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해서 더 특별했던 10년

책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고민

by Via Nova

2015년 9월 9일이었다. 회사 자유게시판에 누군가 올린 글 하나가 내 눈길을 끌었다. "책 추천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평범한 글이었는데, 댓글이 생각보다 많이 달렸다. 나도 그동안 정리해 놨던 독서목록을 올리며 그분의 즐거운 독서생활을 응원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추천만 해주고 끝낼 게 아니라, 아예 같이 읽어볼까? 그래서 조심스럽게 댓글을 달았다. "책 읽는 모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몇 명이나 응답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더니 결국 첫 모임을 갖게 됐다. 그게 바로 10년 전 오늘, 2015년 9월 9일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 작은 시작이 이렇게 10년을 이어갈 줄을.


모임 이름을 정할 때도 웃겼다. 뭔가 멋있는 이름을 지어보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냈는데 느낌이 없었다. 다른 모임처럼 그냥 독서동호회라고 할까 했는데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단어는 바로 ‘불편’이었다. "불편한 밥상"이라는 말을 던졌다. 처음에는 다들 웃었다. 뭔 독서모임이 불편한 밥상이냐고. 묘하게 끌렸다. 편안하고 달콤한 것만 찾는 세상에서, 굳이 불편함을 자처한다는 게 뭔가 특별해 보였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하려는 일이 바로 그런 거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만 읽지 말고,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책도 읽어보자. 비록 내 수준에서 읽기 힘든 불편이 있더라도 함께하는 힘으로 읽어보자. 책 모임도 하지만 맛있는 식사도 하기에 밥상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불편한 밥상’이 탄생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정말 많이 변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 모임은, 늘 편안한 식사와 가벼운 수다만 나누던 자리를 넘어 책이라는 불편한 도전을 통해 각자의 삶을 성장시키는 공간이 됐다. 사실 그 과정에서 많은 멤버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 밴드를 살펴보니 70여 명의 사람이 가입되어 있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많은 책이 우리 앞에 놓였고, 그때마다 우리는 웃음과 논쟁, 감동과 질문을 함께 나눴다. 물론 책과 연결된 삶의 대화도 많이 나눴다. 2020년 불편한 밥상 굿즈를 제작할 때 내가 냈던 문구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나를 찾는 시간’는 독서독호회 정체성을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독서 모임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책을 그저 '읽는 행위'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토론과 감상 나눔은 내 독서를 '쓴다'는 차원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첫 몇 년은 정말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어떤 책을 읽을지, 어떻게 토론할지,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그냥 책 읽고 느낀 점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누구는 책을 다 읽어오고, 누구는 반도 못 읽어와서 어색한 분위기가 되기도 했고. 토론이라는 게 뭔지도 몰라서 그냥 각자 감상평만 늘어놓고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제로 어떤 모임엔 선정자를 제외하고 아무도 책을 읽지 못하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순간도 있었다. 그런데 점점 익숙해지면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이 바로 메모독서법이었다.


신정철의 『메모독서법』, 문유석의 『쾌락독서』는 책 읽기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저자는 "읽는 독서에서 쓰는 독서로, 효과 없는 독서에서 생산적인 독서로 나아가라"라고 말한다. 그 핵심은 기록이었다.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질문을 쓰고, 중요한 문장을 옮겨 적으며, 나만의 생각을 곁들이는 것. 처음에는 귀찮았다. 책 읽는 것도 바쁜데 무슨 메모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평소에는 그냥 쭉 읽고 지나쳤을 문장들이 새롭게 보였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내 생각을 적어두니까, 나중에 그걸 다시 보면서 그때의 내가 되살아났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들이 모여 독서노트가 되고, 마인드맵이 되고, 결국은 글쓰기로 이어졌다. 책을 읽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면, 기억은 금세 흩어진다. 그러나 메모를 하면 생각이 분명해지고, 표현력도 좋아진다. 저자가 "책이 나무라면 메모독서는 열매"라고 했는데, 내가 지난 10년간 경험한 바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토론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냥 재미있었어요", "감동적이었어요" 이런 식의 뻔한 이야기만 했는데, 메모를 해두니까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게 됐다. "75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저자가 하려는 말이 뭘까요?" 이런 식으로 말이다. 토론의 수준이 확실히 달라졌다.


유투버 부기우기 손승욱의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꾼 자료화 독서법』도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 그는 독서를 "느낌만 남기는 행위"가 아니라, 지식을 체계적 자료로 변환하는 작업이라 말했다. 자료화 독서법은 목적 인식부터 시작해서 책 선별, 훑기, 정독, 수집, 묶기, 분류, 주제별 동기화, 일상 활용, 창작 활용까지 10단계로 이루어진다. 처음에는 너무 복잡해 보였다. 그냥 책 읽는 건데 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한번 해보니까 정말 유용했다. 특히 수집–묶기–분류–동기화의 과정이 놀라웠다. 단순히 발췌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같은 메시지를 묶어내고, 중요도에 따라 분류하며, 주제별로 동기화한다. 그렇게 하면 저자의 책이 아니라 '나만의 책'이 새로 탄생한다. 예를 들어 리더십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나서, 그 내용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니까 각 저자들이 하는 말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확실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내 나름의 리더십 철학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이 방식은 직장 생활에도 직접적 도움을 주었다. 보고서를 쓸 때, 정책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 필요한 자료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리된 노트에서 즉시 나왔다. 자료화 독서법은 단순한 독서법이 아니라, 지적 생산 시스템이었다.


서평 쓰기도 중요한 변화였다. 처음에는 독후감이랑 서평이 뭐가 다른 지도 몰랐다. 그냥 읽고 느낀 점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전혀 다른 거였다. 독후감은 자유롭고 감상적이다. 책을 읽고 눈물이 났다면, 그 감정을 그대로 적는 것이 독후감이다. 그러나 서평은 객관적이고 균형적이다. 책의 의도와 핵심을 짚고, 평가와 맥락을 덧붙인다. 독후감이 나의 감정의 기록이라면, 서평은 다른 독자에게 건네는 안내서다. 누군가 이 책을 읽을지 말지를 고민할 때 서평은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글이다. 서평은 책을 나만의 언어로 다시 살아내는 과정이다. 단순한 독후감과 달리, 서평은 "내가 무엇을 느꼈는가"를 넘어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래서 좋은 서평은 따뜻함과 냉정함을 동시에 담는다. 저자의 가치관과 문제의식을 존중하되, 설득력과 한계도 지적한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쓰는 것, 이것이 내가 지향하는 서평의 모습이다.


내가 정리한 서평 쓰기의 원칙은 간단하다. 첫째, 쓰는 사람의 입장을 명확히 하기.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고, 왜 추천하는지 밝히는 것. 둘째, 과욕 금물. 너무 잘 쓰려 애쓰지 말고, 가볍게 정리하는 마음으로 임하는 것. 셋째, 감정의 흔적 존중. 감동, 재미, 실망, 두려움, 그 어떤 감정이라도 글감이 된다는 것. 특히 중요한 것은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독서를 가로막는다. 서평은 나의 사유와 감정을 기록하는 최소한의 형식일 뿐 그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책이 던진 파문을 솔직하게 담는 것, 그것이 가장 좋은 출발이다. 이 원칙은 일반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나의 서평 쓰기 과정은 이렇다. 먼저 발췌 - 밑줄과 메모로 핵심 문장을 표시한다. 그다음 메모 - 즉각 떠오른 생각, 질문, 단상을 곁들인다. 그리고 개요 - 저자의 의도, 핵심 주제, 내가 중요하게 느낀 부분을 구조화한다. 다음은 초고 - 한 호흡에 써 내려간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퇴고 - 하루 이틀 묵힌 뒤, 다시 읽고 다듬는다. 이 과정을 거치면, 책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나의 언어로 재탄생한다. 때로는 내 삶의 문제와 맞닿아 새로운 해법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기존의 가치관을 흔들어 새로운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책을 읽은 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도 중요하다. 이 책은 내 가치관을 어떻게 흔들었는가? 저자의 주장이 내 상식을 어떻게 바꿨는가? 만약 저자가 내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장 동의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인가? 지금 당장 실천으로 옮기고 싶은 변화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은 단순히 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삶에 연결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만든다. 나아가 다른 책들과의 대화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를 발견하고, 통합적 시각을 기를 수 있게 한다. 독서는 더 이상 고립된 행위가 아니라, 세계와 나를 연결하는 다리가 된다.


10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정말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는 책 몇 권 함께 읽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진지한 독서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서로 책을 추천해 주고, 함께 읽고, 토론하고, 서평을 나누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편함을 즐길 줄 알게 됐다. 불편함이라는 게 뭘까? 내가 평소에 읽지 않던 장르의 책을 읽는 것.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담은 책을 만나는 것. 토론에서 내 의견이 도전받는 것. 이런 것들이 다 불편하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했다.


우리 동호회의 이름 '불편한 밥상'은 힘이 있다. 책은 언제나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때로는 내 생각을 뒤흔들고, 때로는 내 삶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10년 동안 우리는 함께 불편함을 마주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책을 매개로 한 대화는 언제나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값졌다. 불편한 밥상은 결국 풍요로운 밥상이었다.


독서동호회를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총균쇠’, ‘사피엔스’, ‘코스모스’ 등 두꺼운 여러 교양서도 읽게 됐다. 몇 년 전에 어떤 인문학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난다. 정말 어려운 책이었다. 읽다가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과 함께 읽으니까 끝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토론 시간에 각자 이해한 바를 나누면서, 혼자서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걸 보면서,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관점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책 읽는 것에만 머물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도 달라졌다. 뉴스를 볼 때도 예전처럼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이게 과연 맞는 말인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됐다. 회사에서 보고서를 쓸 때도 근거를 더 꼼꼼히 찾아보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려고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시간들도 있었다. 바쁜 일상 때문에 책을 제대로 못 읽고 모임에 나온 적도 많았고, 토론 중에 감정이 상한 적도 있었다. 어떤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멤버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혼자였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텐데, 함께 하니까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부족함들조차도 우리의 소중한 경험이다.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더 인간적이고, 그래서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다음 10년을 준비해야 한다. 독서동호회의 의미는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데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책을 통해 나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메모하고, 정리하고, 써야 한다. 질문하고, 토론하고, 나누어야 한다. 읽은 것을 삶에 연결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서평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글쓰기 훈련이 아니라,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길이며, 공동체와 더 나아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불편할 것이다. 더 어려운 책들이 기다리고 있고, 더 치열한 토론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통해 우리는 계속 성장할 것이다. 20년 후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벌써부터 궁금하다. 2015년 9월 9일, 그 작은 시작이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책 추천해 달라던 그 작은 글이 10년의 여정으로 이어질 줄 누가 상상했겠는가? 책은 언제나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 세계를 내 삶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기록과 서평이 필요하다. 메모독서법의 열매처럼, 자료화 독서법의 창고처럼, 책 속의 지식을 내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불편한 밥상' 10주년을 맞아, 나는 다시 다짐한다. 책을 읽고, 메모하고, 서평을 쓰며, 그것을 나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지식으로 만들겠다고. 그 길 위에서 또 다른 10년의 성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불편한 밥상'이라는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 우리가 바라던 일이 딱 그거였다. 요즘 들어 사람들은 더욱 더 편함만을 추구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맡겨 가볍게 터치만 한다. 숏츠와 릴스는 전두엽을 마비시킨다. 편안하고 익숙한 것만 찾지 말고, 때로는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자. 그 과정에서 얻는 게 훨씬 크다는 걸 10년의 경험이 증명해 줬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있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로 이어지는 일들이.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불편한 밥상, 10주년을 자축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불편하자. 그 불편함이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테니까.


화성시청 독서동호회 '불편한 밥상'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며

2025년 9월 9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