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나브로 Nov 04. 2020

셋째가 생겼어요

[임신, 여전히 낯선 세계] - 임신 테스트기 두 줄, 셋째가 생긴 기분

셋째가 생겼어요(5주 2일, 태어나기까지 앞으로 243일)


‘생리 예정일로부터 +3일 지났습니다.’

바쁜 일상에 생리 예정일이 지난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다. 문득 알림을 보고 ‘혹시?’하는 생각에 둘째 때 사용하려고 사뒀다가 서랍장에 하나 덩그러니 남아 있던 간이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다는 아침 첫 소변이 흡수되면서 테스트기의 대조선이 빨갛게 물들고 결과선의 색상이 나타나기까지 3분 여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동안 심장은 마구 두근거렸다. 대조선에 이어 결과 선도 선명한 두 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한 내 심정은 막막함과 당혹스러움이 먼저였다. 분명 작년 둘째 출산 이후, 우리 부부는 셋째를 가지기로 진중한 의논을 하고 계획을 세웠음에도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셋째의 임신 소식은 날 당황시켰다. 왜 임신 소식은 여자에게 마냥 기쁠 수만 없는 걸까. 분명 계획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축복받아 마땅한  소식은 막상 화장실에서 밀려드는 당혹감이 먼저였다. 10개월의 임신 과정 속 입덧과 출산, 그 후 육아기 동안 엄마인 내가 여자로서, 나의 커리어로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리라. 둘째가 아직 태어난 지 5개월이고, ‘육아휴직 중인데 회사에는 어떻게 얘기하지’라는 생각이 날 걱정과 초조, 불안으로 내몰았다. 임신 인지도 모른 채 어젯밤 마지막으로 신나게 마신 맥주 한 캔이 떠올랐고,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크고 작은 스케줄이 떠올랐다.

당분간, 아니 임신기간과 수유기간까지 고려하면 2 년 간은 맥주여, 안녕!


출근한 남편한테는 언제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회사에 있을 때 집에 전화를 거는 일이 거의 없는데, 이 날 따라 다른 용건으로 남편이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통화가 끝날 무렵, 나는 입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아 뜸을 들였다. 눈치 백 단 인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셋째가 생긴 거 같아.’라는 나의 이야기에 잠시 놀라더니 바로 이어 축하한다며 무거운 거 절대 들지 말고 집에 편히 있으라 했다.


다음 날, 남편이 약국에서 사다 준 좀 더 정확도가 높다는 임신테스트기로 재차 확인을 했다. 어김없이 선명한 두 줄이었다. 첫째와 둘째 임신을 확인했을 때는 바로 그다음 날, 산부인과에 달려갔었으나 이번엔 일주일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너무 일러서 아기집을 확인하지 못하고 돌아온 기억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일주일을 보냈다. 냉장고에 떨어지지 않게 쟁여두곤 하던 맥주를 끊었고, 매일 마시던 커피도 줄였다. 건강한 음식을 먹었다. 내 안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의 자각만으로도 내 입을 통해 몸으로 들어가는 모든 음식물에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상당히 둔한 편이라 임신 초기 증상을 느껴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내 몸의 반응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인다. 더 이상 홀몸이 아니니까. 조금이라도 몸이 처지고 지칠 때에는,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함께 휴식을 취했다.


일주일 뒤, 미리 예약해 둔 병원에 남편과 함께 초진 검사를 하러 방문했다. 초음파로 확인 결과, 5주 차였다. 아기집도 자리를 잘 잡았고, 추후 배아가 먹고 자랄 영양분인 난황도 보인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이어 아기가 생긴 것을 축하한다는 말에 나는 활짝 웃었다. 모든 게 잘 있다는 전문의의 확인에 마음이 놓였다. 마치 처음 아이를 가져본 것처럼 손에 진 초음파 사진이 낯설고 신기하고 기뻤다.


양가 부모님께 소식을 알렸다. 사전에 우리 부부의 셋째 계획을 굳이 부모님께 말씀드린 적이 없었던 지라, 셋째 소식에 모두들 깜짝 놀라며 축하해 주셨다. 혹여 며느리에게 부담이 될까 내 앞에서 티는 단 한 번도 내지 않으셨지만, 내심 바라셨을지도 모를 소식이다. 특히 아버님은 연신 내게 ‘고맙다’고 하시며 무척 기뻐하셨다. 엄마는 축하하면서도 곧 내게 닥쳐 올 입덧과 육아를 걱정했다. 여섯 살 첫째는 동생이 또 생겨 ‘기분이 좋아’라고 했다. 수시로 내 휴대폰을 열어 셋째 아기의 상태를 어플로 확인하며, 몇 밤 자야 동생이 태어나는지를 여러 차례 묻는다. 아직 콩알만 한 젤리보다도 작은 셋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 축복이자 큰 기쁨을 선물해 준다는 사실이 놀랍다.

덕분에 처음 마주했던 때의 불안과 걱정은 사그라지고, 생각보다 이르긴 하지만 어차피 결국엔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던 셋째의 임신 소식이니 '다 잘 된 거겠거니' 생각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엄마가 엽산도 잘 챙겨 먹고 할 테니 건강하게만 자라 다오, 부디. 243일 뒤 만나게 될 그 날을 기다릴게.

 

세 번째 임신 이어도 여전히 새로운 초음파 사진. 반가워, 셋째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