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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부산에 산다는 것은

잘해라! 부산!

by 빛나길


사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예의라거나 ‘선’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늘 생각한다. 오늘 간, 옥탑을 포함하면 총 3층짜리 작은 카페에서 이루어진 소규모 공연, 피아노 트리오(이름도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의 공연에 대해 모난 글을 적으려 한다.


가장 슬픈 사실은, 아무도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이 직전의 원먼스 페스티벌 공연장(노가다)에서 부산시 인재개발원분께서 녹화 인터뷰 요청을 하셨다. 이 인터뷰를 통해서 이 사람이 듣고픈 말이 뭘까 생각해서, 노인과 바다인, 관광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부산에서, 젊은이들의 문화적 토양이 되어줄, 또 사이사이 도심 곳곳에 문화적 씨앗을 뿌리고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공연들과 장소들에 대한 섭외가 좋았고, 또 관객과 지근거리에서 교감하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는 등 폐부를 찌르는 통찰을 보이자 만족하시며 진짜 꼭 듣고 싶은 말이었다고 너무 고맙다셨다. 그리고 오늘의 공연에 대해서 사실을 바탕으로 꼭 말을 옮겨야겠다.


좌석이 너무 열악했다.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공연자들의 자리를 빼고 나니, 피아노 트리오에 불고하고 그랜드피아노는 무슨, 오르간 사이즈의 작은 피아노로 벌어진 공연, 에어컨 바람에 직사 되어, 공연하시는 첼리스트가 언 손을 끌며 첼로를 연주하고, 안구건조증으로 눈을 깜빡이며 공연을 했다. 에어컨 풍향을 조절해 달라니 안 된다시더라. 된다. 절대 된다. 물리적으로라도 된다. 사회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나와서 더듬거리며 말도 안 되는 악센트와 딕션으로 사회를 봤다. 오독 때문에 귀를 의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진짜로 두 걸음을 움직여 무대에 선 후 마이크를 빼앗고, 에어컨 풍향을 조절한 후 내가 사회를 보고 싶더라.


함께 간 반려는, 공연을 보며 싼 것이 비지떡이다라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고 한다. 음양오행의 속성상 나무의 사주를 지닌 나는 분노로 활활 타오를 듯이 그 공연을 견뎠다. 공연을 견뎠다는 표현을 하기에 내 좌석은 축복을 받았다. 나로부터 오른쪽으로 네 번째 좌석에 앉으신 분은 채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정면의 벽에 가로막혀 무대를 전.혀. 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자녀분과 같이 오셨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런 악기로, 이런 시야를 주고, 공연이랍시고 소리를 내다니, 20분 연주를 하고 인터미션을 말하시던데 그걸 우스개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만일 인터미션이 있었으면 시간이 아까우니 집에 갈까를 진심으로 망설였다.


결국 악당은 아무도 없었으나 모두가 빌런이었다. 휴일임에 불고하고 장소를 대관해 준 카페의 주인분은 열 평 남짓되는 본인의 카페를 홍보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 티켓값에 음료가 포함되어 주문을 받을 때마다 옥탑이 있으니 올라가보시라, 당연히 올라갔고 우리가 주차한 주차장보다 하등 나을 것 없는 뷰에 노오란 전구 몇 개로 ‘포토존을 지향한 티’를 내시 었다. 트리오 공연의 퀄리티는 실망스러웠다. 연주자의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부분들을 배제해주려 한 까닭도 거기 있다. 이 정도가 최선일 리가 없다. 아무리 부산시에서 문화의 씨앗을 뿌리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키려고 했다 한들 최소한의 선이나 기준이 없었을 리가 없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다. 만일 이게 선을 통과한 실력이라면, 부산시 공무원들이여, 내년 원먼스 페스티벌에서는 내가 스탠딩 코미디나 강연을 할 테니, 내게도 자리를, 연락을 주시라. 제 메일 주소는 cd98a@naver.com입니다.


물론 공연시간보다 일찍 가서 전후사정을 충분히 청취한 까닭도 있으리라. 아마 본 공연을 위한 합주나 연습을 하셨는가도 의심스럽다. 리허설을 모두 들었으니 말이다. 운지법에서 미숙한 부분이 너무 귀를 때려서, 음악에는 문외한인 내가, 그간 다른 부산 원먼스 페스티벌, 또 최근 반려의 덕으로 여러 공연을 다니며 한 귀호강들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실망과 고통 그 잡채였다.


상술한 바대로, 전문 사회자가 아닌, 아는 비올라 연주자를 사회자로 섭외할 정도, 그 사회자의 딕션과 화법, 진행솜씨를 견디며 울분이 치솟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화를 내기엔 스스로가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그럼에 불고하고 행복하려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졸속, 혹은 탁상행정이라 할 만하고 장기적으로 원먼스 페스티벌을 매년 열고 계승하기 위해선 한두 번의 실수는 너그러이 넘어가기로 한다. 다만 치명적이라 할 만한 실수를 짚으니 내년에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시지 않길 바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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