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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파란만장 인생사

취업사기일까, 보험사기일까

by 빛나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생명보험사에 위촉을 했다. 사대보험이 들어가지 않는 체계라, 기본급이 없는 순수한 영업직. 정착을 위한 초기 지원금이 얼만큼 있다. 얼마가 있다 하는 소리를 듣고, 또 어떤 부분에서 이게 이득이 된다. 피라미드식 구조가 된다. 하고 많은 카더라의 와중에서 갈피를 놓쳤다. ‘직무설명회’랍시고 말하던, 사기꾼 냄새가 농후한 나보다 어린 지점장의 확신에 찬 언행이 마음에 걸렸다. 스스로를 장교출신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장교출신이라기보담도 그냥 진급누락해서 강제전역된 능력 없는 애송이가 아닌가.


그래도 착실하게 잘 다녔던 것 같다. 애초에 보험영업이라는 것이, 모쪼록 살아남아 ‘내가 이렇게 살아남았소’ 해야 썰을 풀기위한 운이라도 떼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법인영업 운운하던 것이 생각나 시장도 돌고, 상업지구도 돌고, 공단도 돌았다. 명함 만들어준 것을 돌리면서. 명함은 3개월 뒤 진급할 수 있다는 ‘세일즈 리더’ 명함이었다. 첫달, 시험에 합격한 직후부터 출근을 했는데, 그런 나의 의지나 열정에 탄복하며 베네핏을 준다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소위 DB라는 것이었는데, 그를 위한 제반교육이 전혀 진행되지 않은 점이 또 의아하더라.


이전에도 의료기 영업을 했고, 어떤 영업이던, 제품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 기본적인 체계나 시스템을 모르는 상태에서 고객을 만나 어버버 하는 순간, 그 찰나의 틈바구니에서 상대는 신뢰를 잃고 내 말에 필터를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니 팔려면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지 않는데, 교육이 전무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아닌가. 시스템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십 년도 더 전에 경험했던, 소위 ‘폰팔이’가 싫어서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나. 정해진 티오 이상으로 사람을 뽑으면서 지인영업을 강요하고, 또 그렇게 ‘소모’되어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감정적으로 상황적으로 불합리를 가해 스스로 그만두게 하는, 그런 방식에 진저리를 내었건만, 그래서 지금은, 여기 이 상황은 다르단 말인가.


입사한 후 며칠 뒤에 워크샵을 갔다. 제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리더십이 없는 인간들. 아래에 있는 시간이 얼마나 아깝고 맘을 졸아들게 만들던지. 정말 스스로에게 미안한 시간들이었다. 인원 통제가, 인솔이 안 되고, 전날 고지하지 않은 뜬금없는 행군이 있어서 당황했다. 워크샵이라니 멋 부리려고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엄청나게 무거운 디자이너 브랜드 신발을 신고 가서 발뒤꿈치에 주먹만한 물집이 잡혔다. 워크샵 안에서의 진행도 믿고 따르기엔 수준이 너무 처참해서 어찌할 바를 알 수가 없더라. 현금 얼마 들고서 숫자 맞추기 하는데 맞추는 사람이나 그런 바보짓을 이벤트랍시고 기획한 놈이나, 직급이 있는 리더라는 놈들은 술에 만취해서 앞에 나아가 고래고래 욕을 질러대고 의자를 발로 차가며 난동을 부리고…..


의아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다녀보기로 했다. 소위 구인이라는 도입, 리크루팅을 하면서 꽤 괜찮은 분을 만났다. 예순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도 투지를 불태우는, 전화통화 한두 번으로도 상호 뜻이 통하는, 맥락이 있는 황충같은 사내였고 그와 나는 의기투합해 함께 힘껏 영업할 동지를 찾은 느낌이랄까. 그런 그의 슬픈 개인사, 슬프다 못해 참담한 개인사와 그를 좇는 비정한 현실. 여러 사정으로 결국 그는 입사를 하지 못했으나 그 와중에 건진 것들이 있다.


이 ‘멍청한’ 지점장이 항상 문제다. 너무 멍청해서 상술한 황충님의 도입 시책(?)을 중간에서 장난질 하다가 들킨 것이다. 그의 어려운 사정을 알기 때문에 입사 후 받으실 돈은 얼마입니다. 했는데, 그 액수가 줄었다. 내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인가. 아니면 그것도 제대로 모르고 사람을 부르는 바보가 될 것인가를 고르라는데, 이지선다임에도 한눈에 답이 보이질 않더라.


미안한 말이다. 혼자 공부하며 상품을 요리조리 보더라도 괜찮은 구석이 없더라. 연금이니 저축성이니, 보장성이니 하면서 ‘원금을 손실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지수추종에 비해서 좋은 점이 뭐냐 물으니 ‘우린 안 망하잖아’ 하더라. S&P가? 코스닥 나스닥이 망한다고? 지수추종을 월100만원씩 10년 하는데 수익률이 122%보다 낮을 거라고? 기껏 일개 보험사 상품이 지수보다 유리한 점이 ‘망하지 않는다’ 라고? 기가 막혀서, 만정이 떨어져서 또 헤메었다.


헤메는 와중에도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것이 가장이고 나 또한 가장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다니는 와중의 돈을 벌기 위해서 고민한 것이 결국 ‘도입’이다. 신경쓰지 말라더라. 내가 도입하는 인원이 나보다 잘할 줄 니가 어떻게 아느냐고. 내가 다니면서 ‘부조리와 불합리’라고 느낀 부분을 그는 안 그렇게 느낄 수 있으니 신경 끄고 바보들, 멍청이들, 어수룩한 욕심쟁이들을 불러들이란 말에 다름아니라 느끼면서도 밥에 좇기어 구인을 했다.


구인의 결과는 참담했다. 너무 예민해서, 나와 일하는 가치를 알아보고, 내게 인간영업을 당한 황충씨 외에는 둘 중 하나였다.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사람, 예를 들면 양복 한 벌 없는 사람이거나, 2~30분의 설득으로 온다고 했지만 막상 주변사람들의 만류나 내가 씌운 콩깍지가 벗겨져 당일 노쇼를 한다. 그래, 내가 확신 없이 하는데, 시스템이 이렇게 참혹하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좋다며 사람들에게 권할 수 있겠는가. 암담. 암담을 넘어서서 모멸감과 분노가 솟구친다. 이건 아니다 싶으니 만정이 떨어진다.


구인을 하면 이것은 취업사기인가? 직장, 정년이 없다는 평생직장을, 자유롭고 하는 만큼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유혹해서 불러들이고 약속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DB는 없다. 하지만 실적 압박은 있다. 입사 십오일 차에 불러서 실적을 내라고 하더라. 기가 차서. 이 양아치 새끼들, 그래 그렇게 등 떠밀려 보험을 가입하게 된다면 이건 보험사기인가? 보험의 원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내 밥벌이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주머니 속 쌈짓돈을 꺼내려는 한심한 짓거리는 보험사기가 아닌가? 맞다. 그래서 적는다. 도입이건 영업이건 당하지 말라고, 정말 필요해서 보험을 가입하는 경우 외에는, 그런 보험, 고객에게 좋은 보험은 돈도 안 되니 보험사도 설계사도 크게 관심이 없지만 그런 것이야 말로 보험의 정수고 근간이니 그런 보험을 찾아 가입하시라고.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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