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왔다가 꽃같이 가다
벚꽃이 졌다.
꽃처럼 왔다가 꽃같이 갔다. 드라마틱하게 흩날리며, 미련 같은 것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 이제 연둣빛 잎사귀들이 조용히 들어차고 있다. 나무는 꽃이 없어도 빛난다. 어쩌면 꽃이 진 다음에야 비로소 제 색깔로 빛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길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게 실패한 꽃인가. 아니다. 꽃의 자격이 가지 위에 붙어 있는 동안에만 유효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요즘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다."
처음엔 나이 든 사람이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쓴 말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그런데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이 문장이 달리 읽힌다.
우리는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곤 한다. 10대 20대는 봄, 30대 40대는 여름, 그다음부터는 서서히 낙엽이 지는 것처럼. 그 서사 안에서 나이 듦은 자동으로 퇴장이 된다.
허나 나무를 보면 그렇지 않다. 꽃이 지고 나면 나무는 묵묵히 잎을 키운다. 여름엔 그늘을 만들고, 가을엔 붉게 타오르다가, 겨울엔 뼈대만 남아 하늘을 버텨낸다. 어느 계절이 이 나무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인가. 답이 없다. 나무는 계절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20대에 빛나는 삶이 있고, 50대에 처음 제 목소리를 내는 삶이 있다. 어떤 사람은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나서야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만난다. 그게 늦은 것인가. 그건 그 사람의 꽃이 피는 시간이 거기였던 것이다. 사무엘 울만의 말대로 청춘은 나이로 세는 게 아니다. 아직 설레는 것이 있는가, 아직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 마음이 있는 동안은 청춘이다. 반대로 그 마음을 잃으면, 스물다섯이어도 이미 늙은 것이다.
젊게 산다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여전히 무언가에 반응하는 것이다. 흔들리고, 궁금해하고, 조금은 설레는 것. 그 마음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은 어느 계절에 있든 빛난다.
꽃이 진 자리에, 비로소 나무는 자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