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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

사회적 책임은 어디에서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by Via Nova

공기 중 불순물마저 착 붙어있을 법한 겨울 아침 오랜만에 마주친 지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시죠?"

굿모닝과 같은 일상적인 인사치레였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무거웠다.
"잘 지낸다는 건 조국을 사랑하지 않으시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 솟엔 에밀레 종이 울려 퍼진다. 최근 우리 사회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들이 한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연말부터 이어져 온 사건사고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은 분명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그것에 휘둘리거나 동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그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최근 가족들과 함께 본 영화 '하얼빈'도 나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고통을 외국에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지금처럼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지도 않았고, 소통의 방법도 제한적이었을 테니 말이다. 문득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의 비극을 대하는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들의 사정은 딱하고 안타깝지만, 결국 나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속한 교회는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해외구제활동에 적극적이다. 동시에 우리 주변의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돕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이것이 바로 연민이자 긍휼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 나가는 것. 그렇다면 개인이 지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코 하나의 방향만을 향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반대로 세계의 문제에만 눈을 돌리는 것은 온전한 책임의식이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사회적 책임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 멀리까지 이어지는 관심과 실천이어야 한다.

'잘 지내는 것'과 '사회적 책임'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건강하게 잘 지내야만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나의 삶이 안정되어 있을 때,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은 때로는 가정에서 그리고 직장에서의 충실한 활동이 될 수 있다. 작은 관심에 머물 수도 있고, 때로는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것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대학에 나오는 경구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그 방향을 명확히 알려준다.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하고, 가정을 돌보며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평화롭게 하라는 말이다. 이는 결코 뒤바뀔 수 없는 순서다.

나의 연민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오늘도 나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의 시작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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