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수년 전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낸 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여전히 그 슬픔 속에 산다는 친구의 고백.
어렵게 세상에 나온 이야기를 함께 품어주고 싶었다.
"우리... 지금이라도 보내줄까?
공기도 맑고 풍경도 예쁘고
물도 흐르는 곳으로 가자.
아가한테 입혀주고 싶었던 예쁜 옷도 준비하고,
해주고 싶었던 말도 편지에 써서
유리병에 띄워 보내면...
어떨까?"
내 손등 위에 포개진 작은 손의 떨림,
두 눈 가득 차오르던 눈물을 떨구는 가녀린 끄덕거림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깊은 애정은 설정된 경로를 이탈해 새로운 길로 들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어려서부터 컴퓨터게임 외길만 걷던 남편을 책상에 앉힌 것은 일본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るろうに剣心)》이었다. 이 매력적인 작품을 자막 없이 보기 위해 그는 일본어를 배웠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인턴으로 일본에 살기도 했다.
일본에 대한 나의 무관심도 남달랐다. 왜 관심이 안 가는지 굳이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에게 먼 나라였다. 하지만 남편을 만난 뒤, 알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추억의 거리를 둘이서 걷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어린 날의 남편이 사랑한 나라로 연말여행을 떠났다. 오랜만에 가게 된 일본에서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텐데 남편은 모든 일정을 나의 취향에 맞게 짜주었다.
대구에서 나리타공항까지 짧은 비행이었지만, 다 읽어가는 송지영 작가님의 에세이 《널 보낼 용기》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딸 서진이가 떠난 뒤 네 명에서 세 명이 된 가족이 아픔 너머 나아가는 삶을 위해 찾은 첫 여행지가 도쿄였다는 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나는 일본을 여행하는 동안 곳곳에서 송작가님의 사랑스러운 가족을 떠올렸다.
랜드마크를 돌며 기념사진을 찍을 때면 도쿄의 추운 밤거리를 하염없이 걸으며 눈은 울고 입은 웃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는 3인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반짝이고 따뜻한 코코아향이 코를 자극하는 거리에서는 겨울의 정취를 유난히 좋아했다는 밝고 사랑스러운 서진이의 얼굴을 상상했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쇼핑할 때는 형식적인 추도식 대신 딸이 좋아했던 음식과 음악 그리고 사람들로 채워진 따뜻한 모임을 구상 중인 송 작가님이 떠올라서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나에게 미녀와 야수 어트렉션을 보여준다는 목표에 올인한 남편의 뒷모습과 자녀들이 행복하다면 무엇이라도 감수하는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한 부모님들의 뒤통수는 묘하게 닮아있었다. 장엄한 등장이 아니라서 조금만 방심해도 놓치게 되지만, 사랑이 실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아주 가까이에 어디에든 있었다.
서진이 엄마가 서진이에게 속삭이던 말을 복사 붙여넣기한 듯 서진이 아빠의 일기장에 적혀있었다는 글을 나는 여행 내내 곱씹었다.
네가 괜찮으면 아빠도 괜찮아.
네가 좋다면 나도 이해할게.
네가 행복하면 아빠도 행복해.
널 보낼 용기 Pg.199
미사여구 없이 진실된 몇 줄의 문장에는 사랑의 본질이 담겨있었다. 자신을 집어삼킬듯한 슬픔 앞에서도 기꺼이 그리고 끝까지 상대의 자리에 서 보는 일은 사랑이 분명했다.
이 책은 열일곱 살 딸을 잃은 자살 사별자 엄마의 무거운 슬픔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었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은 생살을 베어내는 고통이지만 두고두고 아플 만큼 사랑한 대상이 있는 삶은 또 얼마나 가슴 시리도록 아름다운가.
그동안 차마 놓아주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다면 아름다운 작별을 할 수 있는 연말이 되기를.
내려놓기 힘들 만큼 소중했던 순간들에 다시 한번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눈물은 고이고 우리는 찬란하게 빛나
우린 좋은 안녕 중이야...
안녕은 우리를 아프게 하지만 우아할 거야.
Good Goodbye by Hawsa
연말을 맞아 제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해 주고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들을 글벗님들과 공유하고 싶어 골라보았습니다 :)
한 해 동안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노래 I'll Always Remember You by Miley Cyrus
https://www.youtube.com/watch?v=vos8RFgjspg
책
1. 널 보낼 용기 https://brunch.co.kr/@summer2024/92
2. Love you, Mean it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27000943
영화
오베라는 남자
https://www.youtube.com/watch?v=_ilvDwW7Ibs
다큐멘터리
All the Empty Rooms 텅 빈 모든 방
https://www.youtube.com/watch?v=JhpJ8INsR0g
All The Empty Rooms
All The Empty Rooms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