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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환철 Apr 05. 2023

내가 브런치에 하고 싶은 이야기

김애란 작가가 전하는 문학의 이유

작년에 코로나로 사람 만나기 어려울 때 직장동호회 한분이 인근 도서관 작가초청 강연회에  김애란 작가가 온다는 소식을 전했다.


난 김애란 작가를 좋아한다. 김애란 작가의 따듯함과 불리 위로하지 않는 신중함, 힘든 시절을 겪은 사람만이 보여주는 공감능력 때문에 작가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일찌감치 조퇴를 하고 제일 앞 두 번째 자리쯤 앉아 작가님과 눈 마주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강연을 들었다. 작품 속 이야기에 대한 집필배경과 당시의 감정을 이야기해 주는데 2시간이 정말 5분 같이 느껴졌다.


입장할 때 김애란 작가님께 하고 싶은 질문을 적어 트리에 달아달라고 해서 2개를 적었는데 감사하게도 두 가지 다 뽑아주셔서 현장에서 책 선물도 받았다.


다음 작품이 나오면 한번 초청강연을 진행하고 싶었지만 아직 실행하진 못 했다.


당시 들었던 말씀 중  좋았던 마지막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한다.





이렇게 다 아는 이야기를 문학이라는 형식으로 만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근두근 내 인생이라는 장편을 쓴 적이 있는데 청소년이 임신하는데 청소년 권장도서가 돼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멀리 편의점 앞 여고생 둘이 서로 옆구리를 찌르면서 네가 이야기해라며 서로 무언가 말하고 있었어요.


김애란 작가님이시죠?라고 말할 테지

아,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런 이야기 많이 들어요."라고 할까


아주 봄날씨를 닮은 여고생이 오더니 담배 좀 사다 줄 수 있냐고 묻네요.


아름이는 몸이 아픈데 글을 쓰는 아이입니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아이죠.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팔씨름이나 덩크슛을 할 수가 없어요.

문장으로 멋을 내는 일밖에 없는데 결론은 크게 시련을 당하죠.


PSP게임기를 눈이 퉁퉁 부을 때까지 하다가 목 놓아 울곤 합니다.



옛날 선배세대들이 포럼이나 강연에서 자주 받던 질문이 있었어요.


영화, 드라마처럼 활자보다 빠른 게 주가 되고 있는데 너희는 어떻게 할래?

집에 가만히 있는데 저도 제 대답을 갖고 싶더라고요.


영화, 드라마도 이제 곧 게임으로 대체될 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투박하지만 게임과 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많이 해보진 않았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저도 게임을 보고 감탄한 적도 많고

신화적 배경도 들어가고 밋밋한 장면에 의미심장한 대사를 보며 감탄과 질투도 느꼈습니다.


두 가지를 다 만끽하고 싶은데 차이점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죠.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유저 입장에서는 과제 수행능력이에요.

단계별로 과제를 수행해야만 진행이 가능한 서사인데요.


소설에서는 그 인물이 실패하여도 마지막에 무언가를 가져가는 느낌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은 내가 좀 더 나은 존재, 내가 강해지는 느낌, 마법사, 몬스터, 영웅 같은 느낌을 준다면 소설, 특히 판타지가 아닌 현대소설은 내가 영웅, 마법사, 몬스터가 아니라 내가 잘해봐야 인간이구나.


시작하는 인간이구나, 때때로 서사가 감동을 줄 때면 겨우 인간이지, 잘해봐야 인간이지.

그래 잘해봐야 인간이지 왜 때때로 어떤 인간들은 다른 선택을 할까?


본디 태어나기를 용감하게 태어나서가 아니라 욕망과 불안감을 안고 사는데

때론 이웃을 위해 때로 선을 위해 때론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반드시 지켜나가야 하는 나만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거지


진실이 도덕이나 윤리나 당위여서가 아니라 불안정한 인간이 내딛는 과정

그런 일들을 해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이 참 이상하다 생각하는데요. 어디를 가고 싶은 건가요. 에서 제자를 구했던 선생님처럼 인간은 종족유지를 역행하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남미의 시인이 있습니다.

연애 시를 빌어서 이야기하지만 사실 경쟁이 안 되는 거죠.


활자매체가 영상매체에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생각돼서 메모를 했어요.


"당신은 나를 떠날 수는 있어도 벗어날 수는 없어요."


한 시간 가까이 인용도 하고 여담도 곁들여서 문학이야기를 했지만 문학이 선명한 구호가 되거나 대안이 되지는 않아요.


실제로 우리 삶은 게임보다는 유려하고 매끈한 서사보다는 사실적이죠.

게임보다는 소설 속 서사와 닮아서 번번이 용을 무찌를 수도 없고 방패도 구할 수 없고 미션을 클리어한다한들 반드시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배신의 형태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입동을 쓸 때 한 사회학자가 한 말이 기억나네요.


"고통에 찬 사람은 말을 내는 게 아니라 소리를 내지요. 여기서 소리는 비명, 울음, 침묵 등 비언어적 형태로 귀착되곤 해요."


저는 여전히 인생이 뭔지 모릅니다.

여전히 착각하고 실수하고 같은 실수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한 가지 알고 있는 건 앞으로 저희 삶에서도 앞으로 좋은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압니다.


무언가 계속 잃어가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니깐요. 뭐든 다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젊음을 잃고 있잖아요.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여기서 나쁜 소식이라는 게 목격만으로 상처가 되는 동시대 풍경이거나

여러분과 제가 나쁜 소식과 더 나쁜 소식 속에서 그래도 품위를 지키려고 농담도 하고 할 때

그게 잘 안 될 때 말이 아니라 소리 밖에 안 될 때

소리를 말로 바꾸는 시간, 건너는 시간, 그 시절이 있어요.


내 삶이 통계가 아니라 가십이 아니라 이야기 형태가 아니라 잘 전달될 수 있는 진실을 주는 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글쓰기는 글 읽기는 취미이거나 교양이기 이전에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다채롭게 알록달록 사명감보다는 마감에 쫓겨 편집자가 무서워서 글을 쓸 때가 많습니다.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미적인 충동에 글을 쓰기도 합니다. 제가 쓴 많은 소설들이 한일들을 저도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긴 시간 제 이야기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이 넘은 지금

김애란 작가와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이 공간을 통해


내가 사는 삶을

내가 가진 경험을

내가 고민한 생각을

다채롭게 나누고 싶다.



그게 내가 추구하는 글쓰기의 이유다.




#김애란 #문학 #문학의 이유 #브런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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