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기대감으로 불꽃놀이가 한창인 가슴을 안고 할인부스가 아닌 알라딘 박스오피스를 향해 전진했다. 좀 더 좋은 시야의 좌석을 위해 나란히가 아닌 앞뒤로 앉기로 절충하고 티켓 구매 성공.
여기서 멈출 수 없다. 평소 무엇을 하더라도 제대로 하고 싶은 남편은 세월이 검증해 주는 실패 없는 작품도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다음 미션은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에 이어 장기 공연 뮤지컬 제3위이자 역대 가장 많은 수익을 남긴 뮤지컬 1위 '라이온 킹' 티켓 구하기. 초연 이후 매진행진을 이어 가는 터라 현장구매티켓이 남아있을지 미지수였지만 박스오피스로 향했다.
날렵한 검은 뿔테안경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가 돋보이는동양인 직원이 절도 있는 목소리로 내일 저녁 티켓이 남아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고 우린 머리를 맞대어 최상의 좌석을 결정했다.
"318달러."
큰돈이지만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뉴욕'이라는 마법 같은 문장 앞에서 빳빳한 100달러짜리 지폐 4장을 창구 앞에 순순히 내려놓았다.
직원은 손을 뻗어 지폐를 빠르게 헤아리더니 3장뿐이라 했다. 그럴 리가 없는 나는 다시 세어보라 눈짓했지만
"아니야~"
라고 어색하지만 확실하고 약간의 장난이 섞인 한국말로 날 재촉한다. 저 말은 누가 가르쳐줬을까. 단호하게 아니야라고 말해야 하는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가 숙연해진다.
나는 약간의 미소를 띤 얼굴로 지폐가 서로 붙은 거 같으니 다시 확인해 달라 했고 사라졌던 100달러를 찾은 직원은 "오." 외마디 민망함을 표현하며 잔돈을 거슬러줬다.
성공적으로 티켓을 구한 안도감에 밥 안 먹어도 배부를 것 같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햄버거의 고장에서 인생 햄버거를 만나고 싶다던 남편을위해 미리 검색해 둔 리스트를 꺼내 타임스퀘어 중심가에서 가까운 버거 맛집 파이브냅킨버거로 향했다.
육즙이 풍부하고 내용물도 알차서 이 집 버거를 먹으려면 적어도 냅킨 다섯 개가 필요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단다. 별 다섯 개의 맛까지는 아니었지만 잘 정돈된 분위기 속 여유 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뉴욕에서의 첫끼였다.
마음과 뱃속까지 든든해진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아직 정하지 못한 우리의 숙소로. 뼛속까지 계획형 J 인간인 남편이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듯 혼돈의 뉴욕여행을 즐기고 있다니! 대견했다.
많이 둘러볼 것도 없이 눈앞에 보이는 숙소를 바로 검색해 본다. 물론 뉴욕 중심가의 숙소답게 가격이 착하진 않다. 하지만 리뷰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고 위치도 뮤지컬 공연장에 가까우니 통과. 그렇게 첫 번째로 들어가 본 호텔은 속전속결로 우리 2박 3일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고 잠시 몸을 뉘었다. 아직 시차부적응으로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 중이던 우리에게 공연관람 전 필요한 건 낮잠이었다. '아까 안내스크에 있던 초콜릿칩쿠키를가져왔어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정신이 차려보니 공연시작 40분 전. 부랴 부랴 호텔을 나서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공연장에 도착했다.
2층으로 올라가 남편이 앞 좌석 나는 뒷좌석에 앉았다. 화려한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을 이겨보려는 남편의 사투도 시작되었다.
무대에서 다소 먼 거리인지, 자스민의 솔로곡 Speechless가 뮤지컬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실망감인지, 남편의 안쓰러운 뒷모습 때문이었는지 나 역시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양탄자씬의 맹활약에도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생동감으로 가득한 타임스퀘어 밤거리를 남편과 걸으며 세계적인 무대에 거는 기대에 못 미친 거 같다는 솔직한 관람후기를 나누었다. 그래도 우리에겐 내일의 희망, 하나의 공연이 남아있었다! 라이온 킹의 어깨가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