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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아 쫌 그만 쓰고 싶은데.

by 빛나길

자기소개서


안녕하십니까? ‘드문 사람’ 정재훈입니다.

원래는 스스로를 ‘폴리매스’라고 너스레를 떨었으나 되묻는 분들이 많아서 풀어 적어봅니다.

첫 이력서를 적은 후로 어느덧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많은 기업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워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27살 이전에는 프렌차이즈 매장의 매니저, LG 본사 직영점의 휴대폰 영업부터 용접, 자동차 정비 등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투 잡, 쓰리 잡을 뛰며 모은 돈에 대출을 끼고 27살부터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손익분기를 넘을 때마다 가게를 확장해가며 총 3개의 사업자 등록증을 ‘동시에’ 운영한 경험이 있습니다. 쉬는 날 없이 매일을 장사했습니다. 특히 첫 가게를 오픈하면서 대출을 냈고, 그 대출을 다 갚는 2년의 시간동안 딱 3일을 쉬며 일을 했습니다. 물론 가게가 문 닫는 날까지 화장실 청소를 다른 직원에게 시켜본 적도 없습니다. 이 문장의 함의는 힘을 줘야하는 곳과 빼야하는 곳을 정확히 아는, 소위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어필이기도 합니다.


프렌차이즈의 가맹점주로 시작했으나 대표이사님의 요청으로 본사의 슈퍼바이져를 겸직했고, 이후 1년만에 연봉을 40% 올리면서 총괄팀장의 직책으로 신규 프렌차이즈의 BI부터 상표권, 인사, 브랜딩, R&D, 오뚜기와의 협업을 통한 PB 제품개발 및 완판, 팟빵 등의 마케팅을 주관하여 진행했습니다.


모두 해본 입장, 그러면서 평균 이상의 성적을 내본 사람으로서 ‘업계의 디폴트‘를 인정하기가 아직도 어렵고, 적어도 ’평균‘의 언저리에 속하고 싶은 사람은 아닙니다. ’돈을 받고 하면 다 프로다‘라는 생각도 있고, 또 제가 직접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할 때 바랬던 부분들을 늘 반성하며 일하는 사람입니다.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을 뼈에, 살에, 혈액처럼 온몸에 흘려보내고 있습니다. 23살, 남들보다 늦게 군대를 갔고, 거기에서도 ’마음의 편지‘를 적어서 수색대에 지원, 100km 행군을 다섯 번이나 해내고, 대한민국 최전선, 1% 수색에서 GP를 지켰습니다. 급성 편도염으로 다른 소대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기존 소대와 다른 소대가 서로 정재훈을 데려가겠다고 마음의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던 가게들은 모두 어플리케이션 맛집랭킹의 최상단을 유지하거나 간혹 한두 계단 미끄러지는 정도였습니다. 3개의 가게를 운영하며, 가게에서 바퀴 등의 벌레가 나온 적도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음식점 위생등급제가 생기기도 전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더라도 미뤄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주어진 직무, 맡은 일에서 항상 최고가 되고자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한번은 자영업을 하면서 화장실 변기가 막혔는데, 설비업자가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약점 잡혀 다시 맡기느니 내가 한다는 심정으로 변기 뚫는 기계를 160만원 주고 구매해서 크리스마스에 장사를 마치고 군가를 부르며 변기를 뚫고, 다이소에서 산 시멘트로 마무리까지 직접 했습니다. 뭐든 쉽게 배우고 익히는 사람입니다.


불가능에 대한 예시를 더 들자면, 우X메디텍 시절, MeXtronic 사의 대동맥판막치환술(TAVI)를 삼성창원병원에 런칭했습니다. 근무기간을 얼마 되지 않았지만, 메인이 될 병원이라고 판단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방문, 테크니션들과 스탭들, 담당 교수님들을 매일 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주부터 마산, 창원, 김해 등 서부경남 섹터를 도맡아 신규런칭(2개 병원)을 진행하며, 매출을 부양했습니다. 다들 예삐 봐주시어 삼창의 교수님, 모병원의 부원장님께서 개인적인 부탁이나 연락,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대인 간의 관계 설정에 능합니다. 안타깝게도 경력 없는 저를 뽑아주시고, 예뻐하며 가르쳐주신 사장님께서 암이 재발하시어 소천하셨고, 그를 견디기가 어려워 이직을 결정하게 되어서 근무기간이 길진 않았으나 그 안에서 제약이나 의료 영업의 큰 틀에 대해서 공부하고 유저를 대하는 매너를 익히는 시간이었습니다.


X티움, 아예 경력이 없는 덴탈 업계에서, 의료기 6개월 경력이지만 면접으로 2년차 경력직으로 이직했습니다. 8년차의, O사에서 온 경력직과 신규입사자 OJT에서 공동1등을 하며 포상을 받았습니다. 자원을 해서 부산에서 가장 넓은 섹터중 하나인 해운대와 서구를 배정받아 400개가 넘는 로컬들을 매주, 적어도 한 번은 빠지지 않고 방문, 관리하며 신규영업 및 매출을 일으켰습니다.


자영업을 하면서 보디빌딩 자격증을 따고,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독서를 했습니다. 술, 담배를 하지 않으며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많이,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중소기업의 C/S강의를 진행한 이력도 있습니다.(강의료 200만원) 이후 사장님의 요청으로 멘토링과 면접관 업무 또한 진행한 적 있습니다.


세상에 받은 사랑이 많고, 또 과분하다고 생각해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강서구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에서 체육강의를 매주 진행했습니다. 반응이 너무 좋고, 코로나 시국에 시설 선생님들의 적극적인 추대로 부산시 장애인 협회의 원격 체육강의도 진행했습니다. 장애인에 맞는 세세한 동작 수정부터 줌 수업을 통한 자세교정까지 피교육자의 개별성과 특이성에 맞춰 전부 계획하고 진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https://newsfeed.dispatch.co.kr/1213483

ㄴ언제나 황금률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공리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자 적은 글이 네이버 뉴스 메인에, 디스패치 기사로 난 사건입니다. 행여 오해가 있을까 말씀드리자면 이 글은 정치색을 떠나, 내가 받기를 원하는 대로 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여주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위 ‘돈쭐’ 내주는 문화가 없던 시절에 영세 자영업자들의 미덕과 미담 문화를 만드는데 초석을 쌓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https://youtube.com/watch?v=ZIboJ5nBhZQ&si=RjIvPq7FPcv5g7vy

ㄴ마찬가지, 자영업을 하며 배우고 싶은 열정에 배달의 민족 사장님 아카데미 창업반 교육을 신청, 이수했고, 이 교육을 마치고 상술한 신규 브랜드를 런칭했습니다. 부산에서 자비를 들여 주 2회 서울에 왕복을 했고 전국의 자영업자들이 모인 와중에,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최우수상인 열정가득상을 수상했습니다.


건강하고 좋은 문화를 가진 곳에 입사해서 성장에 힘껏 기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언제나 사사로운 욕심보다 사용자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주어진 상황에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쁜 기업과 사용자가 많고 그를 견디는 성격이 아니라 오늘도 이력서를 적어봅니다.

참 어려운 인생인데 다들 힘내시길. 존나게 버티지 마시고, 무의미한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목표를 성취하시길.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것을 꿈꾸지 마시되, 적어도 일한 만큼은 꼭 받으시길. 사회가 그 방향으로 바뀌어 나가길 간절히 바라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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