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파도 속에 휩쓸리지 않는 법

우리의 인간됨을 위한 사유

by Via Nova

아침의 시작은 스마트폰 알람이다. "오늘 일정을 확인해 드릴까요?" AI 비서가 친근한 목소리로 묻는다. 간단한 아침을 먹으며 뉴스피드를 훑어보니 알고리즘이 정성스럽게 골라준 '나에게 딱 맞는' 콘텐츠들이 기다리고 있다. 출근길에는 최적화된 경로를, 점심시간에는 취향 맞춤형 맛집을, 퇴근 후에는 지적 유희를 위한 영상을 추천받는다.
이렇게 하루가 끝나고 나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내가 한 선택 중에서 진짜 '내가' 선택한 게 얼마나 될까?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편리함 뒤에 숨어 있는 묘한 공허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AI가 복잡한 업무를 대신 처리해 준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고 초조해한다. 왜일까?
독일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이 100여 년 전 던진 경고가 지금 우리 현실과 놀랍도록 맞아떨어진다. "수단이 목적이 될 때, 인간은 삶의 방향을 잃는다." 돈은 원래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도구였는데, 어느새 돈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버렸다. AI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이제는 우리의 선택과 판단까지 좌우하는 '삶의 설계자'가 되어가고 있다. 더 섬뜩한 건, 우리가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게 더 효율적이잖아." "시간도 절약되고." 맞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은 없을까?
SNS를 열면 늘 완벽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예쁜 카페, 성공한 친구들, 화려한 여행 사진들. "왜 나만 이렇게 평범할까?"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가 말한 '행복의 폭정'이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그렇지 못한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있다. 잠깐 생각해 보자. 슬픔과 고통이 정말 '삭제해야 할 오류'일까? 비 오는 날에 느끼는 쓸쓸함, 이별 후의 아픔,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의 좌절감. 이런 감정들도 우리 삶의 소중한 일부가 아닐까? 이것들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진짜 기쁨과 만족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지금도 AI는 우리가 무엇을 사야 더 행복할지, 어떤 콘텐츠를 봐야 기분이 나아질지까지 '추천'해준다. 우리의 욕망까지 자동화시키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이것이 정말 우리를 위한 기술일까?
최근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AI정신병(AI psychosis)이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있다. GPT 대화를 통해 사용자의 현실감감을 왜곡하고 망상적 사고를 부추긴다는 실제 사례들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렇듯 기술이 '인간의 대체자'가 아닌 '왜곡된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곧 인간의 성숙을 의미하진 않는다. 아무리 발달한 AI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혼자 걷는 저녁 산책길에서 느끼는 고요한 만족감. 친구와 나눈 진솔한 대화 후에 남는 따뜻함. 가족 간에 건네는 따스한 일상. 좋아하는 책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입의 순간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의 설렘. 이런 경험들은 아무리 똑똑한 기계라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감정을 분석해 줄 수는 있어도, 그 감정을 실제로 느끼는 건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의 진정한 탁월함은 깊이 생각하고 올바른 행동을 선택하는 데서 나온다. 쇼펜하우어도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상태야말로 존재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조건이라고 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삶을 '의미 있게' 살아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 각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내 삶의 주인이 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AI를 무조건 거부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은 분명히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술에 적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기술을 조절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첫걸음은 아주 간단한 질문 하나에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도, 나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마음에 새기고 살 때,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효율보다는 의미를. 끊임없는 연결보다는 고요한 사유를.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 알고리즘의 추천 대신 직접 책을 골라 읽어보는 경험. 완벽한 SNS 게시물 대신 솔직한 감정을 친구와 나누는 대화. 이런 소소한 선택들이 쌓일 때, 우리는 다시 우리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결국 AI 시대는 거부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는 있다. AI는 삶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어도, 존재의 방향을 정해줄 순 없다. 기술을 삶의 중심이 아닌 도구로 되돌려 놓는 것.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고 의미를 추구하는 것. 알고리즘의 추천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는 것이다.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나는 지금 나답게 살고 있는가?"

이 질문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기술의 시대가 와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주체성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하루는 어떠한가? 오늘 하루 중에서 진짜 '당신'의 선택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 글을 읽은 지금이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