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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환철 May 09. 2023

오늘은 새로운 시작

'시작이 반이다'가 진짜였다.

내 가방은 통기가 잘 된다.  글을 꾸준히 쓰려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넣다 보니 어찌어찌하면 닫힐 테지만 신경 써서 닫아야 하는 탓에 안 닫는 게 좀 더 편하긴 하다. 그런 연유로 지퍼를 살짝 열고 다닌다. 물론 모양은 조금 이상해보일 수 있겠지만 내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 키보드를 들고만 다닌 지 2주가 넘는 듯하다. 어쩌다 켜도 조금 치다가 다시 집어넣게 된다. 글을 쓰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 필요하달까? 시작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지금 이 글조차 휴대폰으로 작성하고 있으니... 예전에 공부하라고 연필 깎고 필통 정리하고 그러던 학생과 무엇이 다를까.  그나마 페이스북 글은 그렇지 않은데 브런치 글은 왠지 모르는 압박감이 있다. 이게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무게라고 하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웃겠지만 내 딴엔 그렇다. 



나에겐 세상 무섭다는 중2 아들이 있다. 외계인이 지구 침략을 안 하는 게 중2 때문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감정적 기복이 있다는 시기지만, 우리 아들은 가끔 버럭 하는 것 말고는 한없이 순하고 내 눈에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얼마 전 이 아들이 생애 첫 시험을 쳤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안 보고 중 1도 시험을 보지 않는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해야 한다며 유난(?)을 떨었고, 아내의 등쌀과 아들의 호기로움이 결합되어 올백을 맞겠다고 다짐했건만 실제 결과는 거기에 못 미쳤다. 결과를 보고 아이는 시무룩해졌고 아내는 시니컬해졌다. 아내는 자사고에 지원하려면 내신 올백은 기본이라며 아이를 압박한다.



"누구 엄마는 프로필에 올백 답안지를 올렸더라."


"아... 엄마 꼽준 건 그만 좀 해(꼽은 무안하게 하거나 압박할 때 쓰는 단어란다)"



듣다 못 한 내가 큰 애를 따로 불러


"아빠는 네가 이번에 만점이 아닌 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해. 자만하거나 방심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됐고 다음에 올라갈 구석이 있잖니. 이번에 틀린 문제 확실하게 왜 틀렸는지 체크하고 다음에 멋지게 보여주자."



이런 이야길 들으면 요즘 입시를 몰라서 듣기 좋은 소릴 한다고 할 테지만 어쩌랴. 시험은 계속 있고 좋은 학교가 꼭 좋은 인생을 보장해주진 않지 않는가.



저녁때 어버이날이라 할머니와 온 가족이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는데 전에 올백 맞으면 주겠다는 특별용돈을 만점이 아니라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결과는 인정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에 뭉클해진다. 역시 우리 엄마가 최고다. 스피커폰을 같이 듣던 아내가 부모님 얼른 개입해서 "다음에 더 잘 볼 테니 그때 주세요."라며 용돈 지급을 말린다.  아마도 용돈 체감효용과 앞으로의 이벤트 발생빈도를 고려한 조치일 것이다. 아이는 살짝 실망하지만 다음에 받음 된다며 쿨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네 모든 삶은 다 과정이다. 오늘 적는 이 작은 일상이 모여 기억의 순간이 되고 추억으로 승화할 것이다. 7년 전쯤 하와이 가족여행을 갔는데 아이들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저지른 3대 사건은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보겠다). 삶의 평안만이 능사는 아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이벤트가 있어야 재미가 있다. 그게 의미까지 있다면야 금상첨화다.



내가 적는 이 글이 부족하고 못 나도 괜찮다. 난 어제의 내 감정과 가족의 일상을 기록했고 글 쓰는 걸 포기하지 않는 한 내 글도 발전할 것을 믿는다. 뜬금없이 못난 글에 대한 합리화를 하는 걸 보니 마음 수양이 더 필요한 듯 하지만 이 또한 노력해서 채워야 하는 내 모습이니 인정해야 한다. 오늘도 새로운 하루가 열렸다. 맘껏 즐기자.





어제는 어젯밤에 끝났다.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다.


과거를 잊는 기술을 배워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노먼 빈센트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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