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동해 바다에서 마주친 핑크빛 하늘
하늘이 무슨 색이냐 물으면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파랑과 하양을 섞은 색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런데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잿빛에 가깝고, 노을이 드리우면 단풍을 입은 하늘과 마주합니다.
밤하늘은 또 어떤가요. 어떤 날은 칠흙 같이 어둡지만, 달과 별들이 총총한 날엔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죠. 우리가 어떤 존재의 상징으로 떠올리는 색이 어쩌면 편협한 추론일 수 있습니다. 상징색의 개념은 정보를 쉽게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대상의 다양한 의미를 축소하고 일반화합니다.
중학교 미술 수업 때로 기업합니다. 화창한 날 관악산 중턱에 있는 공원으로 야외 수업을 나갔습니다. 괴팍한 성격의 미술 선생님은 주변 풍경을 그려보라고 했죠. 스케치를 마치고 열심히 채색하던 중 선생님의 꿀밤이 날아왔습니다. 왜 나뭇잎을 초록색으로, 나뭇가지를 갈색으로 칠하냐는 질책이었죠.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치 장상궁에게 왜 홍시 맛이 나냐는 질문을 받은 어린 장금이 같았달까요. 나뭇잎을 나뭇잎색으로 나뭇가지를 나뭇가지색으로 칠하는 게 혼날 일 같진 않은데…. 장금이처럼 솔직하지 못한 전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죠.
그러자 선생님왈 "네 눈으로 다시 한 번 봐라. 나뭇잎에 빨간, 노랑, 검정, 갈색 모두 다 있잖아. 그런데 왜 초록으로만 칠하고 있냐 이거야."
선생님 말씀을 듣고 다시 나무를 바라봤습니다. 정말 그렇더군요. 나뭇잎은 초록색만이 아니었습니다. 검정, 빨강, 노랑, 갈색 등 온갖 색이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지난 늦여름 찾은 추암해수욕장에서 문득 20여년 전 일화가 떠올랐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동해바다 위 하늘은 좀처럼 마주하기 어려운 색들로 가득찼습니다. 올 가을 유행한 핑크뮬리가 떠오르는 핑크빛이었습니다.
아! 물론 핑크만 있던 건 아닙니다. 다양한 색들이 어우러져 아련한 느낌을 풍겼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 속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보통 바다 노을은 무언가 가슴이 차오르는 느낌을 선사하는데, 이 날은 달랐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주한 핑크빛 바다 하늘에서 쓸쓸하고 아쉬운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지난 날에 대한 그리움 같은…, 황홀한 광경이었지만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들더군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창 밖 하늘과 강은 다시 한 번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노을 진 하늘과 그 모습을 비추는 강, 핑크빛 바다 하늘과는 또 다른 색들로 가득차 있더군요.
지금 밖이라면, 창문과 가까운 곳이라면 하늘을 바라보세요. 당신이 지금 마주한 하늘은 무슨 색인가요?