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지한 샤인 Nov 21. 2023

굴비는 너무해.


“네 뒤로 몇 명이 딸려 있는 거니…?”




물끄러미 남편을 보시던 시어머니가 두 아들과 나를 차례로 쳐다보셨다. 딸려 있다. 딸려 있다. 딸려 있다.

우리는 순식간에 노끈에 줄줄이 묶인 굴비가 되었다.  사실 시어머니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나는 여즉 시집살이가 뭔지 모르고 살아왔다. 시어머니는 보기 드문 신여성이었다. 가까이 사시면서도 며느리 불편할까 싶어 한 번도 불쑥 찾아오신 일이 없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시댁에서 설거지 한 번을 해본 적이 없는 며느리다. 사연 많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는 달리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남편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어쩌다 사주를 보면 말년에 운이 트인다고 하던데, 이 결혼이 나의 말년 운인가 보다 생각하며 조용히 신께 감사했다.  근데 가끔씩 저런 굴비 같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첫째를 낳고는 1년 휴직하고 다시 직장에 복직했다. 일을 그만둘 마음이 없었고 친정은 있지만 내가 의지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어머니가 첫째 어린이집 픽업을 해주셨고 퇴근할 때 까지도 돌봐주셨다. 아침 7시 30분이면 내가 집에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와 첫째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두 돌 이후부터 어린이집을 갔는데 내가 퇴근해서 가니깐 설거지를 하시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직 어린데 엄마 없이 어린이집에 있는 거 보니깐 좀 짠하긴 하더라.”


그 짠한 마음은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이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그 존재를 가장 가여워하고 사랑한 존재는 나였다. 2년 정도 후,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이와 같이 있고 싶다는 내 의지가 너무 강해져 고민 끝에 퇴직을 했다. 회사가 대기업이었고 나도 아직 30대 초반이라 아까운 자리였지만 여러 가지 상황들이 겹쳤었다. 퇴직을 하고 오로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하원하고 아이와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퇴직하길 정말 잘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이도 나도 행복했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이제 노니깐 좋냐고 물어보는 게 좀 거슬렸지만 그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시어머니와 셋이 시댁 주방에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계셨고 나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한테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어머니 혼자 중얼거리셨다.


“일하느라 가족들 벌어 먹이느라 남자들이 고생이야. 불쌍해 정말.”


 처음에는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도 일을 해봐서 안다. 아침 일찍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는 거. 진짜 못할 짓이다. 근데 그날 밤. 잠을 자려고 하는데 자꾸 ‘그럼 난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하고 있던 워킹맘 일 때는 엄마가 없는 아이가 짠하고,

이제 일을 그만두고 전업맘이 되니 혼자 일하는 남편이 불쌍하고.




나는 갑자기 막다른 길에 혼자 서있는 기분이었다. 비참하고 추웠다. 차라리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꺼낸 시어머니가 전형적인 빌런이어서 내가 마음 편히 미워해 버릴 수 있다면 내 속이 좀 후련할까? 그러기엔 나와 내 아이들에게 너무 잘해 주신다. (나한테 마음 써 주신 걸로 글 쓰면 그것도 책 한 권 나옴) 심지어 내가 퇴직할 때 오히려 그게 돈 버는 거라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셨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스케줄 조정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몇 번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결국엔 다 유지하지 못했다. 내가 뭔가 하려고 집을 나가면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불편해졌고, 나만 집에 들어오면 우리 가족 모두가 편해졌다. 억울한 마음이 들다가도 결국엔 내 탓을 했다. 내가 조금 더 학벌이 좋았다면, 전문직이었다면, 우리 친정집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아님 화목하기라도 해서 육아를 좀 도와줄 수 있었더라면… 나는 그저 내 남편과 사랑하면서 살고, 내 아이들이 엄마에게 안아달라고 손 뻗는 지금 이 어린 시절 마음껏 안아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더 독하지 못한 게 잘못일까?




육아를 하다가 나 스스로와 대화를 할 때면 향기로운 꽃밭을 뛰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문을 열어버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과 슬픔이 함께 온 지금 선택은 내 몫이다. 나는 절벽으로 떨어지는 그 문을 영원히 닫아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랑 살면 왜 아들 하나 더 키운다고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