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좋은 것을 받는 방법

by 화혜

"으아아앙!!"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언어치료를 받던 아이가 폭발한 거였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이 아이는 아직 언어로 의사표현이 불가하다.

상호작용도 어렵고 타인이 의도를 이해하는 능력도 제한적이다.


그래서 의사소통 주고받기를 연습하기 전에 먼저 '교환'의 개념을 알려주려고

아이가 좋아하는 초콜렛을 준비했다.

아이가 장난감 모형 간식을 나에게 주면 (장난감 모형 간식? 간식 모형? )

달콤한 초콜렛으로 바꿔 주리라.


아이는 수많은 모형 간식 중에서도 기가 막히게 초콜렛만 잘 골라냈다.

금세 아이는 초콜렛 모형 두 개를 찾아 고사리 같은 양 손에 꼭 쥐었다.


자, 이제 모형 초콜렛을 주고 진짜 초콜렛을 받을 차례다.

아이의 손을 펼쳐서 '주세요' 제스처를 만든 후 손바닥 위에 진짜 초콜렛을 선물처럼 올려주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모형 초콜렛을 절대로 놓치 않으려 들었던 것이다.

대신 모형 초콜렛을 양손에 꼭 쥔 채로 진짜 초콜렛을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그래, 초콜렛 여기 있지? 진짜 초콜렛 줄게."


여전히 아이는 모형 초콜렛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진짜 초콜렛을 눈 앞에 내밀었지만 아이는 끝끝내 완강했다.

이윽고 아이의 손바닥을 펼쳐보려던 나의 시도는 강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으아아앙!!!!"


아이는 치료실이, 아니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 지르며 울어댔다.

아이에게는 진짜 초콜렛뿐만 아니라 모형 초콜렛도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다.

교환하자는 의도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소중한 모형 초콜렛을 내어 놓으라는 말이 들어먹힐 리 없었다.


"으아아앙!!"


사실 양 손에 모형 초콜렛을 꼭 쥐고 있어서 초콜렛을 주더라도 받기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내가 입만 떼도 소리를 지르고,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경기를 했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렛을 주고 싶은 거였는데.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 세상이 끝날 듯 울부짖는 아이를 바라보다 생각했다.


신이 인간을 바라볼 때 이런 느낌일까.


진짜를 주려는 건데, 가짜를 놓을 수가 없어

진짜를 받지 못하고 목 놓아 울고만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




과거에 언어치료사로 일한지 거의 1년이 되었을 때,

나의 목표는 강남 진출이었다.


고작 경력 1년도 안된 초짜 언어치료사였지만,

나 정도 학벌이면 강남 센터에서 높은 페이를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원하는 근무 조건을 갖춘 센터에 취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다 한 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고선 바로 다음 달부터 출근하라고 하길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니던 센터에 한 달 뒤에 그만두겠다고 통보했다.


분명 모집 요강에서는 경력 3년 이상을 구한다고 했는데,

경력이 1년도 채 안 되는 나를 왜 선뜻 써주는지 의아했고,

아직 모르는 것 투성이인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약간 고민이 되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번듯해 보이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부족한 부분은 일하면서 공부하면 되는 거라고 편한 대로 생각해버렸다.


그런데 막상 출근해보니, 석연찮은 점들이 많이 있었다.

원장은 아동발달에 대해 아예 무지한 타 전공 의사였고,

센터 운영은 컨설팅 업체에서 대행해주고 있었다.

센터의 규모와 인테리어는 아주 번듯하게 갖춰져 있었지만,

정작 치료 시설과 운영 방식은 초보 치료사가 보기에도 '이건 아닌데' 싶었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었다.

내가 원한 것은 강남 진출이었고, 그 허영을 충족시켜줄 센터였으니까.


결국 얼마 안 가 그 센터는 문을 닫았다.

병원 원장과 컨설팅 업체가 서로 고소를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야망을 좇아간 내가 얻은 건 강남에서 일한 경력 몇 시간과 치료 수당 30만원.

그게 다였다.


잘 다니던 센터는 이미 그만두고 나왔는데,

하루 아침에 실직을 하고 낙동강 오리알이 된 신세였다.


그런데 사람 일이 참 신기하다.

갑자기 대학원 교수님께 연락이 왔다.

국책 연구의 석사급 연구원을 구하고 있는데 내가 와주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나는 학교에 돌아가는 게 죽도록 싫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연구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의 심정으로 연구팀에 들어갔다.


다행히 연구팀에서의 나날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국책 연구 프로젝트라 끝나는 기한도 정해져 있었다.

길어야 10개월이니,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박사님께서 뜻밖의 제안을 주셨다.

강남에서 센터를 하는 지인분께 나를 소개해주시겠다는 거였다.

심지어 내가 가려다 망했던 센터보다 페이도 더 많이 주는 곳이었다.


내가 야심차게 이직하려 했던 강남의 병원 부설 센터는

치료사와 의사 양쪽 업계에서 이미 악명이 높은 컨설팅 업체의 작품이었단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로 원하던 조건의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




내가 가려던 강남 센터는 모형 초콜렛과 같았다.

겉모습은 마치 초콜렛처럼 먹음직스러워 보였지만

실제로는 먹을 수가 없는 가짜였다.


그렇게 먹지도 못할 가짜 초콜렛을 손에 꼭 쥐고서

그게 최고인 마냥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 버텼던 것이다.


연구팀에 들어간 것은 손바닥을 펴고 가짜 초콜렛을 내어놓는 일과 같았다.

그때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신은 나에게 진짜 초콜렛을 주려고 하셨다.

내가 가짜를 놓지 않으려 해서 애먹으셨을 테다.


그래도 기어코 진짜를 주셨다.

내가 가짜를 내려놓고,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을 해냈을 때.




목놓아 울던 아이는 결국 진짜 초콜렛을 받았다.


아이가 잠깐 방심해서 손바닥을 편 순간, 재빨리 진짜 초콜렛으로 바꿔 주었다.

아이는 초콜렛을 얻자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뚝 그쳤다.

포장을 바스락바스락 까서 입에 쏙 넣어주었다.


'아이야, 선생님은 원래부터 이렇게 해주려던 거였단다.'


삶은 때때로 소중한 것들을 가차없이 앗아간다.

오랜 기간 야심차게 준비한 것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기도 하고,

내 것을 지켜내려는 애달픈 노력도 결국 허사로 끝나기도 한다.

아무리 갖은 애를 써도 높은 벽에 가로막힌 듯, 절대로 열 수 없는 문이 닫혀버린 듯.


하지만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모든 고난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아니다.

때로는 가고 싶지만 가지 말아야 할 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이 꼬이는 이유는 지금 당장 멈춰서서 다시 살펴보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진짜를 갖기 위해선

가짜는, 비록 아깝더라도, 내어놓아야 한다.


지금 당장 가진 것을 놓을 수 없어 기를 쓰고 버티기보단

진정 좋은 것을 주려는 신의 의도를 헤아려보고 싶다.


서툴고 부족한 어린 아이를 보는 어른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계실 그 분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끼게 되면

내 가진 것 모두 내어놓아도 은혜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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