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특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
삶을 살다가 문제를 맞이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오늘,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럴 수는 없고, 이래선 안 된다.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간밤에 아무도 몰래 나를 상대로 행해진 어떤 실험이라도 있는 것인가. 어렸을 적 사 먹은 불량한 엿이 내 입술을 퉁퉁 붓게 해서 온 집안이 놀랐는데, 다음날 병원에 다녀와 갈앉자, 뉘우침이나 후회, 죄책감 없이 계속 먹은 대가를 이 나이가 되어서야 치르는 것인가.
어쩌면 좋나, 어쩌면,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대략 50 발자국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워후!’ 하고 외치며 제자리에서 폴짝 뛴다. 이거야 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데, 문제는 오늘이 평일, 중에서도 수요일이고, 이번 달의 연차는 개인사로 미리 신청, 소진을 완료한 상태라는데 있다.
하루 평균 1만 걸음을 걷는 영업사원, 게다가 로컬 병원에 다니는 영업사원이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그러나 회사의 서릿발 같은 실적압박과 나의 것이 아닌 실수, 혹은 매일의 즉흥적인 클레임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영업사원의 능력이자 매력 아니겠는가.
아침부터 문제였다. 주차 엘리베이터가 있는 소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내가, 집에서 걸어 나와 주차장에 가서 차번호를 입력하고 내려온 차에 탑승하려는 순간, 워후! 하며 점프하는 나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황당한 눈빛, 나아가 문을 열고 머리를 넣은 상태에서 한 점프는 안 그래도 아쉬운 내 머리에 눈앞이 팽 돌 법한 충격을 줬고 아픔보단 부끄러움에 쫓겨 눈물이 줄줄 흐르는데도 출차를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어떤 부분에는 감사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예를 들자면, 그래도 운전하는 엑셀링과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것은 ‘걸음수‘로 쳐주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으며 의지와는 상관없이 갈 곳 없는 차량의 지붕으로 점프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것. 긍정적이고 낙천적 태도는 영업사원의 덕목이지만 그렇다고 한 치의 세상이라도 바뀔 성싶은가. 글쎄. 그럴 리가.
그러나 영업을 하면서 피어나는 애로에는 뭐라 형언할 말이 없다. 오십 걸음이 생각보다 많은 걸음이라고 생각지 말라. 오죽 ’워후!‘, ’워후!‘ 하며 많은 점프를 해봤으면 경험칙으로 50걸음을 파악해 내게 되었다. 병원에 들어가는 순간이 정확히 50 걸음이 될 수 있도록 카운트해서, 병원 입구의 문을 열기 직전에 점프를 마칠 수 있도록 병원 복도를 허투루 걷는다. 행여 넓은 병원은 불가피한 사정이 없는 한 전화로 방문을 미룬다.
영세한 병원 안에서도 동선이 꼬여, 원장님을 보러 진료실이나 처치실에 들어가는 순간, 나오는 순간에 행여 ’워후!‘ 하는 것에 실례일까 묻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영업사원의 육감 같은 것으로 ’반드시 계약을 체결할 것 같은, 소위 팔아줄 것 같은 ‘ 원장님 앞에서는 평소 같지 않은 기쁨이나 환희를 나타내는 표식으로 쓸 여지마저 있다.
영업사원의 덕목이 뭐라고? 긍정적이고 낙천적 태도다. 응? 왜 뛰지 않느냐고? 해봤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정확히 열 번의 걸음을 뛸 때마다 어려서부터 내가 연마한 기술들이 나간다. 물론 가해범위 밖이고, 그 나가는 기술의 순번이나 체계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 기가 찰 지경이다.
예를 들면, 특히 오늘 같은 매서운 추위에 정말 긴 로터리의 횡단보도를 덜덜 떨며 기다릴 자신이 없어 뛰었는데 열 걸음 쯤에 나도 모르게 나간 뒷차기로 누군가를 걷어찰 뻔했다.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그리고 동작의 마지막에 무너지는 밸런스를 간신히 추스른다. 부끄러움 절반에 급박함 절반을 더해 다시 뛴 걸음을 하는데 이번엔 마지막 열 번째 걸음에 정형돈이 할 법한 회전낙법을 한다. 이미 거의 딱 맞게 인도에 도착했는데, 굳이 애먼 거리를 날아가 구르는 것은 여러모로 못할 짓이다.
운동을 한 지가 오래라, 어색한 낙법에, 영업용 정장까지 입고 있다. 등을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며, 오른 어깨에서 왼 골반으로 굴러야 하는데 척추가 아프다. 젠장, 이 깨달음이 있고 나선 정말 뛰는 자체는 포기하기로 한다. 어려서 대강 배운 운동들이 많아서 다음에 뭐가 나갈지(?) 모르니 주변과의 거리를 필요의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자각이 생긴다.
그래, 그래도 운이 좋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도록 계약을 두 건이나 체결했다. 이러면 진짜 이상한데, 결국 기분이 좋은 날이다. 퇴근시간이 되어 현장에서 퇴근하는데 이젠 적응이 된 것인지, 아니면 영업사원의 두둑한 배짱 덕분인지 쉰 걸음마다 ‘워후!’ 하며 점프해도 두렵거나 무섭지 않고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다만 두려운 것은 내일 아침에도 이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다. 세상에, 다시 주차타워에 차를 넣고 엘베를 타고 복도를 걸어 집으로 향한다. 집에 와서도 워후! 워후! 점프하는 나를 아내가 왕방울 만한 눈으로 의아하게 보지만 별다른 말이 없다. 결혼하기 전에 나의 별남을 충분히 고지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말이야…. 여보 내가 왜 이러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