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배운 걸 실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2030년까지 'AI 챔피언 2만 명'을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행정안전부가 직접 나서서 모든 공무원에게 AI 리터러시 교육을 실시하고, 실무 중심의 전문가 과정을 개설하며, 민관 협력 프로젝트를 병행한다고 한다. 윤호중 장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공직 내부의 전문가 없이는 AI 시대 행정 혁신도 불가능하다."
계획은 그럴듯하다. 이러닝 강좌, 교재, 인증 제도, 실습형 커리큘럼, 부처별 맞춤형 과정, 그리고 민간 협업까지.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렇게 배운 사람들이, 과연 조직 안에서 움직일 수 있을까?"
AI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이 말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실제로 혁신이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의 부족이 아니라 조직 문화의 경직성 때문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의 70%가 실패하는데, 그 원인의 대부분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저항'과 '문화적 장벽'이었다.
AI 챔피언이란 단순히 'AI를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AI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이다. 그들은 데이터를 읽되 숫자 뒤의 사람을 본다. 기술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도 행정의 현실을 이해한다. 무엇보다, AI를 활용하기 전에 사람을 믿는 법을 안다.
그들은 종종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질문이 많고, 보고서 형식을 깨고, 새로운 도구를 먼저 써 본다. 때로는 "괜한 일 벌인다"는 말도 듣는다. 하지만 역사를 돌아보라. 혁신은 언제나 질문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복지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꾼 영국의 '디지털 서비스(GDS)'도, 처음엔 '공무원이 코딩을 왜 배우냐'는 비난을 받았다. 지금은 전 세계 정부가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되었다.
행안부가 말하는 'AI 챔피언'은 단순한 기술 인력이 아니다. 그들은 현장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줄 아는 변화 촉진자다. 정책의 언어와 알고리즘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번역자다. AI를 시민의 눈높이에서 설명할 줄 아는 소통자다. 결국, 행정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내부 혁신가(Intrapreneur)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교육만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판을 바꾸는 일이다. MIT 경영대학원의 연구에 따르면, 조직의 혁신 역량은 '교육 시간'이 아니라 '실험할 수 있는 권한'과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에 비례한다. 아무리 뛰어난 교육을 받아도, 돌아온 조직이 여전히 실패를 징계하고 새로운 시도를 의심한다면, 배운 것은 서랍 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정부의 AI 챔피언 육성 계획이 진짜 성공하려면, 교육보다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AI 챔피언은 자유롭게 탐색하고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 접근권, 시범 사업 제안권, 실패 면책 제도 같은 실질적 권한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교육도 '보고서용 스펙'으로 끝난다. 에스토니아는 공무원에게 '20% 시간'을 보장한다. 구글도 20%를 창의적 프로젝트에 쓸 수 있게 한다. 업무 시간의 20%를 자유롭게 내가 관심 있는 프로젝트에 쓸 수 있다. 그 결과 e-레지던시, 디지털 아이덴티티 같은 혁신적인 서비스가 탄생했다. 혁신은 책임이 있는 자유 속에서 자란다.
AI 프로젝트는 본질적으로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구글의 전설적인 프로젝트 관리자 에릭 슈미트는 말했다. "빨리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 단, 배우면서 실패하라." 실리콘밸리의 신화가 아니다. 실제로 성공한 AI 프로젝트들의 공통점은 '작고 빠른 실패'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왜 실패했느냐" 대신 "무엇을 배웠느냐"라고 묻는 조직이 필요하다. 실패가 인사 기록이 아니라 학습 자산으로 남는 구조, 그게 진짜 혁신의 시작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GovTech'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국의 디지털 혁신 사례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 어느 부처에서 챗봇을 성공적으로 도입했는지, 어떤 데이터 분석이 정책 결정에 도움이 됐는지, 모든 공무원이 볼 수 있다. 우리도 전국의 부처와 지자체에서 AI를 활용한 성과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누구나 참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AI 챔피언 포럼'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배우고, 실패 사례도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혁신은 혼자가 아니라 연결에서 완성된다.
리더가 먼저 '모르는 걸 묻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사티아 나델라는 회사 문화를 "Know-it-all"에서 "Learn-it-all"로 바꿨다. 모든 걸 아는 척하는 문화에서, 모든 걸 배우려는 문화로.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혁신 기업으로 거듭났다. 회의실에서 "이건 데이터로 확인해 보자"는 한마디가 혁신의 신호가 된다. 탐색하는 사람을 평가에서 감점하지 않고, 오히려 도전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변화는 제도화된다.
AI 챔피언을 키우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사실상 사람을 믿는 정부가 되겠다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의지이고, AI보다 강력한 건 신뢰다. OECD의 2023년 보고서는 명확하게 지적한다. "공공 부문의 AI 도입 성공률은 기술 투자액이 아니라 직원의 참여도와 조직의 신뢰 수준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진짜 행정혁신은 '디지털 전환'이 아니라 '사람중심 자산형성으로의 전환'이다. 정책이 데이터를 품고, 데이터가 사람을 품을 때, 그 안에서 비로소 AI는 공공의 도구가 된다.
누군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공무원이 무슨 스타트업처럼 움직일 수 있겠냐고요."
그럴 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미 그렇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밤늦게 남아 민원 데이터를 붙잡고, "이건 사람의 문제야"라며 표를 다시 그리는 사람들. 휴직기간 중에 챗GPT를 공부해서 API서비스를 만들어 공유하며, "이게 업무 혁신 아닐까요?" 하고 웃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AI 챔피언이다. 그들의 땀방울에 의해 지금 이 순간에도 행정은 발전한다.
그들은 기술로 일하지 않는다. 사람을 위해 기술을 쓴다. 내가 2017년 화성시 빅데이터 추진계획 표지에 '사람을 향한 기술 활용'이라고 쓴 적 있다. 7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결국 사람이 중심이다.
그들의 질문 하나, 그들의 시도 하나가 이 나라의 행정이 바뀌는 출발점이 된다.
AI 챔피언은 거창한 타이틀이 아니다. 그것은 태도의 이름이다.
기술보다 사람을 믿는 용기.
규정보다 변화를 믿는 끈기.
결과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겸손.
그것이 진짜 챔피언의 조건이다.
AI 강국은 GPU의 나라가 아니다. AI 강국은 그런 사람을 키우고, 그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성공할 수 있게 하는 나라다. 2만 명의 AI 챔피언은 2만 개의 교육 수료증이 아니라 2만 번의 용기 있는 시도로 만들어진다.
정부가 진짜 해야 할 일은 교육 과정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들이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다. 권한을 주고, 실패를 허용하고, 성공을 공유하고, 문화를 바꾸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AI 챔피언이 아니라 AI 강국을 말할 수 있고 행정혁신을 꿈꿀 수 있다.
그 시작은 지금, 여기, 당신의 조직에서 "이거, 한번 해볼까요?"라고 말하는 한 사람의 용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