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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망 Oct 05. 2022

첫 번째 학생

예은은 며칠째 광명슈퍼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그녀는 염탐하는 사람 마냥 슈퍼를 흘끔 흘끔거렸다. 자신이 노골적으로 슈퍼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슈퍼 뒤에 있는 북한산을 보고 있는 척하면서 슈퍼문에 붙은 종이를 읽었다.  


‘영어고민 상담환영’


노란색 A4 용지에 크고 반듯한 글씨로 선명하게 쓰여 있는 종이를 보고 예은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무슨 고민 상담? 그것도 영어라니...”


처음 종이에 쓰인 글씨를 봤을 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이 안 되는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매일같이 지하철역에 갈때마다 지나가게 되는 이 슈퍼의 글씨가 여간 신경쓰이는것이 아닌가? 그녀는 슈퍼 안이 매우 궁금했다. 그렇지만 쉽게 슈퍼 문을 들고 갈 순 없었다. 슈퍼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이 안됐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상한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 영어고민 상담을 빌미로 만든 포교장소가 아닐까?’ 혹은 ‘젊었을 때 외국인 노동자로 외국에서 살다 온 나이 많은 슈퍼 주인 할아버지가 장사가 안돼서 손님을 끌어보려고 하는 건가?’ 등등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고민하기를 벌써 일주 일째, 오늘은 기필코 저 문을 열어보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슈퍼 앞까지 왔건만, 멀리서 한 시간 째 망설이기만 하고 있었다. 예은은 그런 자신이 자신도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때 멀리서 자신의 몸집만 한 가방을 맨 남자아이 한 명이 슈퍼로 뛰어왔다.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몸집과 장난기 가득한 얼굴. 아이는 익숙한 듯 슈퍼 앞에 놓여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 문을 열어 비비빅 하나를 꺼냈다. 그리곤 슈퍼 문을 드르륵 열고 외쳤다.


“캔 아이 해브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을 가져가도 되냐는 아이의 물음에 슈퍼 안에선 희미하게 대답이 들린 듯했다. 아이는 고개를 두 번 끄덕이더니 “땡큐”라는 인사까지 건네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예은은 슈퍼안이 더욱더 궁금해졌다. 영어로 아이스크림을 달라고 말하는 아이, 돈도 안 받는 슈퍼. 도대체 이 슈퍼는 뭐하는 곳인지 의문투성이였다.

예은은 더 이상 답답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슈퍼에 다가가 오래된 나무 미닫이 문을 힘차게 열었다. 예은은 눈이 동그래졌다.


오래돼서 낡은 외관과 달리 실내는 인테리어를 새로 했는지 매우 깨끗하고 밝았다. 요즘 인기 있다는 북유럽 감성에 인테리어가 돋보였지만, 구석구석은 아날로그 감성의 옛날 슈퍼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여러 제과회사에서 나온 다양한 종류의 과자가 가득 채워져 있고, 바로 옆에는 요쿠르트 꼬마병들이 예쁘게 줄 맞춰 정리되어 있는 구식 냉장고가 있었다. 예은은 초등학교때 견학 갔던 박물관에서 저런 오래된 냉장고를 봤던 기억이 나는 듯했다.


“어서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부드럽지만 귀에 쨍하고 꽂히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은은 뒤를 돌아봤다. 하늘색 카라셔츠, 청바지에 편한 운동화를 신은 유린이 서 있었다.

“아…안녕하세요. 영어 상담하시나요?” 예은은 문에 붙어 있는 종이를 가르키며 말했다.

유린은 표지며 내지며 온통 영어로 되어있는 책에서 눈을 떼며 인사를 받았다.

“맞아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예은은 쭈뼛쭈뼛 어색해하며 자리에 앉았다. 평범해 보이는 나무인데 푹신한 방석을 깔아서 아주 편안하고 포근했다. 슈퍼 가장 안쪽은 책상과 사과로고가 크게 박힌 컴퓨터를 사이에 놓고 의자 두개가 마주보고 놓여 있었다. 책상이 있는 쪽 벽면에는 큰 책장에 다양한 책이 잔뜩 꽂혀있었는데 대부분 영어로 쓰여 있었다.  무자비한 알파벳 폭격에 예은은 눈알이 뱅글뱅글 돌며 어지러웠다.


끽끽- 끽끽끽. 유린은 낡아서 뻑뻑해진 냉장고를 힘겹게 열어 요쿠르트를 한 병을 꺼냈다.

“덥죠? 이거 하나 드세요.” 유린은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예은은 유린의 목소리와 표정에 마음이 편안 해졌다. 혹여나 반갑지 않은 손님 취급받진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유린은 예은이 한 숨 돌리길 천천히 기다렸다 말했다.

“오늘, 어떤 고민 때문에 오셨나요?”

유린은 친절했다. 동시에 카리스마가 있었다. 뭐랄까.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눈빛은 초롱초롱 빛나면서도 날카로웠고 앉아있는 자세는 편안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해보였다. 자신감 넘치고 당당해보였다. 평소 소심한 성격인 예은은 유린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하느라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유린은 넋 나간 표정에 예은을 잠시 보더니 책상 한 켠 가지런히 놓여있는 민트 색 바탕에 반짝거리는 은색으로 인쇄된 명함을 뽑아 예은에게 건네며 말했다.

“강사, 채유린입니다. 성함이?”

“아! 죄송해요, 이예은이에요.”

“예은님, 만나서 반가워요!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이 동네 살거든요, 지나가다 몇 번 봤어요. 영어 고민 상담을 해준다고 써 있길래…”

“잘 오셨어요. 고민이 뭐예요?”

“아…그게..그러니까 유학을 가고 싶어요.. 캐나다로요. 근데… 가족들이랑 친구들이 반대를 해요…”

“아… 혹시 ‘여자 혼자 거기가 어딘 줄 알고 가냐, 위험하다, 며칠전에 뉴스에서 캐나다에서 살인 사건 났다고 하더라, 거기 다녀오면 몇 살인줄 아냐, 철 좀 들어라, 빨리 대학 졸업하고 취직이나 하고 시집가라, 뭐 대충 그런 건가요?

유린은 독심술이라도 하는 래퍼라도 된 것처럼 예은의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외할머니, 그리고 친구들이 했던 말들을 숨도 안 쉬고 쏟아냈다.

“헐, 완전 똑같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아- 그거요? 보통 가족이랑 친구들이 하는 말은 다 똑같거든요.”

유린과 예은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님도 유학 다녀오신 거… 맞죠?? 가기전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말렸나요?”

“그럼요, 부모님 포함한 친척들, 친한 친구, 별로 안 친한 친구, 아예 안 친한 친구, 알바 하던 카페 사장님까지 뜯어말리고 얌전히 한국에서 자리나 잡으라고 했죠.”

“그런데 어떻게 가셨어요?”

“부모님이 외출하신 날, 몰래 캐리어를 싸서 지하철 무인 보관함에 넣어 놨죠. 그리고 비행기 타는 당일엔 손바닥만 한 작은 가방 하나 딱 어깨에 매고 ‘엄마, 나 친구랑 점심 먹고 올게’ 하고 그 길로 바로 공항으로 갔어요.”

“네??? 정말 대단하시네요. 전 소심하고 팔랑귀라 옆에서 조금만 부추기거나 설득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거든요. 어떤 날은 ‘유학은 내 평생 로망이었어! 반드시 갈꺼야!’ 하다가도 주위에서 저러면 ‘맞아, 다녀오면 내나이가 벌써 20대 중반이 넘을텐데.. 너무 늦는 게 아닐까… 남들 다 취직하는데 나만 뒤쳐지면 어떡하지? 결혼은 또 어떻고? 현실도피를 로망이란 이름으로 뒤집어쓰는 건 아닌지… 고민이예요.”

예은은 오래된 친구에게 말하듯 자신의 고민거리를 가감없이 쏟아냈다.

“공감해요. 어쨌든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소중한 삶인데 누구인들 좋은 선택,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니 더 많이 고민하고, 신경 쓰고,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생각이 바뀌는 거죠. 하지만 예은님, 20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뭔 지 아세요?”

“네? 그게 뭐 예요?”

“30대에 나는 연봉 1억 가까이 되는 대기업을 다니며 동그라미 5개가 그려져 있는 비싼 외제차를 끌고 3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간간히 골프나 테니스 같은 취미를 즐기며 살 줄 안다는거에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불안감 따위는 전혀 없이 말이죠.”

“헉,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아니에요?”  

“전혀요, 요즘 세상엔 평생 직장이란게 없어진지가 오래고, 있다고 해도 MZ세대는 더 이상 한 가지 직업을 몇십년동안 하는 지루한 삶을 선택하지 않아요. 그 말인 즉, 30대에도 40대에도 50대에도 우리는 계속 뭐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외국에 다녀오면 내 나이가 벌써 20대 중반이야ㅡ어휴ㅡ’가 아니고 ‘아직도 20대중반이야! 신난다’ 인거죠. 외국에 안 가고 한국에서 열심히 이력서에 넣을 스펙 준비하는 친구들이라고 해서, 그들이 계획한것척럼 딱딱! 다 잘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예은님이 유학을 다녀온 뒤에도 여.전.히 20대 중반이기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라고 고민할 시간은 여전히 대략 3-40년이 더 있는거죠. 외국 그까짓 꺼 잠깐 다녀와도 전ㅡ혀 늦지 않아요, 뒤쳐지지 않아요!.”

“선생님은 유학 갔다 온 것 한 번도 후회해 보신적 없나요?”


유린은 잠시 생각했다. 내가 유학을 다녀온 것을 한번이라도 후회한적이 있던가? 지독한 향수병에 걸렸을 때? 천문학적인 액수에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느라 일을 무리하게 세 개씩 하다 쓰러졌을 때? 외국인 신분이라 관공서에 가면 뭐든 제한이 있어서 서러웠을 때?

많은 찰나의 순간들이 유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예은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침을 꼴깍 삼키며 예린의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뒤 유린이 말했다.

“유학생 신분으로 사는 건 너무 힘들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반감이 심했어요. 정치도 교육도 집값도 생활수준도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했거든요. 헬조선 헬조선 거리면서요. 거기다 ‘나라가 도대체 나한테 해준게 뭐야?’ 라는 말도 서슴없이 했죠. 그런데요, 이게 한 나라의 국민에서 외국인으로 신분이 하락되는 순간 알게 돼요. ‘아…그동안 나라가 나한테 해준게 굉장히 많았구나’ 라고요.”

유린과 예은은 광명슈퍼가 떠나갈 듯 크게 웃었다.

“그렇게 힘들었어도 절대 후회는 안 해요. 시간을 돌려 다시 선택을 한다고 해도 또 갈 거예요.”

유린은 호흡을 고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왜요?”

“다른 나라에 가서도 살아보고, 넓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나 이야기를 나눠 보기도 하고, 한국이랑 이것저것 꼼꼼하게 비교하면서 ‘이건 이나라가 더 좋네, 저건 한국이 더 좋잖아’ 비교도 해보고, 그런 연후에 한국이란 나라에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과,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난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가 편하니까 여기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예은의 목구멍은 알맹이가 큰 탄산들이 톡톡 터져 짜릿하다 못해 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차가운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신 것처럼. 유린은 그녀의 유학을 말리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었다.

“저 갈래요, 유학! 꼭 가고 싶어 졌어요…선생님이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유학 가려면 아이엘츠라는 영어시험을 봐야 한다던데...”

유린은 예은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갓 이십대가 된 스무살의 상큼함은 기본에 초롱초롱하고 간절한 눈동자는 십오년전 부모님 몰래 공항으로 향하던 자신의 눈동자와 같았다.

“하루에 한시간 반 씩, 일주일에 세번, 내일부터 나오세요.”

예은은 이상한 영어학원의 첫 번째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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