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1년
사실 어제 이 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어시 얘기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언젠가 갑자기 죽거나, 기억력이 쇠퇴할 수 있으니. 그리고 생각해 보니 재밌는 기억도 있어서 이 또한 정리해보려 한다. 대신 앞으로도 그렇고, 각 주제당 1절(한 편)씩만 하는 것으로 하겠다.
당시 난 본가인 강서구에서 회사가 있던 강남 신사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다. 편도 1시간, 9 to 6로 칼 출근 생활을 이어갔다. 앞서 이야기했듯 월급은 38만원, 세전 40만원인데 세금을 떼고 나니 그렇게 됐다. 당연히 식대 및 차비는 포함되지 않았고. 40만원으론 생활할 수 없으니 엄마 카드 찬스를 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잡지엔 패션, 뷰티, 피처 3개 팀이 있었다. 패션과 뷰티는 다들 아는 그거고 내가 속한 피처팀은 리빙, 라이프스타일, 컬처 등 여러 분야의 트렌드를 다뤘다.
난 패션도 뷰티도 다 관심이 많았는데, 피처를 택한 이유는 아마 당시 가장 먼저 올라온 어시 공고가 피처라서였던 듯하다.(이렇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ㅠ)
나의 선배는 3명이었다. 내 역할은 그 선배들의 조수로 일하는 것. 이를테면
- 연예인 매니저 연락처 알아내기,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나 드라마 라인업 같은 자료 조사(선배들의 섭외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 주제에 맞는 스톡 이미지 후보 리스트업(게티 같은 사이트에서)
- 각종 업체로부터 공식 자료 수급(보도자료나 공식 이미지 등)
- 화보 촬영장에서 각종 잡일(짐 옮기기, 제품 픽업과 반납, 간식 및 음식 주문, 세팅, 정리)
- 회사 지하 자료실에서 수 천 권의 잡지 뒤져보며 선배가 정해준 화보 주제 시안 스캔 또는 출력해오기 등등..
그 일들이 장차 내가 에디터가 되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흠.. 난 원래 좀 집요하고 파헤치는 걸 좋아해서 '현재 이런 기획을 준비 중인데, 이 취재를 위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생각해보는 것과 '그 브랜드의 무슨 팀의 담당자 누구'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것에 약간 희열을 느꼈다. 좀 무섭나? ㅎㅎ
그런데 당시엔ㅠㅠ 지금보다 개인정보 관리가 조금 허술(?)해서 조금만 눈에 불을 켜고 단서를 찾고 디깅을 하면 웬만한 정보는 다 유추하고 얻어낼 수 있었다.
-> 이건 지금도 적재적소의 인물이나 숨겨진 장소 등을 섭외하고 서치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데, 나의 천성(진심에 기반한)과 이때 익힌 눈치코치와 감 덕분인 것 같다.
당시 내가 어시로 일하던 매체는 어시와 에디터 사이 엄청난 간극이 존재했다. 서열? 벽? 신분 차이?라고 해야할까.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아닌, 도제생처럼 일하던 어시들과 '기자님'들 사이는 정말 하늘과 땅이었다.ㅋㅋ 그 매체에서도 특히 내가 있던 팀은 더욱 심해서, 난 어시 시절 '선배'라고 부르지 못하고 디렉터 선배의 요청으로 '기자님'이라고 불렀다. 다른 팀 애들은 '선배', '언니'까지 아주 호칭이 제각각 이었다. ㅋㅋ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고 임금도 쥐꼬리였으나, 그땐 그런 대우를 웃음으로 넘기곤 했다. 다들 에디터가 되고 싶었고 어떤 부당함 보다 그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그 와중에 선배들에게 혼도 많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혼날 일도 아닌데, 마치 90년대 학창시절(나 국민학교 -> 초등학교 넘어가던) 준비물을 잘못 가져와서 회초리를 맞던 급으로, 나의 선배는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해주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매서운 눈으로 야려보기도 하고요. 워낙 무섭고 히스테리컬 하기로 유명했던 사람이라 다른 어시 동료들은 늘 나를 불쌍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ㅋㅋ
근데 난 늘 주눅이 들어 있으면서도 가끔 천연덕스럽고 (당시)엉뚱했던 면이 그 선배의 웃음 버튼을 자주 눌렀다. 오전에 화를 내다가도 오후엔 '야 넌 어쩜 그러냐' 이러면서 웃기를 반복;; 그 선배가 그렇게 웃어주면, 난 또 그 힘으로 하루를 버텼네... 지금 생각하면 좀 슬퍼..
암튼 또 그 와중에 나와 같이 골방에서 일하던 불쌍한 어시 친구들은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이젠 연락 안 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중 4명의 친구는 아직도 매우 밀접한 사이로 지내며 함께 여행도 가고 정기 모임도 갖는다. 그시절 얻은 소중한 자산이다. 마감한 날엔 우리끼리 가로수길 용두동 쭈꾸미, 에이미 초코, OO국수(뭐더라ㅠㅠ), 제메이 양꼬치 등등 먹으면서 선배들 욕도 하고 신세한탄도 하며 그 힘(?)으로 조금씩 성장해갔다.
그렇게 2011년 9월호를 시작으로 2012년 2월호까지, 6권이 책이 나오는 동안 울고 웃으며 짠내나는 어시 기간을 잘 보냈다.
어시 6개월 졸업을 앞두고는 첫 맛집 소개 기사를 썼다.
수난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커밍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