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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환철 Apr 06. 2023

사랑에 색깔이 있다면

첨밀밀로 느끼는 사랑의 스펙트럼과 의미


이 글은 홍콩영화 첨밀밀(1996)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로 영화에 대한 내용(스포일러)이 포함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린 시절 이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사랑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만큼 저한테는 특별한 영화입니다.






불안한 미래를 준비하며 현실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흔들리는 청춘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첨밀밀(甛密密)’



이 영화가

20대에는 현실적인 사랑을 그리는 조금은 지루한 사랑 이야기로

30대에는 우울한 인연을 공감할 수 있는 슬픈 이야기였다면

40대에는 과연 무엇일까. ‘그 매력은 무엇일까?’ 되물어본다.


‘첨밀밀’은 스토리, 음악, 연기 3박자가 어우러진 명작이다.

물론 세 가지를 호수 같은 감동으로 우리에게 보내는 감독의 연출이 단연 돋보인다.


영화는 소군과 이교의 사랑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다섯 가지 사랑의 색깔이 있다.

 

‘소군과 이교’의 잿빛 운명

‘표형과 이교’이 푸른 현실

‘소군과 소정’의 노란 안정

‘고모와 윌리엄’의 분홍 순정

‘개란과 영어강사’의 붉은 본능




1.

주인공인 소군(여명)과 이교(장만옥)는 홍콩드림을 꿈꾸며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첫 장면과 대비되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들의 운명적 만남이 기차에서부터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너무나도 순박해서 불륜마저 안타깝게 만드는 소군은 이교를 만나

마음을 다 바쳐 그녀를 돕는다. 나중에 고백하지만


“이용하는 걸 알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찾지 않을까 봐...”라고 말하는

소군의 마음은 아마도 처음부터 그녀를 향했음이라.


마음의 떨림을 육체의 맞춤으로 승화한 날

“고독한 남녀가 스산한 날, 떡국을 같이 먹었을 뿐이야.”라며 감정의 이끌림을 거부하려는 이교

서로의 덕담을 ‘우정만세’로 마치는 대화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은 나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닐 것이다.


낯선 타지에서 조금씩 서로의 시간을 공유하며 가까워진 둘의 마음은

이교의 통장에 쌓이는 돈처럼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우정을 가장한 사랑의 행복이 무너지는 상황이 오고 이교도 빈털터리가 된다.

꿈을 향한 노력의 좌절 속에서 둘 사이의 만남도 단절되고

이교에게 또 다른 사랑인 표형이 등장한다.


2.

‘표형과 이교’의 사랑은 돈의 필요에 의해 시작됐지만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사랑이다.

미키마우스를 통해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순정과

배 위에서 나 말고 다른 남자가 널렸다며 자기를 편하게 보내주길 바라는 표형의 배려 안에서

이교는 또 다른 형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표형과의 만남으로 엇갈린 소군과 이교의 인연은 시간이 흘러

서로의 노력으로 다시 만나게 되고...


이교의 클락션 소리를 통해 감춰둔 속마음을 열게 된다.

마음을 확인하고 나누는 두 남녀의 뜨거운 키스는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포스터의 장면 속에서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네가 보고 싶어. “ 말하는 이교의 고백에

이제는 마음 편히 사랑해 줘요. 라며 응원을 해보지만

운명의 신은 또다시 둘 사이를 갈라놓게 되고 원치 않는 이별을 고하게 된다.


3.

소군의 중국 본토 애인인 소정은 첫사랑 같은 존재다.

서로를 향한 예쁜 마음과 정성이 모여 노랗게 결실을 거두기를 희망한다.


결혼을 통해 진정한 행복이 이루어진 걸로 보이지만

“처음 홍콩에 왔을 때 아침에 눈을 떠 하루 세끼 가득 먹고 쉼 없이 일했던 그때가 행복했었다. 네가 있었더라면...”이라고 고백하는 소군의 말속에 더 이상 소정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소멸했음을 보여준다.


고모의 유산을 다 주며 혈혈단신으로 떠나며 남기는 한마디 속에 남자의 고뇌가 드러난다.

“나는 용기 있는 남자가 아니잖아. 나도 괴로워”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교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모든 걸 버리고 떠난 소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남녀의 마주하는 장면의 미소는 그동안의 아린 마음을 토닥여준다.


4.

홍콩의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 고모와 윌리엄‘의 사랑은 순정이다.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생각하며 한평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 페닌슐라‘ 호텔의

그릇과 테이블보를 매개로 보존된 사랑이다.

창녀촌 포주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변치 않고 보여주는 순정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고 있다.

 

5.

태국소녀 개란과 영어강사 윌리엄은 육체적 욕망을 쫓아 시작됐지만

’ 에이즈‘를 겪는 죽음의 동반자로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희생을 말해준다.



’ 소군‘과 ’ 이교‘의 사랑장면에는 어김없이 등려군의 음악이 나온다.

첨밀밀, 굿바이 마이러브, 월량대표아적심까지


여명과 장만옥의 연기와 등려군의 슬픈 음악은 홍콩반환을 앞두고 있는 우울함과 맞물려 있다.

감성적이면서 설레다가, 마음이 아리도록 슬프다가 결국은 행복해지는 이 영화

오늘도 이 영화를 보며 운다. 사랑을 배운다.



주제가 월량대표아적심

https://youtu.be/axfdk2JtE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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