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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는 사람들

오늘은 내 인생 가장 젊은 날

by Via Nova

예전에는 자동차마다 두툼한 지도책이 한 권씩 있었다. 요즘 핸드폰 네비 거치대처럼 늘 차량 주머니 어딘가에 꽂혀 있어서, 마치 자동차가 ‘길은 내가 알아서 갈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물론 자동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길도 스스로 찾아주지 않는다. 역할은 대개 운전대를 잡는 아빠와 조수석의 엄마가 맡았다.

출발 전날이면 아빠는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 경로를 열심히 짚었다. 직진, 좌회전, 우회전, 다시 직진… 그는 마치 전략을 짜는 장군처럼. 다음 날 아빠가 핸들을 잡고 출발하면 엄마는 조수석에서 지도책을 펼치고 경로를 읊었다. “다음 사거리에서 좌회전, 아냐, 우회전인가? 잠깐만, 여기 어디지?” 이윽고 아빠가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찾아보자.”
그러다 보면 가끔 길을 잘못 들어 낯선 시골길을 헤매기도 했다. 아빠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여기 좀 낯익지 않냐? 지난번에도 여기서 헤맸던 것 같은데.”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고, 뒷좌석의 우리는 과자를 먹으며 말했다. “대체 언제 도착해?”

길을 잘못 들어선 덕분에 숨겨진 맛집을 발견하거나, 예쁜 풍경을 만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길을 잃었다는 사실에 가족 모두가 그렇게 심각해하지 않았다는 거다.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했다. “길을 잃은 건 아니야. 그냥 새로운 길을 찾고 있을 뿐이지.”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우리는 내비게이션에 의존해 목적지까지 초 단위로 계산된 경로만 따라간다. 어디에 있는지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도착 예정 시간’만 바라보며 달린다. 그 과정에서 놓치는 풍경과 순간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리 삶도 다르지 않다. 너무 바쁘게 달리다 보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 인생은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걸음걸음마다 주변을 바라보고, 순간을 음미하는 여행이다. 가끔은 차를 잠깐 세우고, 창문을 열고 깊게 숨을 쉬어보자. 어쩌면 그 순간이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카르페 디엠

인간은 모두 죽는다. 길의 끝은 언젠가 도착하겠지만 끝에 다다랐을 때 후회가 적도록 오늘을, 이 순간을 만끽하자.

오늘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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