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편-1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 사회생활에서 이렇다할 성공을 거둬본 적도 없는 내가 적는다. 웅장하게, ’만국의 인터내셔널들이여 단결하라‘ 같은 원대한 목표조차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개새끼 밑에서 버티면서 잘 되어 봐야 개새끼 부하 밖에 더 되는가’ 다. 최근, 반려의 카르마 교육으로 조금 더 아름다운 말로 대체하고 싶지만 이건 부정이 아니라 직설이라고 주장하겠다.
수많은 회사들을 전전했다. 요식업 프렌차이즈에서, 대표이사는 상습 음주운전을 하는 새끼여서 마시지도 않는 술이 강요되는 회식, 접대 자리가 끝날 때마다 부지런히 대리를 불러주고, 조수석에 앉아 출발하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돈 받았으니 이정도는 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 놈에게 투자를 받아서 가게를 날려먹었다. 인테리어 업체와의 계약을 대리하고, 모르는 업체를 통해 금액적인 부분만 결재를 받고 진행한 터라, 인테리어의 퀄리티는 낮아지고, 공사 기일은 지연되고 덜컥 가게를 먼저 닫은 후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술에 취해 와서 행패를 부리고 나를 추행했다. 동성임에도 추행하는 그의 안하무인한 손버릇과 음담패설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고, 가끔 방문하던 사무실의 상석에 각각 그의 처와 장성한 둘째딸이 있다는 것은 또 나름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 맥락을 다잡아서, 대리를 불러다 줬는데 느낌이 쎄하더라. 여자 대리기사가 왔는데 너무 밉게 생기지 않아서, 물론 외모지상주의에 반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의 추한 마음을 움직일까 두려웠던 예감이 아닐까. 지금에서야 자문해본다. 보내고, 다른 대리기사를 불렀어야 했는데, 조수석에 앉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서도 이건 아니다. 뭔가 잘못되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더라. 결국 그는 대리기사를 꼬드겨 자기가 일당을 줄테니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했고, 24시간 운영하는 복집에서 소주를 걸치고, 대리기사에게 운전대를 잡으라 강요했다. 유난히 큰, 내가 아는 바로 차폭이 허머를 제외하고 가장 넓은 그의 차를, 불법주차된 차가 많은 골목으로 몰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사고가 났다.
그걸 약점으로 삼아 그 사람을 강간했다더라. 신고를 안 한다는 조건이었다는데, 결국 신고도 해서 그 사람은 음주운전으로 또 차량의 수리비를 주고 벌금도 냈다는 것 같은데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너무 힘들어서 이제 이런 기억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도 속상하다. 여튼, 그러고도 다시 술을 먹고 대리를 불러, 그 여자기사분을 다시 만났는데, 기억도 못 하고, ‘저 아세요?’ 물어보며 신고를 안 하기로 해놓고 왜 신고를 했냐고 따지는 그녀를 본 체 만 체, 사람 대우도 하지 않아 고소를 당했다. 물론 나도 추행으로 고소를 한 상태였고, 사건이 병합되며, 유죄판결을 받는 자리에, 증인으로 참석해 이런 내용들을 듣고, 내가 당했던 추행을 진술했다.
수년간 운영하던 가게가 문을 닫게 되고, 회사에서도 부당해고를 당했다. 추행을 당하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별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옳지 않은 것들이 너무도 밀려들어 숨을 막는데 헤엄을 못 치니 울걱울걱 삼킬 밖에, 스트레스가 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아마 그런 지옥같은 시간을 견디는 동안에도 기댈 곳 하나 없었다. 애초에 우리 부모는 한번도 나를 이해해준 적도 편을 들어준 적도 없으니.
그러나 인생은 살아져야 하고 생명은 입에 넣을 무언가를 벌기 위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자본주의라는 모진 세상에서 유기체의, 인간의 미덕이다. 부당해고를 두고 싸웠다. 초심에서 지고 재심에서 이겼다. 세종시에 있는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가서 싸워 이겼다. 회사 측의 노무법인에게 그렇게 그렇게 고함을 질렀다. 돈을 받았으면 시간과 전문성만 팔라고. 양심까지 팔아가며 뭐하는 짓이냐고. 사실관계를 왜곡하지 말라고. 당신같은 사람이 일제강점기에 살았으면 친일파 할 사람이라고. 부끄러운 줄을 좀 알라고. 그렇게 싸워서 이겼다. 금전보상도 받았다. 원직복직을 쟁취했으나, ‘직’이 없어졌단다. 프렌차이즈 총괄팀장을 하던 나를 열 평짜리 가게 주방에 쳐박더라. 틈을 내어 면접을 보고 이직을 했다.
다음으로 이직한 곳은 C/S 외주 기업의 프로젝트, 사과 회사의 고객지원 상담 센터. 수많은 규율과 부조리가 이해가 되지 않더라. 화장실 가는 시간이 제한된다고? 엎친 곳에 덮치는 것처럼, 처음 팀장 직무를 진행하는 어린 여성분은 나를 참 많이도 갈궜다. 이유도 알 수 없이 ‘그만두라’는 식으로 말하고 예나 지금이나 책이나 파던,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인 나는 ‘??’ 하는 생각으로 다니던 중에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그녀의 뻘소리.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상부에 보고를 했다.
센터장? 총괄하는 사람이 너른 회의실에서 면담을 했는데. 불을 보듯 훤한 사실 앞에서 그는 ’아니다.‘, ’아니다.‘ 라는 소리만 했다. 거기서부터 대화를 한 게 아니라 그를 설득했다. ’나는 이 회사 안 다녀도 괜찮다.‘, ’근데 정말 괜찮으시냐?’, ‘그렇게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 이렇게 사리판단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보시기에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걱정된다.’, ‘속일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다.’, ‘일이라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이해 한다만, 정말 괜찮으니 이제 그만 하셔도 된다.‘ 이후로 그는 참 많이 말했다.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다고. 나이차가 열 살이 채 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처자식을 부양하는 그의 입장을 당시에는 몰랐으니까. 그렇게 울걱울걱 구역질을 해가며 독을 삼키고 이게 독이 아니라고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입을 막은 손에 가리워 아무도 못 보는데 불고하고 입꼬리를 끌어다 웃는 척을 하는 삶.
그는 이제 퇴사할 사람인 내게 많이도 말했다. 아마 혹은 어쩌면, 다시는 당신의 삶과 접점이 없을 사람이라 부담없이, 그리고 잠시 잠깐 마주했음에도 자신의 처지나 감정, 삶을 알아준 사람이라 그랬을까. 폐암이 걸린 사람이 담배를 피러 가자고 말하는 것도 씁쓸했다. 내 일도 아닌데 그의 서러움이 밀려들었고 그는 ‘당신 같은 사람은 처음 본다.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물었고 나는 내 개똥철학 중 하나인 ‘정의의 막내론’을 들려준 후 안녕히 계시라. 인사하고 나왔다.
정확한 나의 커리어가 기억에서 지워진다. 너무 잦은, 빈번한 이직의 탓도 있는데, 너무 많은 사건들을 겪어서 너무 예민해지고 너무 얇아진 신경의 탓도 크다. 아, 이후에는 ‘보드게임’ 프렌차이즈에서 일을 했다. 역시 오래 못하고 두 달 했다. 사수가 마찬가지로 치킨 업계에 손꼽던 슈퍼바이저를 하던 사람인데 와서 회사를 크게 키워보고자 한다고 했다. 근데 이 조그마한 회사, 사장을 제외하고 4명이 일하니, 상시 5인 미만인 코딱지 같은 회사에 부조리와 악폐습, 말바꾸기는 왜 그리 많던지. 다들 눈치보느라 퇴근시간인 18시가 지나고도 앉아 있는 것이 우스워(할 일도 없는데 왜 뉴스를 보고 있냔 말이다.) 늘 박차고 나왔다. 다들 내 덕에 일찍 퇴근한다고 감사를 받기도 했고 자영업을 하며 네이버에 실린 내 뉴스나 유튜브 동영상도 보여주니, 내게 ‘정치를 해보라’ 라고 했다. 글쎄. 그게 가능은 할까. 내가 살아온 시대, 내가 헤치며 걸어온 정글에는 발자국은 남지 않는데, 발톱에, 독초에, 이빨에 할퀴운 피냄새는 너무도 진하다. 이것이 바로 폭력의 시대 사용기.
그래, 쓰잘 데 없는 얘기를 정성껏도 하더라. 주말에 내가 얘기한, 유기농 긴팔티 세일에 대해 얘기해주니 자기도 모르게 와이프 데려가서 사고 있더라. 영업을 정말 잘 하는 것 같다던가. 대표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니, 나 없는 자리에서 대표가 나를 처리(?) 해야겠다고 했단다. 사무실 복귀 후 대표를 따라가 2시간을 얘기를 하고 들어오는 길에 조심히 잘 들어가고 연말 마무리 잘 하라고 케이크까지 받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설탕 안 먹어서 사수 차 위에 올려놓고 퇴근했다.
정작 견딜 수 없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인테리어 시공비를 너무 남겨먹는다? 영업을 통해, 물류나 시스템을 통해 점주와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계약을 통해 ‘한탕’ 해서 직원들 월급을 주는 구조. 나보다 더 세상물정을 모르는 울산에 사는 여자 점주가 계약을 했고, 그 현장에 들러 상황을 보니 처참하기가 이루 말할 곳이 없었다. 건물 지하의 보드게임 카페. 얇은 나무 문으로 막아둔 주방 뒤의 벽에서는 독성이 높은 곰팡이가 슬어 언제든지 자기 영역을 문밖으로 확장하려 호시탐탐 때를 노리고 있었다. 곰팡이가 말을 거는 듯했다. 너는 돌아갈 것이고. 이 점주는 퇴근을 하겠지. 나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 오픈바이징을 나간 동안 나는 많이 괴로웠다. 뭐 딱히 감정이 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어리숙한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찾아와서 이거 하겠다. 자기최면을 걸어서 자기는 결코 잘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잘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다른 나쁜 놈들 배를 불리는. .
그래, 그래서 능력있는 사수랑 함께 다니며 배운 것도 많았고 나름의, 괜찮은 현장에서는 재미도 있고 좋았다. 퇴근 후에 탁구도 오지게 치고(심지어 난 그날 아팠는데 이거 직장상사 갑질 아니냐고. 내 스매시를 꼭 한번은 받아내겠노라며 두 시간을 탁구를 쳤다.) 다니며 책도 많이 읽고.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능력한 바보 밑에서 오래 있을 수는 없더라. 전에는 몰랐는데, 누군가 저주도 아닌 것이 ‘남 밑에서는 일 못할 사람’이라는 말을 했는데 식은땀이 등줄기를 스치면서도, ‘에이, 그런 것이 어디있어. 지금 내가 세상을 잘 몰라서 안 좋은 곳들만 골라가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겠지.‘ 했다.
결국 한 번도 굽히지 않고 모든 점주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손가락으로 높은 곳을 가리켰던 것 같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홍성군?의 모텔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전날 못 본, 야한 등 위에 꽂혀있는 딜도를 모텔 사장님께 말씀드린 것. 고학력자,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시는 남점주님과 사람냄새가 너무 나시는 그 부모님들의 상다리 휘어지도록 차려주시는 진수성찬을 받으며 나는 낮은 곳으로, 축축하고 끈적이고 더러운 곳으로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언제나 ’슈퍼바이징‘을 하는 현장에 가면 이미 벌어진 사태는 내가 돌이킬 수 없는 먼 곳에서 이미 벌어져있었고 그를 해결하기보담도 낱낱이 까발려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보고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참담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 너희들 월급 줄 돈이 없는데, 나는 다시 그 점주가 그 위치를 갖고 오더라도 망설이지 않고 할 것이다.‘ 라는 그의 말. 그의 종교는 황금률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는 황금빛 분변이 나오는 듯했다. 사수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그만뒀다. 뭐 잘렸다고도 볼 수 있었는데 가감없이 말하면서 이놈이 이 말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마주한 진실을 버티고 개선할 수 있는 놈인가를 가늠할 정도의 안목은 있었으니 진 것도 이긴 것도 없는 공허한 싸움이었다. 아직도 기존 회사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는 그, 그가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때도 했던 말을 해서 그의 자존을 ’긁‘어야 겠다. 개새끼 밑에서 버티어 잘 되어봐야 개새끼 부하가 아닌가.
<뒷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