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아빠라는 자책감, 그리고 사라지는 통장 잔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익숙했던 사무실과 매일 보던 동료들, 그리고 늘 든든했던 월급까지.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남은 것은 막막함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저는 새로운 일상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육아'였죠.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었고, 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와 함께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좋았습니다. 과거에는 꿈도 못 꾸던, 아이의 등하원 길을 제가 직접 챙길 수 있었으니까요. 아이의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가고, 놀이터에서 마음껏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내 없이 아이와 단둘이 놀이터에 있는 아빠는 저밖에 없는 것 같아 속으로는 꽤 뿌듯했습니다. '이만하면 좋은 아빠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사실 저는 제가 나름대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일했고, 열심히 살아왔으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곧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저 잠시 숨 고르기일 뿐이라고,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새로운 것들을 공부하며 과거처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우리 가족의 삶은 예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마음 한편에는 묘한 자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과거에는 숨 쉬듯이 아무렇지 않게 사주던 아이 간식 하나,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 한 잔을 사주기 망설여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 사줘'라고 말할 때, '다음에 사줄게'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죠. 그렇게 퇴사 후 누리던 작은 행복과 뿌듯함은 결국 무능한 아빠라는 자책감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행복도 잠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손에 쥐어진 퇴직금은 고작 3~4천만 원. 월 100만 원 남짓한 고정 수입으로는 한 가정을 꾸려나가기에 턱없이 부족했죠.
문제는 매달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이었습니다.
전세 이자: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서 30~40만 원 하던 전세 이자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관리비, 보험료, 연금: 평균 40~50만 원이던 관리비에 건강보험료, 연금까지 합하면 매달 200만 원이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생활비를 최대한 아껴 쓴다고 해도 월평균 300만 원의 지출이 발생했죠. 저는 매일 계산기를 두드리며 이 돈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통장에서 매달 200만 원씩 사라지는 속도는 저를 옥죄어왔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습니다.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력서를 수도 없이 넣어봤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나이가 많다"는 싸늘한 한마디뿐이었습니다.
새로운 것들을 배워 최소한의 생활비라도 벌어보겠다는 의지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금방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던 자신감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죠.
아내 없이 아이와 단둘이 놀이터에 나왔을 때,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와 단둘이 있는 아빠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아빠는 능력이 있어서 지금 저 시간에 직장에 있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유 모를 자격지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감마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밤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 침대에 앉아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습니다. 저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그리고 저의 남은 퇴직금으로 우리 가족의 미래를 지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