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치유하는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이 문장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마음속에 남았다. 내 몸에는 어떤 사회의 시간이 새겨져 있을까? 우리는 흔히 건강을 개인의 탓으로 돌린다. 술·담배, 운동 부족 같은 생활습관의 문제로만 설명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개인의 질병에서 사회의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는 사회역학연구자인 저자는 10여 년의 연구를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사회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의 연구실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 숫자와 그래프로 드러난 차별과 불평등의 기록이 있었다. 다양한 사례에 대한 명확한 데이터는 우리의 편견을 뒤집는다. 차별과 폭력, 고용불안과 가난은 마음이 잊으려 해도 “몸은 정직하기”에 끝내 기억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개별 환자를 진료하는 대신 사회 전체를 진단한다. 성소수자, 해고노동자, 재난 생존자에게서 수집한 자료와 인터뷰, 조사표와 통계가 모여 한 가지 사실을 반복해서 증언한다. 몸은 사회를 기억한다.
'1부 말하지 못한 상처, 기억하는 몸', '2부 질병 권하는 일터, 함께 수선하려면', '3부 끝과 시작, 슬픔이 길이 되려면', '4부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라는 제목으로 구성된 책의 흐름은 1부에서 4부까지 점차 시야를 넓혀 가며 우리를 이끈다.
먼저 1부에서는 사회적 차별과 배제가 실제로 사람의 몸을 병들게 한다는 걸 보여준다. 말하지 못한 상처가 어떻게 몸에 각인되는지. 구직 과정에서 차별을 겪고도 설문지에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표시한 여성들, 학교 폭력을 겪었지만 “별일 아니다”라며 덮은 남학생들. 이상하게도 그들이 더 많이 아팠다. 이 현상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재난에서도 마찬가지다. 1995년 시카고 폭염, 일주일 사이 700명이 넘게 숨졌을 때, 먼저 쓰러진 이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노인들이었다. 연구는 분명히 말했다. “사회적 고립은 폭염 사망 위험을 높인다.” 같은 더위라도 공동체의 연결망이 무너진 곳에서 죽음이 집중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도 “사회적 지지가 높을수록 PTSD 증상이 낮았다”는 결과가 반복되었다. 개인의 트라우마조차 사회적 관계 속에서 완화되거나 악화된다.
시야를 일터로 옮기는 2부는, 노동이 어떻게 질병을 ‘권하는’지 보여준다.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를 조사했을 때, 해고노동자의 “절반 이상(50.5%)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위험군에 해당”했다. “이는 걸프전 참전 군인의 22%, 포로 경험 군인의 48%보다도 높은 수치였습니다.” 해고가 전쟁보다도 깊은 상흔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문장이 구호가 아닌 데이터로 다가온다. 삼성 반도체, 원진레이온, 제일화학의 사례는 또 다른 패턴을 드러낸다. 위험 물질은 언제나 더 약한 몸에게 떠넘겨졌다. 저자는 요약한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더 많이 아파도 덜 쉰다.” 산업재해는 우연이 아니라, 예방 가능한 사회적 질병이라는 사실이 통계로 확인된다.
3부는 ‘끝과 시작’이라는 제목 그대로, 상실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배움과 책임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기근, 감비아의 보릿고개, 중국 대약진운동을 겪으며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연구는 태아기의 결핍이 성인기의 질병 위험으로 이어지는 “절약형질 가설”을 뒷받침한다. “가난은 우리 몸에 고스란히 새겨집니다.” 불평등은 한 세대의 삶을 넘어서, 다음 세대의 몸에까지 흔적을 남긴다. 의학사의 어두운 단면도 여기서 드러난다. “18~19세기 해부학 교과서에 실린 인체는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시신이었습니다.” 병원비를 내지 못해 해부용으로 넘겨진 몸, 과도한 스트레스에 커진 부신을 ‘정상’으로 오인했던 기록들. 지식조차 불평등의 환경을 입고 생산되었다. 저자는 트랜스젠더 278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소개하며 “무지했고 무례했다”라고 고백한다. 연구자로서 객관적이라고 묻었던 자신의 질문조차 폭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이 대목에서, 지식인의 정직한 자기 성찰이 빛을 발한다. 은행 창구, 화장실, 병원, 술자리에서 반복되는 질문과 시선이 어떻게 우울과 자살 시도로 이어지는지 그는 담담하게 기록한다. “그들은 타인의 성별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는 듯 당당했다.” 그들이 겪은 불편과 시선들을 기록하며 사회가 일상적으로 타인의 몸을 침범하는지를 보여준다. 슬픔과 고통의 기록은 여기서 멈춰 선 안 된다. 그것은 길이 되어야 한다. 슬픔을 응시하는 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제목처럼 스며든다.
마지막 4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할 때 사람들의 몸이 덜 아픈지, 더 오래 사는지 보여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HIV 치료제를 무상으로 제공하자 “단 7년 만에 기대수명이 12년 늘었다.” 반대로 IMF 구조조정을 선택한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결핵 사망이 급증했다. 저자는 단정한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은 모든 인간에게 동일하게 분포되지 않습니다.” 바이러스와 세균이 같아도, 제도와 정책이 다르면 결과는 달라진다.
그는 정치와 행정이 가져야 할 나침반을 제시한다. “첫째,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할 것. 둘째, 지식 생산 과정을 의심할 것. 셋째, 불충분한 근거를 이유로 해결을 미루지 말 것.”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우리는 망망대해에서 배를 뜯어고쳐야 하는 뱃사람과 같은 신세입니다.” 완벽한 부두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다 사람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이 장의 결론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이며,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본다. 파랑과 빨강이 섞인 그 중간인 색은, 차갑게 사실을 응시하는 데이터의 파랑과 약자의 편에서 함께 비를 맞겠다는 따뜻한 보살핌의 빨강이 만나는 지점 같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담백한 디자인처럼, 문장도 장식보다 근거를 앞세운다. “질병을 앓는 몸은 사회를 고발하는 가장 정확한 언어”라는 문장이 오래 남는 이유다.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하나다. 내가 속한 조직의 정책은 누구의 몸을 더 아프게 만들고, 누구의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가. 효율의 이름으로 형평을 미루지 않았는가. 아픔을 통계에만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그걸 바탕으로 길로 만들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조용히 권한다. 우리가 아픈 이유를 알아야 “아프지 않을 권리”를 요구할 수 있고, 아픈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을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연결을 늘리고, 증거를 모으고, 망설임을 줄이는 일. 그렇게 아픔을 길로 만드는 일.
그 길 위에서 비로소 우리는 더 건강한 우리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