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 그리고 이해
영업직이다 보니 천태만상, 오만가지 종류의 사람을 다 만나본 듯하다. 그에 반해 모자라서 항상 아쉬운 내 글재주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묘사하거나 형언하거나 하는 것들이 불가능해 항상 아쉬움을 남긴다. 각설하자.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사람들의 성격이나 외모, 체형에 따른 데이터화가 일정 이상 가능해진 듯하다.
‘관상은 과학이다.’ 라는 말이 옳다. 아, 언젠가 옛 말은 대부분 옳다는 주제로도 글을 적어야겠다. 여튼 관상 또한 유전자로부터 발현된, 여러가지 가능성이랄까 성향? 유전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표출형을 띤다. 그래서, 이제는 눈만 마주쳐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 사람인가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고 대화를 나눠보면 어떤 사람이다.에 대한 일정의 확신이 선다.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을 몇 명, 그리고 몇 분 꼽아보자. 지역과 장소를 특정하면 혹시나 입방아에 오르내리거나 반대로, 내 정체가 특정될 수 있기 때문에, 그냥 A라고 표현한다. A는 책임자인데, 아주 거만하다. 그에 반해서 자존이나 구체적인 계획, 혹은 철까지 없다. 나이는 예순 정도 들어 보이는데, 영업을 하러 온 내게 다짜고짜 ‘너 이전의 영업사원은 영업을 하러 오면서 벤츠를 타고 왔더라.’ 라고 하더라.
내 알바 아니고, 솔직히 벤츠 타는 영업사원은 회사의 이사님인데, 이사 직책을 말 안 하고 영업을 하러 다니셨으니 오해할 수도 있고, 또 사실 벤츠 타면 뭐 어떤가? 나도 국산차로 영업하고 세컨드카는 외제차를 타는데, 근데 당시 A는 국산차를 탔던 모양이다. 그게 그렇게 심사가 뒤틀렸는지 이해할 수 없는 투정을 부리더라.
반복하지만 타인의 질투나 감정, 여러가지는 내 알바가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잘 경영해서 세상을 옳게 살아가고, 조금 욕심을 부리자면 이번 생을 마지막으로 윤회를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의 투정을 받아줄 이유는 없지만 여유는 있어 들어주었다.
충격적인 사실은 한 달 여가 지난 다음 방문에서 A가 벤츠를 뽑았다는 사실이다. 것도 나이에 안 맞는 컨버터블이었는데, ‘벤츠를?! 영업사원에 대한 질투로!? 질렀어!?’ 하는 임팩트에 색도 기억나지 않고 다만 상담 시에 테이블 위에 올려둔 벤츠 키만 눈에 들어오더라.
거부하기 쉽잖은 기깔나는 프로모션, A에게도 엄청나게 이로울 것이고 황금률에 의거해서 사는 영업사원이라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반대로 나라도 하겠다 싶은 것들만 권하기 때문에 내 영업은 항상 염치가 있고 공리에 부합하며 윈윈, 혹은 상생을 목표로 한다고 자부하는데, 내 디테일을 듣고 A가 하는 말은, ‘좋아, 좋은데 지금은 안 돼.’ 였다. 여유가 없는 듯한 눈치였는데 궁금하지 않지만 이유마저 알 것도 같았다. A가 무리를 했다는 사실을, 그래 어찌되었건 백억 대 매출을 일으키는 회사의 이사가 ‘영업’을 하러 왔다고 ‘건방지게 영업사원이 벤츠를 타고 영업을 해?’ 라는 뒤틀린 심사로 무리해서 벤츠를 뽑다니, 적잖은 나이가, 개인적인 친분 한 조각 없지만 한심해서 이 자리를 빌려 조언을 한다.
상술한 바대로 수없이 많은 영업을 했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같은 직업 안에서의 스펙트럼의 다양함을 배우고 느끼고 아, 만일 전지전능한 존재가 있다면 그래, 채널을 고를 여지를 충분히 줘야하니 자유의지와 경우의 수, 유전형질 등을 세분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 또 반대로 ‘영업’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상황도 조건도 좋은 사람들인데, 그들의 빛나는 학창시절과 전공, 조건에 불고하고 저런 방식의 삶을 산다고!?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요약하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똑같은 직업 안에서 누구는 천하고 누구는 귀하다. 어떤 용접공은 조선소에서 불려 다니며 ‘걸을 줄 아는 용접기’ 취급을 당하지만 어떤 용접공은 세단을 타고, 가방에 작업복을 갖고 와 환복 한 후 작업을 마치고 기백만 원 일당을 거머쥐고 예의를 갖춰 인사한 후 떠난다.
용접공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전교 1등만 해왔던 치과의사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의료기 회사를 세우고, 누구는 지역에서 이름난 명의가 된다. 누구는 정도를 걸으며 자기 건물을 세워 공리를 증진하려 하고, 어떤 분은 기준이 되는 수가에 관계없이 어렵거나 힘든 사람들에게 제값도 받지 않고 치료를 해주신다. 개중에 어떤 의사는 신용불량자로 병원에서 숙식하는 것도 봤다.
세상은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경우의 수로 엮어가는 씨실과 날실의 조합이다. 그를 알기에, 그 다양성 앞에 질려 쉬이 글을 쓰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하지만, 적어야 할 내용이 있어서 적는다.
A에게, 만일, 당신이 ‘영업사원은 외제차를 타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한다면 시대상을 많이 놓친 것입니다. 뭐든 하날 특출 나게 잘하면, 신명 나게 해서 성과를 내면 부는 따라오는 것이고 그런 공정함이 없다면 자본주의에서의 계층체계조차 의미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영업사원은 무조건 의사보다 적게 벌어야 해. 는 다만 당신의 부족한 양식이나 철학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로 인해 당신이 스스로 받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줄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도 말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노력의 경주를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반성과 개선을 포기하지 말고 매일 더 나은 것들을 추구한다면, 학벌, 직업, 집안 등 그 어떤 시작점에 불고하고 원하는 곳까지 가닿을 수 있습니다.
어려서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들이지만, 글솜씨조차 부족한 것을 알고도 적습니다.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정과 삶을 넘겨짚고 그만큼의 생을 이해하며 나누어 모두가 해탈을 멈추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