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동행

by 샤인젠틀리

새벽 두 시 반 집 앞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몇 시간째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던 남편과 나는 구급차에 올라탔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CT를 찍었다. 4번과 5번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아침이 되어야 정확한 진단과 처치를 받을 수 있어 입원 수속을 밟았다.


몇 장의 서류에 서명을 마치고 소변통을 건네받았다.

“24시간 옆에 있으실 수 있죠? 간병인 없는 병동이라서 계속 같이 계셔야 해요.”

갑작스럽게 닥친 상황에 덜컥 겁이 났지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이리저리 옮겨지느라 지친 남편은 응급실 침대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그의 머리맡 의자에 앉아 병실로 이동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도착한 병실의 가구 손잡이며 모서리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다. 아담한 침대에 남편을 눕히고 그 아래서 간이침대를 끌어냈다. 세로 길이가 내 키 167cm보다도 짧았다.


‘나도 겨우 구겨 넣었는데… 장신인 사람들은 입원도 쉽지 않겠네.’

응급 상황에서도 내 오지랖은 한결같았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 반이었다. 얼마동안 이어질지 모르는 병원살이의 시작이었다. 날이 밝고 신경주사와 진통제를 맞았지만 몸 마디마디 새겨진 공포감이 남편의 몸짓에 담겨 있었다.


전날 극심한 통증으로 입지 못한 입원복을 입혀주고 소변을 볼 수 있도록 소변통을 들어주었다. 차가워진 두 발에 양말을 신겨주고 열심히 주물러 이불로 감싸주었다. 바쁜 생각들이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 이렇게 남편이 영영 못 일어난다면 어떡하지. 내가 가장이 될지도 몰랐다.


급히 오느라 지닌 것 이라곤 입고 온 옷과 크록스 한 켤레가 전부였다. 양해를 구하고 필요한 짐을 챙기러 집으로 향했다. 간밤에 불편한 자세 때문인지 등과 허리에 곰 대여섯 마리가 쿵쿵 뛰고 있었다.


잠시라도 편안한 침대에 눕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세면도구, 속옷, 수건 등을 배낭 가득 싣고, 내 집이어도 누릴 수 없는 집을 뒤로하고 병원으로 복귀했다.


집에 다녀온 사이, 7 병동은 새로 입원한 사람들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병원은 절대안정이 필요한 장소이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마주했다. 몇 시간마다 상태를 점검받느라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것은 불가피했고, 좁은 공간에서 하늘하늘한 커튼 한 장이 지켜 낼 수 있는 프라이버시는 거의 없었다.


흥 오른 전국노래자랑 무대를 연상시키는 우렁찬 벨소리, 식사예절이 그대로 중계되는 식사시간, 밤이 깊도록 꺼질 줄 모르는 tv 소음. 새로운 형식의 고행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남편의 퇴원에 대한 의지는 쑥쑥 자라났다. 의료진의 안내를 따라 열심히 재활에 임했다.

몸을 전혀 못 가누던 그는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윽고 수액걸이 스탠드를 의지해 천천히 걸었다. 입원하던 날 입었던 옷이 두꺼울 만큼 창밖 공기는 따뜻해졌고 화사한 벚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응급상황은 지나갔으니 퇴원하고 통원치료를 하기로 결정된 밤, 그동안 잘 있던 남편과 나는 대화를 하다가 다투었다. 먼저 가서 청소도 하고 퇴원이벤트를 준비하려던 마음은 사라지고 축 처진 어깨, 삐죽 나온 입으로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날 들었던 MRI 검사 결과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허리도 허리지만 목 디스크 상태가 많이 심각하다고 했다. 이 목 상태에 조금이라도 충격을 가해지면 마비가 올 수 있다고. 지금껏 큰일 없던 게 기적이라고 했다. 그 진단에 남편의 마음은 바닥을 모르고 낙하했을 거다. 그 순간 내 마음도 그랬으니까. 서운한 건 잠시 내려놓고 남편을 위로해 주어야 할 순간임이 분명했다.


퇴원을 몇 시간 앞두고 집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아직 거동이 불편한 남편을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해 줄 침구를 준비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내가 삐져서 데리러 안 올까 봐, 이 많은 짐 어떻게 옮기나 걱정하고 있는 중이었단다.


“내가 왜 안 와~”

웃으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오는 길에 병원 입구에 서서 바람을 쐬고 있는 입원 환자가 보였다.

‘병원에 옥상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어렵다면 이 앞에 벤치라도 있다면…’

몸도 아픈데 잠깐 기분전환이라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현재의 병원의 모습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편안한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한 남편은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남편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이 살아가잖아.

사실 우리가 사는 매일이 기적 아니겠어?

우리 두려워하면서 살지 말자.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저 감사하면서 살자.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


2026년 봄, 고통이 다시 한번 일상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갔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https://www.youtube.com/shorts/Ta4JhJ43k8k


0+0이라는 곡은 말그대로 0.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끼리 만나더라도
영원을 꿈꿀 수 있다.
영영 기억될 무언가를 꿈꿀 수 있다.

-한로로 인터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