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언어치료사라고 소개하면 으레 듣는 말이 있다.
"한결쌤, 저도 언어치료 좀 시켜주세요."
대부분 나를 '말 잘하게 해주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화법과 스피치 기술에 관심이 많다.
내가 말 잘하는 법을 알려주면 대체로 이렇게 말한다.
"역시 전문가네요.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모두가 다 말을 잘하게 되면, 그 좋은 말은 누가 들어주는 거지?
한 번은 독서모임에서 나눔이 끝난 뒤, 몇 사람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 덕분에 정말 좋았어요. 고맙습니다.”
그날 나는 특별히 멋진 말을 한 것도, 인상적인 발표를 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그저 진심으로 듣고, 사람들의 말에 공감하며 인사이트를 메모했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자기 말을 너무 잘 들어주고 받아 적기까지 하니까
신나서 자신의 이야기를 더 많이 쏟아냈다고 한다.
말을 '잘'하지 못해도 그냥 말하는 것만으로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있다.
상당수 고민에 대한 해답은 타인에게 털어놓으려 말을 하다보면 스스로 깨닫는다.
내 안에 막혀 있던 생각을 덜어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올 자리가 생기고 신선한 에너지로 채워진다.
말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순환의 통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일은 나의 내면을 ‘정리’하는 동시에,
말을 들어주는 상대와 마음의 온도를 나누는 일이다.
이러한 선순환에 필요한 건 유창한 말 실력이 아니라 진심으로 듣는 태도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언어치료사로서 말 잘하는 법을 알려주니 "도움이 되었다"는 인사를 들었는데,
말을 잘하든 못하든 그저 진심으로 들어주었더니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전자는 지식에 대한 감사지만,
후자는 존재에 대한 감사다.
잘 듣는 사람 곁에서는 누구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게 된다.
‘말을 듣는다’는 건 곧 ‘당신을 이해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듣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회복시킨다.
이것이 바로 경청이 가진 놀라운 힘이다.
세상에 말 잘하는 사람은 넘치지만,
여전히 잘 들어주는 사람은 모자라다.
하지만 우리가 대화를 하고 싶어지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능력보다 들을 준비가 된 태도를 갖춘 사람이다.
'말을 잘하는 기술'보다 '말을 나누는 관계'를 원한다면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언어의 치유력은 입이 아니라, 귀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