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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환철 Apr 05. 2023

불량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는 오늘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Web발신]

신환철님 헌혈주기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헌혈!

그 고귀한 사랑실천을 부탁드립니다."


나는 종종 헌혈을 한다. 이게 often인지 seldom인지는 내가 판단하긴 어렵지만 조금만 더 하면 은장을 받을 정도는 되니 종종으로 표현하겠다.


저 헌혈 알림 문자는 정확히 2개월마다 온다. 전혈가능 주기에 맞춰서 오기 때문이다. 지난번 헌혈을 하고서 2개월이 지난 것이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 헌혈주기를 알리는 문자에 묘한 기분이 든다.  나는 이제 불량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헌혈을 하고 나서 심하게 앓았다. 아픔은 3일간 계속됐으며 입원을 해야 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내 몸에 이상이 생겼다. 그 변화는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되었다.


미용실 디자이너가 친절하게 내 머리에 난 구멍을 가리기 위해 특정 부위를 길게 잘라준다고 말했다. 무슨 말이냐고 하니 동전 하나만큼의 땜빵이 있는데 모르냐고 묻는다.


집에 와 거울을 통해 눈으로 보고 손끝으로 만져봐도 맨질맨질 누가 봐도 탈모가 분명하다. 인터넷 폭풍검색을 했더니 스트레스형 자가면역질환인 '원형탈모'란다. 최근 신경 쓰는 일이 많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헌혈로 인한 신체균형이 파괴된 후유증으로 추정해 본다.


스테로이드 처방을 하는 피부과와 체질개선을 중심으로 한 한의원 사이에서 이왕이면 면역체계를 손보는 게 근본적인 치유라는 생각에 한의원 진료를 시작했다.


침을 맞고 기혈이 뒤틀린 걸 잡아주는 한약을 조제하고 몸에 있는 독소를 빼주는 청혈제품을 먹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손에는 카드영수증과 약품이 하나 가득 들려있다.

무려 50만 원어치 건강식품을 샀다.


 한 달간 퇴근 후 시원한 맥주의 유혹도 꾹 참고 열심히 먹고 바르고 치료에 힘썼다. 이상하게도 내 몸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땜빵은 타인의 시선만이 아닌 나에게도 관찰될 정도로 점점 커져갔고 이제 500원짜리 동전 두 개로도 가릴 수 없을 크기가 되어있었다.


최근 진료를 받으러 가서 누워있는데 간호사가 오길래

"하라는 데로 다 했는데 왜 호전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그러게요. 다른 병원 안 가보셨어요?"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것 같다. 아무리 한의학이 대체의학이라지만 이런 발언은 상도덕에 어긋난 거 아닌가?


직업윤리와 책임감이 부족해서인가 싶어

침을 놓는 한의사에게 똑같이 물었다.


"이거 나을 기미가 없는데 치료방법을 바꿔야 할까요?"

"아 그러세요. 양방치료도 병행하는 게 더 좋습니다. 피부과에 가서 치료받으세요."


내 돈 내 시간 내 몸, 선택이 이렇게 중요한 거다. 정말 양심불량이다.  한의원을 나오자마자 빈센트병원 피부과에 진료예약을 했다. 대학병원은 진료대기기간이 길어 선조치가 필요했다. 나오는 길에 가까운 피부과를 방문했다.


의사가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왜 이제야 왔냐고 핀잔을 준다. 머리에 주사를 맞고 진료받는 김에 일반 탈모약도 처방받았다.


탈모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약이 나온다면 노벨평화상을 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탈모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전에 이재명 후보가 탈모치료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은 뜨거웠다. 천만탈모인구가 있다고 하니 다섯 명 중 한 명은 탈모에 대한 증상이 있다는 말이다. 탈모에 대한 FDA승인 약품은 프로페시아 계열약과 미녹시딜뿐이다. 나도 간 보호약을 포함된 세 가지 약을 처방받았다.


헌혈을 할 때 피부과 약과 탈모 관련 약을 먹고 있냐는 설문이 있다. 이제 나는 헌혈을 해서는 안 되는 불량인간이 된 것이다. 불량의사가 불량환자를 만들었다.


어찌 보면 오늘 내가 느끼는 아픈 감정도 불량인 나의 몸상태에서 비롯된 것인지 불량간호사에서 시작된 건지 모르겠지만 불량은 많은 낭비를 부른다. 


나중에 상담을 배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상담자의 자질에 나에게 상담효과가 적은 경우 다른 상담자에게 인도하는 내용이 있었다. 그렇다면 한의사나 간호사도 적절한 행동을 한 거겠지만 그들의 말에서 내가 서운함(?) 내지 분노를 느꼈던 것이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빨리 양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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