정성 들여 한 땀 한 땀 꿰매줘야겠다.

<허접하기 짝이 없지만 딸아이와 토토를 위해 마련한 택배박스로 만든 토토의 집 >






토토야, 네 한 몸 희생하며 서하 곁에서 소중한 친구가 되어주어 고맙구나.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비밀도 듣게 될 토토가 부럽기도 하네.

언젠가 서하가 곁을 잠시 떠났을 때 내가 너의 곁에 있어줄게. 그리고 서하에게 다시 전해줄게.

서하의 전부인 토토야, 고맙구나.



*사진출처: 내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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