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무너진 후, 다시 시작된 우리 가족 이야기
'안정'이라는 환상이 깨진 날, 우리는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익숙했던 사무실과 든든했던 월급봉투까지, 모든 것이 사라진 후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저는 새로운 일상에 몰두했습니다. 바로 '육아'였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고,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와 함께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꿈도 못 꾸던, 아이의 등하원길을 제가 직접 챙기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내 없이 아이와 단둘이 놀이터에 있는 아빠는 저밖에 없는 것 같아 속으로는 꽤 뿌듯했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나름 능력 있는 사람이라 믿었기에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저 잠시 숨 고르기일 뿐,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우리 가족의 삶은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사실 아내와 제가 함께 일하며 벌 때는 월 천만 원 이상을 벌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풍요로움이 곧 행복이라고 믿었습니다. 세상이 우리가 노력한만큼 보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아이에게 가장 좋은 이유식과 영양제, 좋은 옷들을 사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가장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단단해 보였던 그 풍요로운 삶은 사실 모래성과 같았습니다.
얼마 전, 아내는 오랜 시간 애정을 쏟았던 자영업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어린 나이에 자영업을 시작하며 '빨리 돈을 벌어 가정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가두었습니다. 월세가 비싼 편은 아니었지만, 매달 조금 더 안정적으로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늘 쫓기듯 살았죠. 더 빨리 안정되고 싶은 욕심에 매일 많은 수업을 하면서 육아까지 병행했습니다.
아이와의 짧은 시간은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힘이었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그때를 돌이켜보며 아이와 교감하는 행복이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생각을 덮어버릴 만큼 소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성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아이와 더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함께 사진을 볼 때마다 아내가 반복하는 말이기도 하죠.
운동 강사였지만, 남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면서, 정작 자신의 몸은 악화시키고 있었던 겁니다. 그 무리한 일정과 과도한 노동이 그녀를 번아웃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얼마나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으면, 한의원에 약을 지으러 갔을 때 한의사가 맥이 안 뛴다고 할 정도였을까요. 결국 아내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저는 '잠깐 쉬어가면 괜찮아지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정에 찾아온 두 번째 비극은 아내의 폐업 과정에서였습니다. 상가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우리는 법적인 소송을 걸어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그 상가에서 장사하시던 다른 분들 모두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죠.
자영업을 시작할 때 대출까지 받아 어렵게 마련했던 보증금 2천만 원을 그대로 잃었고, 심지어 원상복구 비용 500만 원까지 추가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소중한 종잣돈 2천 5백만 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불안했던 제 마음은 이제 절망에 가까워졌습니다.
사실,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아내의 건강이 돈보다 우선이 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마음 한켠에는 매월 비어가는 통장 잔고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말이죠.
그날 밤,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제 손을 잡았습니다. 저는 아내의 따뜻한 손을 잡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아내가 말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제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그 말에는 힘든 현실을 기꺼이 함께 나누겠다는 단단한 믿음이 담겨 있었죠.
그 말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눈앞의 돈을 잃었지만, 더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바로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는 마음이었죠. 아내의 폐업, 그리고 저의 퇴사가 동시에 벌어졌을 때, 우리는 돈 대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당장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우리 가족의 소중함을 지켜낼 용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더는 무기력하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나이 마흔에 이르러서야 제가 할 줄 아는 것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릴 적 음악이 좋아 악기를 배워본 것이 유일했지만,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죠.
마치 벌거벗겨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나이는 40대인데,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의 역할 앞에서 저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저것 알아보았지만, 나이 때문에 변변한 아르바이트 자리조차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또다시 절망에 빠지려던 그때, 우연히 미디어에서 블로그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뭐라도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무언가를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이 저를 몰아세웠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블로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