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삶이 바뀐다. 나 혼자서 결정하는 문제도 있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하는 결정도 있다. 후자의 경우 선택을 둘러싼 사람들, 즉 이해당사자(Stakeholder)가 존재하며 결론을 짓기 위한 대화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지점이 협상이 필요한 순간이다. 협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협상을 나타내는 ‘negotiation’의 라틴어 어원은 ‘negotitum (neg+otium)’이며 이는 ‘not leisure’, 즉 휴식이 아닌 일이나 사업을 의미한다. 그래서인가? 협상은 언제나 무거우며 고민을 동반한다. 그게 작은 결정이든 큰 결정이든 간에 보다 나은 결정, 어쩌면 후회가 적은 결정을 위해 우리는 여러 활동을 한다. 우리는 협상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면 삶은 협상이요협상이 곧 삶이다. 이게 협상을 배워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협상은 늘 우리 주위에 있다. 언뜻 협상이라고 하면 ‘남북협상’, 연봉협상’, ‘노사협상 ’등 뭔가 대단하고 무거운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만, 일상 속에서도 크고 작은 협상을 하며 우리는 살고 있다. 나를 중심으로 한 영향력을 기준으로 본다면 생활협상, 비즈니스협상, 정치외교협상으로 나눌 수 있다. 협상을 잘한다면 가족관계, 교우관계, 직장생활 등 모든 게 좋아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핑크빛 상상을 해본다.
협상의 영향력
구글 사이트에 협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미지는 악수하는 그림이다. 일반적으로 협상이라고 하면 내가 이득을 보면 상대방이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해야 하는 줄다리기 게임인 경쟁적 협상이 먼저 생각난다. 경쟁적 협상의 대표 사례는 ‘플라자 합의’이다. 1985년 뉴욕에 위치한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G5(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모여 한 외환정책 합의를 말한다. 미국은 레이건 행정부 들어 실시한 개인 소득세 삭감 등 재정정책으로 재정적자 및 무역적자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에서 미국 달러화 가치를 내리고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가치를 높이는 정책을 채택했다. 미국에게만 유리한 내용이었음에도 GATT탈퇴 등 다른 옵션으로 압박한 미국의 태도에 협상참여자들은 미국이 내건 조건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플라자 합의가 채택되자 독일 마르크화는 1주 만에 달러화에 대해 약 7%, 엔화는 8.3% 오르는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났고 이후 2년 동안 달러 가치는 30% 이상 급락하였다. 미국은 달러약세를 바탕으로 한 가격경쟁력으로 해외시장에서 좋은 실적을 거두었으며 미국경제는 회복을 시작했다. 반면에 일본경제는 부동산으로 집중된 거품시기를 거쳐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 사건을 일본의 한 교수는 미국이 일본에게 원자폭탄에 이은 수소폭탄을 폭격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제로 섬과 포지티브 섬
협상에는 제로 섬(zero-sum)인 경쟁적 협상도 있지만 상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포지티브 섬(positive-sum) 협상인 상생적/협력적 협상도 있다. 상생 협상의 대표 사례로 냉전시대 종전에 기여하게 된 미중 국교정상화가 있다. 현대 외교 사상 최고의 협상가로 꼽히는 헨리키신저는 유대인의 강력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대만과의 관계 등 중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미국이 원하는 조건과 중국이 수용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접점을 찾아냈다. 중국 외교책임자 주은래와의 철저한 준비로 역사적인 미중 국교정상화 협상을 이끌어 냈다. 중국은 국교정상화를 기점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하여 지금의 G2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국가 간 외교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저버릴 수도 있는 힘의 논리만이 지배한다고 생각했지만 수업을 통해 모든 협상은 협상에 임하는 사람이 상황을 얼마나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협상은 아는 만큼 잘할 수 있다. 협상을 배워야 하는 마지막 이유다.
서로를 이해하려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쉽게 말한다. 20대엔 막연하게 ‘역지사지’란 단어가 좋아 보였고 좌우명이라고 말하고 다니던 시기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야 어떤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방 입장이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며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는 노력이라도 기울이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상대방의 상황을 분석하여 요구가 아닌 욕구를 찾아내야 한다. 헨리키신저가 중국에게 인공위성사진을 제공한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협상의 미학
예전에 나와 친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신팀장은 싸움닭이잖아. 어떤 상황이든 물러섬이 없어. 당장 그 상황은 이길지 몰라도 적이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해”
업무협의를 하면 항상 공격적으로 임하던 나를 염려하며 해준 조언이었다. 실제로 협상의 순간 이기는 데만 집중했고 내 입장만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이익을 극대화할까만 애썼던 것 같다. 강하기만 하면 부러진다. 협상에서도 관용가 배려의 부드러움이 중요하다.
협상은 전쟁이다. 전쟁에서 승리는 철저한 준비에 있다. ‘협상론’ 첫 수업시간 말미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만큼 협상의 과정은 치열하게 임해야 한다는 뜻이다. 협상도 개시-과정-종료의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이제 시작이다. 나에게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왔다. 보다 나은 결정을 위한 방법론을 배우고 싶은 욕구가 ‘협상론’이라는 과목의 배운 이유였으며 이 글을 통해 배우고 느낀 걸 나누고자 한다.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 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공자의 가르침이 필요한 때이다. 매 시간 교수님과 학우들이 함께 하는 배움의 과정을 즐긴다면, 너도 웃고 나도 웃을 수 있는 혜안을 조금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앵커링, 프레이밍, 양보, 베트나 등 협상에 대한 기술 이론을 배우겠지만(學) 체계적인 협상이론과 실습을 통해 전략을 넘어선 지혜를 익히고(習)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