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향해 살아가는가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by Via Nova

지난주 새벽예배 때 요한계시록 설교를 들었다. 박사학위를 요한계시록으로 하신 김추성 목사님의 귀한 말씀이었다. 보좌, 경배, 영적전쟁, 바벨론, 최후의 승리.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예배당에서 목사님은 여러 이야기를 했고 그중 두 개의 도시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무너지는 도시와 찬란한 도시. 듣다 보니 자꾸 딴생각이 났다. 이건 꼭 신앙 이야기만이 아니구나 싶었다.


인간은 반드시 무언가를 향해 산다. 활은 과녁을 향하고, 씨앗은 나무를 향한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를 향해 기울어져 있다. 문제는 그 방향이다. 어디를 향해 기울었느냐가 그 사람의 삶 전체를 결정한다.


고대 바벨론이라는 도시가 있었다. 바벨론은 상징이다. 쾌락과 성공과 권력이 하나의 체계를 이루어 사람을 부드럽게 휘감는 모든 것이다. 바벨론은 강압으로 오지 않는다. 유혹으로 온다. 취하게 만들어 방향을 잃게 한다. 취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모른 채 달린다.


바벨론의 본질은 '조금만 더'다. 조금만 더 가지면,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금만 더 인정받으면. 그 속삭임은 끝나지 않는다. 도착점이 없는 경주에서 결승선을 향해 뛰는 것처럼. 그리고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계시록의 표현이 냉정하다.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반대편에 새 예루살렘이 있다.


이 도시는 놀랍게도 장소가 아니다. 계시록은 새 예루살렘을 신부, 어린양의 아내라고 부른다. 도시가 사람이다. 공동체 자체가 목적지다. 그 도시에는 성전이 없다. 하나님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형식이나 매개가 필요 없는 완전한 동행.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갈망, 혼자가 아니라는 것의 완성형이다.


소망은 현재를 바꾼다. 어디를 향해 사는가의 문제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내가 무엇에 에너지를 쏟고,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을 잃었을 때 무너지는가. 그것이 이미 내가 어느 도시의 시민인지를 말해준다.


새 예루살렘을 향해 산다는 건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다. 더 크고 더 실재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바벨론의 속삭임 앞에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세상 속에 살되 세상이 목적지가 아닌 사람. 그것이 순례자다. 순례자는 지금 이 길이 전부가 아님을 안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취하지 않고, 방향을 잃지 않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말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조르바의 자유는 체념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것들에 더 이상 무릎 꿇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새 예루살렘을 향해 사는 사람의 자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바벨론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가볍게 걸어갈 수 있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것을 향해 산다는 것. 그것이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