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 ~ 2011년'에 있었던 이야기
돌이켜보면 난 아주 어릴 때부터 온갖 꾸미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성적표엔 늘 '외모에 관심이 많고'가 적혀있었고, 엄마와 백화점이나 시장에 가면 늘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 실랑이하며 싸우다 혼자 집에 오기 일쑤였다.
중학교 땐 브랜드(메이커라 여겼던), 구매 행위(물건 사재끼기), 유행(연예인 따라하기)에 심취해서 친구들과 옷을 바꿔 입기도 하고, 소풍이나 현장학습이라도 가는 날엔 며칠 전부터 새옷을 사고 그날만을 기다렸다. ㅎㅎㅎ(당시 폴로 polo가 내 삶의 목적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땐 공부보단 책 보기, 잡지 보기, 음악 디깅하기를 더 좋아했다. 그즈음에 남자친구가 생겨 그 감성,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워 그걸 글로 표현하면서 주변에서 '네 글이 좋다'는 이야길 종종 들었다. 그때 '나는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좋고, 이런 일을 진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대학 얘기까지 살짝 덧붙이자면, 입시 땐 문예창작과에 가고 싶어 야심차게 도전했다. 하지만 난 타고 나길 글을 잘쓰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보기 좋게 낙방하고 오랜 방황을 하다가 결국 아무런 연고도 없이 점수에 맞춰 '국제통상학'을 전공하게 됐다.
경제, 무역 공부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대학 때 내가 제일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신간 잡지와 소설, 에세이를 펴보고 새 책 냄새를 맡으며 훑다 보면 금세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됐다.
물론 대학 때도 나의 '꾸미기 사랑'은 계속되었다. 매일 멋쟁이처럼 모자, 스카프로 꾸미고 학교에 갔고(당시 나의 레퍼런스는 에프엑스 크리스탈, 원더걸스 소희^^^), 가끔 정말 못 참겠다 싶을 땐 수업을 째고ㅠ 버스를 타고 명동에 가서 아메리칸 어패럴, 자라, H&M을 구경하고 백화점 한 바퀴를 돌고 집에 갔다.
그렇게 졸업을 한 학기 앞두었을 때 즈음
주변 친구들은 자격증을 따거나 토익을 준비하거나, 모의 면접을 하거나, 학회 활동을 했는데,
난 전공 살리는 건 생각지도 않고 잡지사 에디터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잡지 그 안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유행, 물건, 글)이 다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잡지 쪽 대외활동 경험을 쌓고 싶어서 관련 강의도 들으러 다니고 에디터 체험 활동(?) 같은 것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하면서도 에디터라는 직업 자체는 너무 멀게만 느껴졌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당시엔 잡지사 에디터가 되려면 어시스턴트를 거치는 게 국룰이었다.(지금도 그런가?) 그래서 그 '어시' 공고를 여기저기 뒤졌던 기억이 난다.(이짓은 나중에 정식 에디터가 될 때까지 몇년간 계속 되었다)
그땐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 같은 곳에 가뭄에 콩 나듯 공고가 올라왔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어느 여름, 지금은 어떤 경로로 지원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지금은 폐간된 S 매거진 피처팀 어시스턴트 자리를 두고 면접 제안이 왔다.
첫 면접에서 마주한 선배들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난 책과 잡지, 물건을 좋아한다는 걸 열심히 어필했지만,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중요한 건 그보단 이 아이가 우리의 비위를 잘 맞추고 정해진 기간(약 6개월)을 버틸 수 있느냐였을 것이다. ㅋㅋ
그 선배들은 나의 포부와 의지, 초롱초롱했던 눈빛(?)에 못 이겨 나를 어시를 부리기로(?) 결심한 듯 했다.
그렇게 어시 면접에서 합격. 월급 38만원의 박봉과 온갖 꾸지람(잡도리)으로 점철된 잡지사 어시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다섯이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