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말을 배우는 이유

소통의 본질

by 화혜

"선생님 말 들었어?"


언어치료 중에 아이에게 물었다.


사실 이 질문은 답정너였다.

아이가 딴 짓을 하느라 내 말을 못 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워낙 주의산만하고 다른 사람 말을 집중해서 듣기 어려운 친구다.


"누가 나한테 말할 때는 말하는 사람 눈을 보고 잘 들어야 해."


아이는 눈을 맞추고 바른 자세로 고쳐 앉았다.

그것도 잠시, 치료가 다시 진행되자 금세 아이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젠 손등에 난 상처에서 딱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딱지 뜯으면 아파. 하지 마."


아이는 "네"라고 대답하면서도 차마 딱지를 떼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기어코 딱지를 다 떼버려서 피가 났다.


"거봐. 피나잖아."


아이는 굳이 딱지를 떼 놓고선 피를 보자 울상을 지었다.


핏방울이 맺힌 상처를 닦아주면서 생각했다.

딱지를 떼는 아픔을 감수할 정도로 내 말을 듣기가 싫었던 걸까.

아이는 집중이 안되고 지루하고 졸리니까 나름대로 깨어 있을 방도를 찾은 거다.


하필 오늘 하려던 활동이 '듣기' 연습이라 장벽게임을 준비했는데,

아무래도 이 상태로는 순조로울 리가 없어 보였다.

물론 듣기 연습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아이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아이의 모습은 전혀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뭣이 중헌디.


오늘 계획했던 치료 목표는 살짝 넣어두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아이에게 집중해보기로 했다.


"혹시 오늘 선생님이랑 하고 싶은 거 있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마트 놀이 하고 싶어요."

"그렇구나. 그럼 마트 놀이 하자. 마트 장난감 가져와."


마트 놀이 장난감을 가져오는 아이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도저히 치료 진행이 어려울 것 같던 그 아이가 맞나 싶었다.


아이와 마트 놀이를 하면서 놀이에 언어 연습을 녹여내기로 했다.


"선생님이 손님이야. 손님이 주문하는 상품을 잘 듣고 찾아줘."

"네!!! 어서오세요, 손님. 무엇을 드릴까요?"


나는 손님 역할을 맡아 상품을 주문했다.

당연히 필요한 상품이 무엇인지 이름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단지 내가 원하는 상품에 대한 길고 자세한 설명을 제공했다.

아이가 듣고 알아맞힐 수 있게.


"이거 맞아요?"

"어? 제가 말한 건 이게 아니에요. 다시 말해 드릴까요?"

"네, 다시 말해주세요."


전부 한 번에 척척 알아듣고 찾아주지는 못했지만,

아이는 귀 기울여 내 말을 듣고 최선을 다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맞히려 노력했다.


"혹시 이거 맞아요?"

"네, 맞아요! 제가 말한 게 바로 그거에요."

"여기 있습니다~!"


아이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상품을 계산해주었다.


오늘 아이와 나는 그저 마트 놀이를 한 게 아니다.

그건 놀이의 탈을 쓴 배움의 시간이었다.


사실 목표는 같았다.

아이가 상대방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

내가 한 말도 동일했다.

어떤 사물에 대한 길고 자세한 설명을 들려준 거였다.


결국 말하는 방식과 상황에 따라 듣기 능력이 다르게 나타나는 거였다.

장벽게임에서는 듣기가 불가능했던 말도,

마트 놀이에서는 잘 들을 수 있었다.


마트 놀이를 해보니 아이에게 아직 긴 문장 이해가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장벽게임은 마트 놀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게 되면 그때 하면 된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내 말이 받아들여지는 여부와 정도는 달라질 수 있다.


듣는 사람이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은 능력의 영역이지만,

듣는 사람이 얼마나 잘 듣게 말하는지는 지혜의 영역이다.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구성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관심사에 맞춰서

전달하려는 내용을 녹여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얘기를 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 배움을 당장 부모상담 시간에 적용해보았다.

기존에 나는 부모님께 오늘 치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곤 했다.


"오늘은 수용언어 위주로 연습했어요.

장벽게임으로 사물 설명해주면 듣고 찾는 활동을 했는데,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문장 이해가 부족해서

길이가 5-6어절 이상 길어지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부모님들께 진짜 필요한 얘기를 한 게 맞을까?


아이가 말이 늦어 언어치료에 오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첫 마디부터 다르게 나왔다.


"평소에 아이가 한 번에 말을 안 들어서 힘드시죠?"


어머님께서는 바로 내 말이 그말이라는 듯 답변을 주셨다.


"네! 말을 해도 해도 안 들으니까 결국엔 소리 지르게 돼요.

저도 안 그러고 싶은데, 조용히 얘기하면 안 들으니까."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이가 주의산만한 편이고 긴 문장을 한 번에 알아듣기가 어려워서 더 그럴 거에요.

그래서 오늘은 저랑 듣기 연습을 했어요."


그러곤 오늘 치료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서 간략하게 설명드리고,

오늘 치료에서 무엇을 어떻게 연습했는지에 대한 설명보다

집에서 무엇을 해주셔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를 드렸다.

한결 가뿐한 표정으로 치료실을 나서는 어머님을 보며

왜 진작 이렇게 못했을까 싶었다.




우리는 소통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대가 어떻든 내 할말을 하고선 덮어 놓고 듣기를 바라는 것은

내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이지 달성되어야 할 본질은 아니다.

소통을 통해 달성되어야 하는 본질적 목표는 따로 있다.


그런 점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설득을 잘하는 화법이나 내 의도대로 상대를 조종하는 기술이 아니라,

나와 상대의 필요가 만나는 지점을 찾으려 하는 의도다.


의사소통은 두 사람이 서로 의도를 주고받는 방식이며,

두 영혼이 공명하는 과정이다.


언어 능력은 잘 익혀서 써먹어야 하는 일종의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영혼을 볼 수 있는 눈과,

그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다.


그 본질을 기억하면

소통이 한결 쉬워질 뿐만 아니라,

때로는 성스러운 행위가 된다.


어쩌면 우리는 말을 잘하는 어른이 되기 전

말이 서툰 어린 아이였을 때

오히려 진정한 의미에서 소통을 더 잘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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