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쓰는 소설 앞에서 먹먹
인생이란 예측 불가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기쁨도 슬픔도 우리에게 예고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갑자기 맞닥뜨린 슬픔에 더 아픈 요즘이다.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앞에서 내가할 수 있는 건 함께 슬픔을 마주하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위로의 문장 하나 쓰지 못하고 무기력해진 나는 슬픔에눌려 아스피린 두 알을 입에 물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슬픔을 견디는 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도록 오래오래 기억해 주는 것.
노트를 하나 장만했다.
노트를 펴자 눈앞이 캄캄하다.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삶의 긴 터널을 지나며 일기 쓸 겨를도 없이 지나왔다.
그런데 문득,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존재를 증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기 겸 계획 겸 삶의 자투리 공간에 생활에서 만난 눈 맑은 순간들을 이어서 조각보 같은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가려한다.
수필집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목차를 다 잃어버렸다.
맙소사! 삶은 늘 그렇다. 예측 불가.
벗어난 김에 뜻밖에 길로 간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니 거기 뜻밖에 소설이 있다.
소설은 처음이라 무섭고 설레고 아득하다.
멀다.
멀기만 한 길.
노래 가사처럼, 안개 속에 쌓인 길.
그렇듯
나무를 심은 것도 계획된 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내게 나무가 온다면 어떤 나무가 좋을까 상상해 본 일이 현실이 되었을 뿐이다.
오래 생각해 왔기에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실행에 옮겨 실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글 쓸 때의 내 마음도 그랬다.
어떤 마음이든 품에 안고 오래 보듬고 싶었다.
그러나 자꾸만 꺼내보고 싶다.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그것이 비록 서툰 마음이라 할지라도.
다가서거나 멀어지거나 하며 존재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서. 그래서 이 글도 쓴다.
주저하기보단 한발 더 내디뎌 보기로 맘먹었다.
오래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 눈엔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몇 안 되는 아이가 이미 정해진 타고난 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래 달리기를 만난 뒤 그 아이는 인생을 달리 생각하게 됐다.
마음을 굳게 먹고 꿋꿋하게 버티면 순간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완주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착시처럼 마음 속으로 불시착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소설이 쓰고 싶어진 건….
소설이 쓰고 싶어진 아이는 그렇게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왔고 여전히 껍질 속을 그리워하지만 나무를 오른다.
오늘도 펜을 들며 한 해를 그려본다.
완급 조절을 하며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달리고 싶은 마음이다.
나무 심기와 소설 쓰기는 다른 듯 닮은 꼴이다.
나무를 키우며 느낀 건 나무는 초지일관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서서 계절을 이기고 해를 지난다는 사실이다.소설도 마음이 잡히면 한 자리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뚝심 있게 키우는 일 같아서. 꽃을 피우기도 하고. 열매를 맺기도. 단풍 들어 잎을 보내기도. 폭설을 견디고 새순을 피워내기도 하며 말이다.
그러니 삶을 정면으로 꿋꿋하고 치열하게 마주하고 싶다.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채로 소중히 대하고 싶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분명히 목표점을 지날 때가 올 거라고. 그러니 쉬이 포기하진 말자고.
어쩌면 나무도 나무로 태어난 게 처음일 테고 모든 게 낯설 수 있다.
모든 처음은 서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하면 한결 편해질 수 있다.
서툰 시작이다.
소설로 가는 여정 앞에 긴 슬픔이 누워있다. 난 그 슬픔을 고스란히 등에 지고 가슴에 안고 내 길로 간다. 살아감에 있어서 어떤 감정도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마음도 무게와 온도가 있어 등에 메고 가슴에 품고 가면 춥지 않고 외롭지 않다. 모두 안고 못 가본 길로 가서 그곳에 감정들을 풀어놓고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나무에 새순이 돋을 때까지 우리는 쭉 함께일 거라고.
서툴러도 괜찮다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나무를 보며 위로를 얻는다.
처음은 다 그렇게 서투니까.
처음은 다 그런 거니까 그런 거니까…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