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앞에서 부패를 생각하다

썩어가는 냄새, 그리고 우리가 선택할 바람

by Via Nova

RFID 태그가 '삐~' 소리를 내며 인식되는 순간, 나는 이미 숨을 멈춘다.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서 플라스틱 뚜껑이 열리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고통이 온다. 뚜껑이 천천히 열리면서 쏟아지는 것은 단순한 악취가 아니다. 그것은 부패의 확산이다. 달콤했던 과일이 검게 변하고, 따뜻했던 밥이 곰팡이로 뒤덮이며 내뿜는 환경과 시간이 빚어낸 구역감을 유발하는 냄새.



그 냄새는 용기 안에 갇혀 있지 않는다. 찰나지간 나에게 투습되고 손을 타고 올라가고 엘리베이터에도 스며들고, 옷깃에 달라붙어 집까지 따라온다. 잠깐의 접촉이 남기는 오랜 흔적. 이것이 바로 부패의 본질이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우리 사회의 권력형 부패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권력 앞에 선 사람들을 보면 때로 음식물 쓰레기통 앞의 내 모습이 겹친다. 처음엔 코를 막고 잠시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한 번만", "별일 아닐 거야", "다들 이 정도는 하잖아." 하지만 부패는 점진적이다. 오늘의 작은 타협이 내일의 더 큰 타협을 부른다. 썩은 귤 한 조각이 변하면 옆의 건강한 귤에도 영향을 받듯, 조직 내 한 사람의 일탈은 결코 그 사람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몇 년 전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국장님이 부르더니 "오늘 점심 같이 하자"고 했는데 식당에 가보니 건설업체 대표가 먼저 와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점심만 먹는 줄 알았는데 업체 사장이 "허가 건으로 애를 좀 써달라"며 은근히 부탁을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번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고, 세 번째 만남에서는 아예 "작은 마음이니까 받아달라"며 봉투를 건넸다고 한다. 그 친구는 결국 "이러면 안 된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처음 점심 한 번 같이 했으면 그다음엔 저녁, 그다음엔 골프, 끝이 없었을 거예요. 국장님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이었는데, 저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얼마 전 청렴교육에서 한 변호사가 던진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여러분은 교육 안 들으셔도 이미 청렴합니다. 정작 들어야 할 사람들은 듣지 않고, 안 들어도 될 사람들만 듣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을. 부패가 '개인의 일탈'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그 냄새를 맡고도 모른 척하는 우리의 침묵이 결국 더 큰 썩음을 만든다는 것을.

아파트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음식물 쓰레기 냄새를 피할 수 없듯, 사회에서 권력형 부패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재명 대통령도 성남시장 시절 하도 많은 사람들이 청탁과 부탁 사이 어디쯤을 위해 찾아오니 시장실에 CCTV를 달았다는 일화도 있다. 한국사회가 가진 정이라는 문화를 앞세우며 이 경계를 은밀히 침투한다. 시장에서 음식점을 하는 시민, 민원실을 찾는 주민, 보조금을 신청하는 소상공인. 우리는 모두 그 냄새 속에서 살고 있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는 마치 환기가 안 되는 밀폐된 공간 같다. 의심이 공기를 대신하고, 냉소가 대화를 대신한다. "어차피 다 그런 거 아니야?"라는 체념이 희망을 잠식한다.

허나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음식물이 완전히 썩기 전에 냉장보관하듯, 우리도 부패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절한 온도와 환기다. 사회의 청렴함을 유지하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투명성이라는 적절한 온도, 감시와 견제라는 환기 시스템이 필요하다. 제도는 냉장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냉장고 문을 여닫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문화는 그 위를 감싸는 공기 같은 존재다. "당연히 깨끗해야 한다"는 분위기,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겪었던 공통된 경험이 좋은 예다. 음식물 쓰레기통이 처음 설치될 때는 어디나 난리였다. 일반 쓰레기까지 넣고, 물기를 빼지 않아 냄새가 더 심해졌다. 손을 씻으라고 설치한 개수대엔 음식물 찌꺼기가 둥둥 떠 있다. 관리사무소의 안내방송도 소용없었다. 그런데 변화는 한두 명의 자발적 참여에서 시작됐다. 누군가가 먼저 쓰레기통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본 다른 주민들이 조금씩 더 신경 쓰게 된다. 점차 다른 주민들이 동참하고, 결국 전체 단지의 문화가 바뀌는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아파트에서 음식물 분리배출과 깨끗한 유지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 직장에서는 무엇을 시도해 볼 수 있을까? 청렴 원탁 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공직자들이 둘러앉는 자리를 상상해 본다. 거창한 구호가 아닌, 일상에서 마주하는 작은 딜레마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 "민원 처리할 때 느끼는 애매한 순간들", "보조금 심사에서 겪는 고민들", "공직자로서 공정함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자리에서 진정한 소통이 시작된다. 발언의 무게는 직급이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온다. 회의에서 나온 안건은 표결에 부쳐서 즉시 정책화 할 수 있도록 연계한다.

김영란법을 만든 김영란 전 대법관이 화성시민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김영란 법이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그분이 불러일으킨 변화의 바람이 내 직장 화성에서 더욱 깊이 뿌리내린다면 얼마나 기쁠까. 하지만 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김영란법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그 정신이 화성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어야 한다.

사실 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아직도 일부 지역에서는 공무원 승진을 위한 뇌물이 암암리에 거래된다는 것이다. 사무관 승진에 5천만 원, 서기관 승진에 8천만 원 식으로 마치 가격표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특히 시골 지역일수록 이런 관행이 더 뿌리 깊다고 한다. 최고권력자 한 사람의 입김으로 승진이 좌우되는 구조에서 그 사람에게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줄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김영란법 시행 초기의 소소한 해프닝들이 오히려 순수해 보인다. 동창회 회비를 고민하고, 결혼식 축의금 액수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공무원들의 모습 말이다.







매번 음식물 쓰레기통 앞에 설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그 썩음을 방치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으려 노력하는 사람인가? 얼마 전 둘째가 친구들과 영화 F1 더 무비를 보고 나서 지갑을 극장에 두고 온 일이 있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어 극장에 연락했는데, 다행히 직원이 보관해 두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순간 안도의 숨을 쉬면서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누군가의 눈에 띄었을 때, 그가 양심대로 행동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선택이 결국 한 가족의 하루를 지켜준 셈이다. 이렇듯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곧 청렴의 길이 아닐까.

부패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던진 작은 돌멩이가 연못에 파장을 일으키듯, 내가 내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사회의 공기를 만든다. 청렴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분리수거가 그랬듯이,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될 수 있다. 청렴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출근하며 나는 생각한다. 신뢰받는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원칙을 지키고 투명하게 일하고 작은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그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우리 화성에서 시작되는 청렴한 바람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 바람은 지금, 여기서,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