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도구가 아니다.
인간을 도구로 보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사회에 사는 것이 두렵다. 십 년 전쯤, 부산 남포동의 어느 LG U+대리점에서였다. 기본급을 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긴,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돈에 관한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큰 줄기들은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나 보다. 티오라는 것이 있다. 운용가능한 적정한 수준의 인원이랄까? 지방도시의 폰팔이나 대도시의 폰팔이나 매한가지로 나가서 전단이나 명함을 돌리며 삐끼질을 하는 것, 그리고 내방고객들을 대상으로 판매행위를 하는 것이 주된 업무일 것인데, 상술한 티오 이상으로 사람을 구해대는 것이었다. 매장 안팎으로 대기할 공간조차 없었다. 늦게 들어온 직원들은 앉아볼 새도 없이 전단을 돌리고, 명함을 돌리기에 바빴다. 월에 몇 개 이상의 휴대폰을 개통하면 월급이 나오는 구조였는데, 사장이 노상 하는 말은 ’월급 안 받을 거야?‘, ’안되면 지인장사라도 해야지 경험이 쌓여서 더 잘 파는 거야.‘ 등이었다.
눈칫밥으로 먹고산 세월이 너무 오래라 척하면 척이었을까. ’아, 이놈들은 이렇게 사람을 돌려가며(갈아가며, 도구적으로 이용해 가며) 돈을 버는구나 ‘ 하는 확신이 있었고, 또 그와는 별개로 입사 3일 차였는지, 3시간 차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휴대폰도 한 대 넙죽 팔았다. 아마 3일차겠지. 허세는. 사장이 대뜸 물었다. ‘너 이쪽에서 일했었니?’ 아뇨. 친구가 곧 근처에 분점을 낼 건데, 자기 지분이 들어간다고 부점장을 시켜주며 고정급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상술한 바대로 인간에 대한 존중 없이, 티오를 이용해 종업원의 지인에게 장사하고, 그 수익금으로 연명하는 행태가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직영점에 재입사를 했다.
직영이라고 해서 크게, 딱히 달라진 점을 느끼지는 못했는데도 좋았던 것은 최소한의 휴게시간이 있었고 ’책임영업‘은 했었던 것 같다. 내방하신 할아버님께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저렴하게 휴대폰을 팔았고, 전후사정을 모르는 며느리부터 자식들이 우르르 몰려와 클레임을 걸었는데, 차분히 내 설명을 들으시라 한 후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하고 음료수까지 사다주더라. 상담을 잘한다고 부산의 모 보험사 지사장의 사모님이 명함을 주며, 지사장께 면접을 보라고 하더라. 고졸이라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ㅎㅎ이때부터 가방끈에 대한 콤플렉스가 생긴 것은 아닌가 싶다.
기본급을 보장하지 않는 영업조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행태가 아닌가 한다. 기본급을 보장하지 않으면 생계가 안정될 수 없다. 많이 벌면 씀씀이가 커지게 마련인 자본주의 사회라거나, 식구들의 생계가 내게 달려있다는 저차원적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본급이 보장되지 않으면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야 한다’는 그릇된 욕심을 품게 되고, 또 더럽고 치사한 꼴을 견뎌가며 다종다양한 형과 색의 거짓말들을 내뱉어야 한다. 도덕관념이 확실한 사람을 본 기억이 드문 만큼, 생계, 혹은 처자식이라는 단어가 면죄부라도 되는 양 그를 앞세워 타자를 속여 착취한다. 이렇게 벌어서 집에 가져다주는 돈이 사회를 굴린다. 사회는 건전하게 잘 굴러가는가.
이 병폐를 어쩌면 좋으랴, 기본급을 보장하는 영업조직이 그래서 상대적으로 너무 ‘빡센‘ 업무강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하는 말은 ’우리는 기본급을 주잖아‘다. 주는 만큼, 사실 주는 것 이상으로, 네가 느끼는 최소한의 안정감만큼 ’더‘ 너를 혹독하게 착취하겠다. 는 내심은 아닐까. 보험도 그렇고, 상조도 그렇다. 일부 대기업은 ’ 이례적으로‘기본급을 보장하지만 쉬는 시간 보고, 분초단위의 휴식보고, 업무 전후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회의와 괴롭힘이 만연하다. 깔짝, 사회생활을 조금 맛본 후에 자영업자로 8년여의 세월을 살았다.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는 그러지 않겠다는 마음을 품고도 근태라거나, 결근 심지어는 그 조그마한 스몰비어에서 자기가 어제 시험을 치려고 밤을 지새웠다며 자리를 깔고 누워 자는 여자 알바를 본 적도 있다. 뭐라고 하니 그만두면서 노동청에 신고를 하고 정작 본인은 출석도 하지 않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그를 넘어서는 도덕관은 책망할 수 없었다. 불합리함이 도처에 펼쳐져 있어 눈 둘 곳이 없다. 그리고, 자영업을 그만두고 임금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3년여의 세월 동안 견딜 수 없는 불합리를 피해 이직한 것만 발을 빌려 꼽기 직전이다. 자연히 경력이랄 것은 민망할 지경이다. 그러나 일에 대한 철학과 자부심이 매번 이직을 가능하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씁쓸히 웃을 법한 일이다. 얼마나 일시킬 사람이 없었으면…
MZ들의 프리터 행태가 이러한 근거를 두고 있다. 당장 어느 회사에나 인사와 관련된 높은 직급의 사람들의 연령대는 높고, 그들이 살아온 베이비붐 시대의 무한경쟁이 지금보다 수월하거나 깨끗했다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그때는 인권이나 여성권조차 더 나쁜 시대였으니 말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남이 기르던 개도 잡아다가 국 끓여 먹던 시대이니 말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GPT를 못 들어본 사람이, 비트코인을 못 들어본 사람이 있겠는가. 시대가 변하고 있다.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 진보하거나 개선되지 못하는 병폐와 정체가 인간사, 인류의 본모습은 아닌가. 일을 위해, ’ 가성비 나지 않는 ‘ 푼돈을 위해 유구한 세월과 피눈물이 깃든 인간의 존엄을 희생할 수 있겠는가. 안 될 일이다. 흔히들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고 하지만, 그 전진과 후진을 위한 토크를 만드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아직도 권리와 의무는 혼동되고 있고, 권리 행사를 위한 답시고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태가 만연한 사회다. 한숨 그득한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