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

by 화혜

아이와 탑을 쌓았다.

하나씩 하나씩 조심조심.


처음엔 서툴어서 나무 블럭이 자꾸 떨어지고 손에서 빠져나갔지만,

금세 손에 익어 한 층 한층 차고차곡 쌓아올라갔다.


"완성!"


짝짝짝. 다 했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하나하나 쌓으면서 끈기와 인내심을 기르고

탑을 완성하며 아이도 성취감을 배웠겠지.


그 때였다.

아이가 허공에 손을 높이 들어올린 건.


이제 막 완성한 탑을, 그렇게 열심히 쌓아올린 그 탑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려는 찰나였다.


"잠깐만, 그만해! 왜 무너뜨려!"


급히 아이를 말려보려 한 순간,


와르르 와르르 꽝.


공들여 쌓은 탑은 한 순간에 무너졌다.


"아......"


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는 나와 달리 꺄르르 신나게 웃고 있었다.


"또 만들어요! 또 해요! 또 해요! "


아이는 공든 탑이 무너진 사실은 개의치 않고

이미 다시 탑을 쌓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아이들은 실컷 만들어 놓고는 다 해놓은 걸 꼭 부순다.

완성하려고 만든 건지, 부수려고 만든 건지 모를 지경이다.


"왜 무너뜨렸어? 안 아까워?"


"무너뜨리는 게 재밌어요. 다시 쌓으면 돼요."


아, 그렇지.

탑은 다시 쌓으면 되지.


아이들에게는 부수고 무너뜨리는 것 자체가 재미다.


열심히 만드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완성한 결과물을 다시 허무는 것 또한 나름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이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만들고 부수고 만들고 부수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놀이에서는

부수는 것 또한 다음 만들 차례를 위한 필수적인 과업이 된다.


공든 탑을 허무는 일은 새로 쌓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것을 하기 위헤서는 이전 것을 잃는 과정이 필수다.


공든 탑의 진가를 알려면, 완성된 결과만 보아서는 아니 되고

전체 과정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초반 1-2년 정도는 일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5년이 지나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아침에 눈을 떴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은 5평짜리 치료실 안에서 끝나는 걸까.


언어치료 일이 싫어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직업이 나의 가장 빛나는 보석을 꺼내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치료실에서는 차분하고 똑부러지는 전문가로서 살아야 했지만,

사실 내 안에는 자유로운 영혼이 공존하고 있었다.


출근할 때에는 선생님처럼 단정한 옷차림으로 나갔다가,

퇴근하고서는 화장실에서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임 약속에 갔다.


그렇게 난 항상 이중생활을 했다.


언젠간 나도 매순간 반짝반짝 빛나는 나다운 생을 살 수 있을까?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혹시 직업을 잘못 택한 게 아닐까 하고.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를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이 자리에 있기 위해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밤새 논문을 쓰고, 실습을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제 겨우 일이 손에 익고 전문가 태가 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이 시점에서 내가 갑자기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면

모두가 바보같은 선택이라고 할 것이었다.


하지만 치료실에서 마주한 아이의 모순적인 모습은 내게 일종의 힌트를 주는 듯했다.


공든 탑을 허무는 일은 새로 쌓기 위함이다.


다른 탑을 다시 쌓으면 된다.

탑을 쌓는 일 자체가 즐거운 일이니까.




언젠가부터 나는 과정보다 결과만 보는 어른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에 매일 자신만의 탑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살아간다.

눈 앞의 탑은 지금까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의 집합체다.


이 탑은 우리를 자랑스럽게 하고 애착을 갖게 하는 성과물이지만,

때로는 삶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짐이 되기도 한다.


무언가에 너무 공을 들이다 보면 인생에서

그 대상이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자아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온 삶에 내 마음을 맞추게 된다.


탑을 쌓는 심정으로 해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두려워서다.

여태까지의 인생이 송두리째 헛된 것이 되어버릴까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새로운 도전은 더더욱 부담으로 다가온다.

무언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마치 시지프스의 돌 같은 형벌처럼 느껴진다.

힘들게 정상에 올려놓으면 또 굴러떨어지는 돌처럼,

끝나지 않는 쳇바퀴에 나를 올려놓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의 매순간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말이 있다.

인생이란 게임에서는 더 많은 판을 즐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내가 직업을 잘못 선택했던 게 아니었다.


5평짜리 치료실에서 내 영혼이 빛을 잃고 죽어가고 있던 게 아니라

나다운 빛을 발하기 위한 색을 담고 있었던 거였다.


지금 나는 치료실에서 얻은 깨달음을 글로 담아내고 있다.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 내가 아는 것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지 모른다.


인생은 시지프스의 형벌장이 아니다.

세상은 결과물로 심판받는 시험대가 아니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비록 오늘의 나는 무너지는 탑을 보며 탄식하는 어른이었지만,

언젠가 내게도 쌓고 허무는 놀이를 하던 때가 있었다.


어른의 관점에서는 언덕을 오르는 일이 형벌이지만,

어린 아이의 시선에서 언덕을 오르는 일은 썰매를 타고 즐겁게 내려오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온 세상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과 즐거움으로 가득 찬 놀이터일까.


공든 탑에 대한 집착을 버리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공든 탑을 무너뜨릴 용기.

과거를 허물고 미래로 나아갈 결심.


낡은 성공을 끝내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거다.


나는 눈 앞의 아이처럼 내 인생의 과업을 즐겨보기로 마음 먹었다.


탑을 다시 쌓은 뒤 아이와 눈이 마주치자 말했다.

"셋 세면 같이 무너뜨리는 거야. 하나, 둘,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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